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의 출현은 19세기에 갈수록 쇠퇴하던 언어학 연구를 해방시켰다.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 이전 언어학이 처했던 곤경이 당시 그가 느끼던 인류학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시절 언어학자들은 세계의 수많은 언어를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풍부한 자료를 집적했다. 그러나 물밀 듯 밀어닥친 언어 자료는 점차 언어학자들을 질식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언어 자료를 어떻게 정리하고 연구를 진척시켜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소쉬르는 명확한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현상인 파롤 안에서 헤매지 말 것을 주장했으며, 현상이 제아무리 많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언어학의 핵심으로 이끌 수 없음을 강조했다. 서로 다른 언어의 구조를 정리하고 채택해 초언어적 거대 구조를 탐구하는 것, 즉 대문자적이고 궁극적인 랑그를 파악하는 것이 바로 그가 제시하는 바였다.
우리는 지구상의 2천 가지 언어를 수집하고 이해할 필요가 없다. 수많은 언어를 랑그의 상이한 구조가 파생시킨 사례로 볼 필요가 있다. 즉 수많은 언어의 복잡한 현상을 랑그로 환원하려는 고민을 수행해야 한다. 단어나 문장을 볼 것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관계를 봐야 한다. 언어의 문법을 볼 것이 아니라 상이한 언어 문법 사이의 관계를 봐야 한다. 관계가 사물을 대체하는 것이 관건이다. 달리 말하자면, 사물에서 벗어나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 초점을 둬야 한다. 이로써 우리는 구조를 발견할 수 있고, 진정으로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 <슬픈 열대를 읽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59508
언어학적 깨달음을 얻고 나서 레비스트로스가 작성한 첫 번째 논문은 「언어학과 인류학의 구조 분석」L’analyse Structurale en Linguistique et en Anthropologie이었다. 이 짧은 글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친족 연구 영역에서 언어학의 구조주의적 방법론을 인류학에 적용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박사 논문인 『친족의 기본 구조』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parenté를 쓰기 위한 항해를 개시했다.
레비스트로스가 박사 논문을 쓰면서 인용한 문장과 저작의 수는 자그마치 7천여 개나 되었다. 정말 놀랄 만한 수치다! 이는 레비스트로스가 인류학 문헌 독해에 쏟은 엄청난 노력을 보여 주는 동시에, 당시 인류학이 처한 ‘풍요 속 빈곤’이라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토록 방대한 기록과 논문은 무얼 위한 것이었을까? 어느 누가 이렇게 많은 문헌을 읽어 낼 수 있으며, 그것을 읽었다 한들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문헌 속의 정보와 의미를 결합하고 파악하는 방법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는가? - <슬픈 열대를 읽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59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