선거에 의한 공화정 창출의 실패
그러나 실시된 선거의 실상은 매우 초라했다.
광둥에서는 선거 비용 부담의 명목으로 선거권자에 부과된 노역에 대응하는 면공비를 내주는 식으로, 한 현당 수만 명의 표가 매수되어 당선이 확보되었다.
낙선후보에 대해서 당선자가 배상을 지불할 것을 후보자들이 사전에 약속하는 연맹 배상 및 출자자를 현 정부 자리에 임명하는 것을 사전에 약속하여 선거자금을 모으는 합고 연합 등이 널리 행해졌다.
후난에서도 성 본부 단계부터 선거인 명부가 위조되었고 그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표의 매매와 무력 쟁탈이 발생했다.
이렇게 해서 선출된 현장 및 성 의회 의원이 사회에서 권위있는 집행자 및 결정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광둥 등의 상황을 보면 당선자들도 자신들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후난에서도 ‘민주적 헌법‘을 제정자 자신이 무시했고 의회는 자오형티 총사령관을 통제할 수 없었다. - P248
임의단체 대표제
실체가 없었던 선거제도에 비하면 이것은 사회적 기반을 갖는 권력형성으로 일보전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태인 단체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자치운동성 권력을 지탱하는 단체 가운데 몇 개가 앞에서 본 ‘전제국가형의 단체‘
였다는 문제만이 아니다. 이른바 구식 사단만이 아니라 신식 사단도 기초가 강고하지 못했다. 후난의 농민협회가 자립적인 조직력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은, 북벌군이 북상했을때 경이적으로 조직을 확대했으면서도 그런 조건이 사라졌을 때 급속하게 해산된 데서도 볼 수 있다. - P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