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제국과 육상제국의 차이
새로운 해로의 발견보다 중앙아시아의 불안정이 유라시아 육로를 통한 교역을 감소시켰다. “화물 약탈이 현실적으로 우려됐고, 이를 보호하는 비용이 너무 비싸졌다. 배로 수송해도 이익이 생길 수 있자 상인들이 육로로 통상할 마음은 약해졌다. 그러나 대상을 파견하지 않은 주요한 동기는 아시아 대륙에서 직면한 군사적, 정치적 조건 때문이었다.”[14] -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중에서
육로처럼 해로 역시 교역을 위해 자유롭고 안전한 통행을 보장하는 세력에 의해 유지돼야 했다. 하지만 항구를 연결하는 해양 상업망은 광대한 영토에 제국적 통제를 유지하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쌌다. 포르투갈은 16세기 동아프리카에서 마카오를 잇는 자신들의 아시아 해상제국을 단 1만 명의 병력으로 유지했다. -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중에서
공해의 본질은 장거리 교역의 생존이 거대한 육상제국들의 정치적 부침에만 더 이상 의존하지 않아도 됨을 의미했다. 거래인들이 해적을 막을 힘만 있다면, 모든 해로를 통해서 중개인들을 우회해 최종 항구와 직접 거래할 수 있었다… 수익 좋은 장거리 교역을 위한 해로를 열고 안전하게 유지하는 비용, 즉 해적을 퇴치하고 전략적 교역 항구에 거점을 확보하는 비용은 육로를 통제하는 것보다도 훨씬 쌌다. 육로 통제에는 보통 군사적 정복과 이방 영토의 관리가 요구됐다.[1 -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중에서
서방 해양세력들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전통적으로 인구와 부가 몰린 이 지대를 해로를 통해 경략하면서, 유라시아 내륙 중앙아시아와 육로의 상업적, 정치적 가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