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 질서는 동시에 친족 질서였습니다. 만약 이모와 외삼촌이 싸우면 어머니는 절대로 모른 척할 수 없고 외할머니와 심지어 아버지까지도 그 싸움에 관여하게 됩니다. 친족 간 네트워크가 분쟁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이지요. 가장 단순한 친족 질서의 기능입니다. 이런 틀에 근거하여 송나라에서 발생한 군주 시해 사건에 다른 나라들이 개입해 문제 해결에 협조하기로 했던 겁니다.

그런데 개입 방식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대국인 제나라가 회의를 소집하고 관련 국가들을 지정해 참가를 요구했습니다. 본래 친족 체계에 기반해 질서 회복을 꾀했던 형식이 이제는 패자霸者의 권력 행사 형태로 바뀐 겁니다. - <좌전을 읽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8322

송나라의 조약 위반과 수나라의 회의 불참은 모두 제나라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고, 제나라는 이에 강경한 태도로 응징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송나라는 수나라와 비교해 규모도 크고 지위도 높았기 때문에 수나라를 응징했을 때와 똑같은 방식을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실제로 송나라는 봉건 작위가 제나라보다 한 등급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제나라는 주나라 천자의 명의를 빌리기로 하고 송나라 토벌 작전에 군대를 보내 달라고 주나라에 요청했습니다. “선백이 합류했다”는 것은 사실 선백이라는 사람이 혼자 와서 세 나라 연합군과 회합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본래 제나라가 원했던 것은 주나라 천자의 군대가 아니라, 주나라 천자가 어떤 형식으로든 관여해 천자의 권위로 송나라를 압박해 주는 것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불리해진 형국에서 송나라는 감히 천자의 군대와 맞싸우지 못하고 결국 투항하여 화의를 요청했습니다. ‘取成於宋’(취성어송)에서 ‘成’은 싸우지 않고 화의를 요청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훗날 패자가 행한 패권 행사의 원형이었습니다. 패자는 반드시 상당한 군사적 우세를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무력으로 말 안 듣는 나라를 굴복시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명분상으로는 여전히 주나라를 존중했습니다. 실제로는 주나라 천자의 명의로 자신의 독립적 의지를 관철하면서 말이지요. 이것은 봉건 질서와 약육강식의 논리가 타협을 이룬 방식이었습니다. - <좌전을 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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