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의 동질화. 그와 대조되는 영국인의 내적 이질성.
귀족층의 이러한 점진적 빈곤화는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봉건 체제가 새로운 형태의 귀족정으로 대체되지 못하고 소멸되어버린 대륙의 모든 지역에서 나타난다. 라인 강 유역의 독일민족의 경우 이러한 쇠퇴 현상이 특히 현저하게 눈에 띈다. 영국만이 이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영국에서는 여전히 존속하는 옛 귀족 가문들이 자신들의 부를 보존했을 뿐만 아니라 크게 증대시켰다. 영국의 귀족들은 부와 권력 양면에서 줄곧 일류급에 해당했다. 이들 주변에서 성장한신흥 가문들은 이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그저 이들의 풍요를 흉내 낼 뿐이었다. - P97
18세기 말에, 귀족층의 생활양식과 부르주아지의 생활양식 사이에는 여전히 일정한 차이점이 있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활양식이라고 칭하는 이 습속이라는 지표는 가장 늦게야 동화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은 인민의 상부에 위치한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닮게 되었다 그들은 같은 생각과 같은 습성을 지녔으며, 같은 취향을 따르고, 같은 쾌락에 몸을 내맡겼으며,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언어를말했다. 그들 사이에는 권리를 제외하고 다른 어떤 차이도 없었다. - P98
이와 마찬가지의 평준화 현상이 다른 곳에서, 하물며 영국에서도찾아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영국에서는 여러 계급들이 비록 공동의 이해관계로 서로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었지만, 대개는 여전히 정신과 습속에서는 서로 구별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적 자유는, 비록 모든 시민들사이에 필연적인 관계와 상호의존의 유대를 창출해내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시민들을 반드시 서로 닮게 만드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요컨대 사람들을 서로 닮게 하며 서로의 운명에 무관심하게 만드는불가피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은 바로 한 사람에 의한 통치인 것이다. - P98
실제로 그때부터 영국을 유럽의 다른 지역과 그토록 다르게 만든것은 영국의 의회, 영국의 언론 자유, 영국의 배심원 제도가 아니라 더 특이하고 더 효과적인 그 무엇이었다. 영국은 카스트 제도가 단순히 변질된것이 아니라 완전히 파괴되어버린 유일한 나라였다. 영국에서는 귀족들과 평민들이 같은 업무에 함께 종사했으며, 같은 직업을 선택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통혼했다. 영국에서는 대영주의 딸이 이미아무 거리낌 없이 신출내기와 결혼할 수 있었다. - P100
프랑스에 특유한 점은 신분으로서의 귀족이 이렇게 자신의 정치권력을 상실한 바로 그 시기에, 문벌귀족들 개개인은 지금까지 누리지 못했던 여러 특권들을 획득하거나 이미 누리고 있던 특권들을 강화시켰다는사실이다. 이는 마치 집단의 유품으로 그 구성원들이 부유해지는 것과 같았다. 귀족신분은 갈수록 통치권을 잃어갔지만, 개개 귀족은 군주의 첫번째 종복이 되는 배타적 특전을 더욱더 누렸다. - P104
이 모든 특권들 중 가장 가증스러운 것, 곧 면세 특권에 대해 살펴보자. 5세기부터 프랑스혁명에 이르기까지 면세 특권은 줄곧 증가하였음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면세 특권의 증가는 일반 대중이 짊어지는 조세 부담의 급속한 증가와 짝을 이룬다. - P104
공공 업무란 거의 모두가 세금 문제에서 연유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세금 문제에 귀착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르주아 계급과 귀족 계급 증어느 한 쪽만 조세 부담을 질 경우에는 더 이상 함께 논의할 이유가 없게되며 공동의 욕구나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게 된다. 이제 그들을 서로 분리시켜 놓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미 그들에게는 함께 일하고자 하는욕구도 기회도 어느 정도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 P105
영국의 중간 계급들이 귀족집단aristocratie과 싸우기는커녕 그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영국 귀족집단의 개방성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흔히 말해지듯이 영국 귀족집단은그 형태가 불분명하고 그 경계가 애매했다는 사실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요컨대, 귀족집단에 소속될 수 있느냐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귀족집단에의 소속 여부를 알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 P106
그러나 프랑스의 귀족을 다른 계급들과 나누는 장벽은, 비록 쉽게넘나들 수 있는 것이긴 했지만, 언제나 눈앞에 드러나고 요지부동이었으며, 그 현란하고 가증스러운 표시에 의해 언제나 외부 사람들 앞에 노출되었다. 누구든지 일단 그 장벽을 넘어서게 되면, 그는 자신이 이제 막 벗어난 환경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모욕적이고 가증스러운 특권들을 갖게 됨으로써 그들과 구별되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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