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가토 요코 지음, 윤현명 외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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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국 단체가 미군 포로병사 398명의 명부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 비율을 지역별로 산출했습니다. 그 데이터를 보면 일본과 독일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독일군의 포로가 된 미군 병사의 사망률은 1.2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일본군의 포로가 된 미군 병사의 사망률은 37.3퍼센트를 넘었습니다. 상당한 차이입니다. 포로를 대우하는 일본군의 방식이 굉장히 가혹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P430

전쟁 중의 일본은 국민의 식량에 가장 신경 쓰지 않은 국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패전에 가까워질 무렵 일본 국민이 섭취하는 칼로리는 1933년시점의 60퍼센트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일본은 1940년을 기준으로 농민이 41퍼센트나 있었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일본의 농업은 노동집약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농민에게는 징집유예가 거의 없었습니다. 공장의 숙련 노동자에게는 징집 유예가 있었지만 말이지요. 비료 사용법, 해충방지법 등 농업 기술을 가진 농업학교 출신자도 전부 군인이 돼야 했습니다. 그러자 농업은 기술도, 지식도 없는 사람이 담당하게 됐고, 농업 생산은 계속 떨어졌습니다. 1944년에야 정부는 농민 중에도 기술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징집 유예를시행했습니다. 물론 때는 늦었습니다.

반면 독일은 달랐습니다. 독일은 일본보다 더 심하게 국토가 파괴됐습니다. 그러나 1945년 3월, 즉 항복 2개월 전 시점에 에너지 소비량이1933년보다 10~20퍼센트 증가했습니다. 전시체제 이전보다 좋아진 셈입니다. 독일은 국민에게 배급하는 식량을 절대로 줄이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불만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식량 확보를 우선으로 한것입니다. -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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