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의 주호객호제 호등제에 보이듯이 농민편성 자체가 소유를기준으로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직역의 형태로 농민은 말단행정업무에 동원되었다.25) 동시에 기본적으로 농민을 군사편성에서 제외했다. 일본 율령 군제의 모범이었던 부병제는폐지되고 이후에는 용병제가 기본이 되었다. 초기 전제국가가병농일치를 기본으로 하였던 것에 대비되는 ‘병농분리‘가 이때 실현되었다. 봉건사회에서 병농분리는 지배계급이자 사회관리의 중추를 점하는 무사가 무력을 점유하는 과정이었지만,
전제국가에서의 벼농분리는 조세납입으로 군대를 지탱하는 농민에게서 용병을 창출해내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전제국가최대의 업무를 인민의 노역이 아니라 재물로 유지하는 체제로변경하는 것을 의미했고, 재정은 액면상 현저하게 팽창하게 되었다. 국가적 물류시스템의 정비가 요청되고 전매제도가 강화되었으며, 국가적 지불수단으로 동전이 대량으로 공급되었다.
행정 형식이 정비되고 전제가 순화됨에 따라 점차 사회로부터국가가 분리되었다. 이런 조건에서 소농민경영의 발전은 ‘경지를 부여받은 농민의 군사편성‘이라는 초기 전제국가의 원칙을변경시켰다. 전제국가의 통합능력은 저하되기 시작했다. - P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