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병할 때 주나라는 상나라가 가진 천하 공주共主*의 지위를 탈취하겠다는 목표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상나라 군대가 허무하게 격파되어 주나라는 하루 만에 조가에 입성했습니다. 그들 자신도 믿지 못할 만큼 손쉬운 승리였지요.
이것이 바로 주나라 초기에 그들이 “상나라는 어째서 패망한 것일까?”라고 끊임없이 자문했던 이유입니다. 그래서 주나라 초기 문헌들은 집중적으로 이 문제를 탐구했습니다. 첫째 질문은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이긴 것일까?”, “본래 우리 위에 군림하고 우리를 다스렸던 상나라는 어째서 패한 것일까?”였습니다. 둘째 질문은 “이긴 뒤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새로 얻은 지위를 어떤 방법으로 지켜야 거꾸로 화를 당하지 않을 것인가?”였지요. 셋째 질문은 “지고무상至高無上의 새 지위를 얻은 지금, 패망한 상나라 유민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그들과 어떤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였습니다.
이 세 가지 큰 문제를 둘러싸고 고대 중국 최초의 정치적 대계몽이 일어났습니다. 그 핵심 인물이 바로 주공이었지요. 확실히 주공은 주나라의 새로운 정치의식과 정치적 가치 형성을 주도했습니다. 세 가지 큰 문제에 대한 명확하고 합리적인 답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답에 상응하는 행위와 제도, 규범까지 설계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공이 예악禮樂을 만들었다”는 중국의 전통 견해를 이해하는 한 방식입니다. - < 상서를 읽다,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중에서
* 부락 연맹체에서 각 부락이 공동으로 인정하는 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