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의 봉건 체제에 따르면 ‘군자’가 ‘군자’이고 ‘야인’이 ‘야인’임을 결정하는 것은 신분이었습니다. ‘군자’는 귀족의 왕관학을 배웠고 ‘야인’은 그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는 개인의 선택과는 무관했습니다.
그런데 춘추 시대에 이르자 선택의 기회가 생겼고 각기 다른 선택의 결과도 나타났습니다. ‘야인’에게는 귀족의 예악 교육을 택할 기회가 생겼으며, ‘군자’도 자기가 원하는 시기를 택해 예악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귀족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이 반드시 일정한 책임을 지는 관행도 약화되었습니다. 일부는 국정과 외교에 참여했지만 일부는 한평생 귀족이라는 허명만 내걸고 빈둥거리며 살았습니다. - < 논어를 읽다,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중에서
공자가 여러 나라를 주유한 것은 관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키워 낸 ‘쓸모 있는’ 인재들을 데리고 각국에 들러 군주들에게 추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급변하는 정국에 대응하기 위해 당시 각국에서는 모두 인재를 필요로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는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이 예의를 두루 익힌 데다 예의 근본정신까지 이해하여, 각국의 구舊귀족보다 훨씬 더 유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놀라운 광경입니다. 한 스승이 제자들을 이끌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제자들을 등용하고 능력을 발휘하게 해 줄 군주를 찾았던 겁니다. 내일은 어떤 곳에 닿을지, 또 어떤 권세가의 후원으로 다음 끼니를 때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은 밤낮으로 위험천만한 생활을 함께했습니다. 그러다가 도중에 뜻밖의 재난을 맞아 적에게 포위되어 거의 굶어 죽을 뻔한 것이지요.
- < 논어를 읽다,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