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와 순자의 차이를 통해 맹자 사상의 요지를 복원해 보면 우리는 인간 내면의 자주적인 각성 능력을 강조한 맹자의 견해가 중국 전통에서 진정으로 주류였던 적이 없음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 < 순자를 읽다,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중에서
정주가 육왕을 비판한 것은 유가와 불교의 차이를 보여 준 것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 맹자를 이해하지 않고 또 맹자의 이론을 수용하지 않았던 태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맹자는 더욱 주변적이었습니다. 역대 어느 황제든 진정으로 맹자의 학설을 믿고 맹자의 정치 이론을 실천한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비록 말과 글로는 ‘공맹’을 들먹이곤 했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흔히 순자의 주장과 가르침이었음을 명확히 알게 됩니다 - < 순자를 읽다,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중에서
명백히 순자에게서 비롯된 사상과 학설이 왜 훗날 순자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게 되었을까요? 그 중요한 역사적 이유는 바로 순자가 예와 법의 절대적인 구분을 제거하는 동시에 유가와 법가 사이의 가장 분명한 차이도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공자와 맹자의 사상이 법가와 혼동되는 것은 절대 금물이었습니다. 순자의 성악론은 실질적으로 예를 법의 방향으로 크게 한 발자국 나아가게 한 것으로, 당시 나날이 성행하던 법가 쪽으로 크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가 자신의 입장을 세운 것이기도 했습니다. - < 순자를 읽다,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