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개화‘의 형태나 외양은 정치적 슬로건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슬로건이었다. 일본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외양이 중요하다. 이러한 사실을잘 드러내는 메이지 시대의 풍자적인 속담이 하나 있다. "상투 틀지 않은사람의 머리를 건드리면 ‘분메이카이카‘라고 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유럽식 머리가 고등교육의 상징처럼 된 것이다. 몇몇 메이지 지도자들은유럽식 예절을 준수하는 것을 보여주면 서구 열강들이 불평등조약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메이지 개화에는 귀족적이면서 우스꽝스럽고 융통성 없는 면이 있었다. 근대화에 맞춰 토착적인 복장에 고대나 유사 고대의 관습들이 고안되거나 재현되기도 했지만, 그 시대에는 과거를 일소하거나 거부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들이 서양인들에게는 오히려 경박하거나 천박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 P52
거의 한 세기 후에 20세기 일본 최고의 소설가로 평가받았던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메이지 시대의 피상적인 고상함에 대해 격분하였다. 공공연히 옷을 벗는 것, 남녀 혼욕, 이밖에 ‘저속함과 상스러움‘을 나타내는 민망한 행태들을 금지시킨 것은 본성에서 나오는 고상함을 향한 욕구에서발현된 것이 아니라, 서양 외국이 그런 풍속을 인정해주지 않으리라는 두려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미시마는 메이지 일본을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불안한 주부‘에 비유했다. 손님에게 먼지 하나 없이 흠잡을 데 없는 깨끗하고 이상적인 가정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일상생활 용품들을 옷장 속에 감춰 놓고 편한 일상복을 안 보이도록 치우는 주부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