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라 왕관학의 인문 정신에 반대하고 현실의 법률을 강조하며 백성에게 “관리를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以吏爲師고 요구하던 기풍은 결코 진나라의 짧은 십수 년 동안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진나라가 망한 뒤, 한나라 초기에도 수십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한무제가 “오직 유학을 높이고”獨尊儒術 나서야 한나라는 진정한 의미에서 진나라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뒤집고 본래의 주나라 전통을 계승하는 데 진력하게 되었습니다.
진시황 시대부터 한무제 시대까지 왕관학은 억압과 주변화 그리고 망각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한무제의 역사적 의의는 자신의 뛰어난 재능과 원대한 계략에 의지해 한나라의 방향을 결정하고, 문제와 경제의 보수적이며 관망적인 태도에서 벗어난 데 있습니다. 그는 다시 왕관학의 전통을 껴안고 진시황과 상반되는 길을 걷기로 결정했습니다. - < 상서를 읽다,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