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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탄생 - 왜 지금 다시 토크빌을 읽는가 ㅣ 대우휴먼사이언스 23
이황직 지음 / 아카넷 / 2018년 7월
평점 :
버지니아 대 뉴잉글랜드
- 상업적 이익 목적 대 이상적인 삶 지향
17세기 초 영국계 이주민들 정착지는 버지니아(남부)와 뉴잉글랜드(북부)로 대별된다. 1607년 제임스타운 건설로 시작되는 버지니아 개척민들은 투기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들은 대부분 처치 곤란한 방탕자와 사기꾼, 풀려난 하인들이었다. 물론 곧이어 장인과 농민들도 합류했지만 여전히 남부 정착지의 주류는 영국의 하층민 출신이었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1620년경 최초로 20명의 흑인 노예를 수입하여 훗날 남부와 북부를 가를 커다란 사회문화적 차이를 만들었다. - P87
북부의 정착민들은 이와 달랐다. 허드슨강 동쪽에 위치한, 이른바 뉴잉글랜드라고 불리는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매사추세츠, 뉴햄프셔, 버몬트, 메인 주에 정착한 이들은 이미 모국에서도 상당히 "유복한 계급"에 속했던 사람들이었다. 남부 식민지가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로 채워졌던 데 반해, 뉴잉글랜드의 정착지에는 ‘가족 단위의 단체‘ 이주객들이 주류를 이뤘다. 이들은 예외없이 모국에서 이미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일부는 이미 유럽에서도 명망가에 속하는 지식인이었다.
이들이 모국을 떠나 신대륙에 발을 디딘 이유는 단 하나, 이상적 삶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고결한 퓨리턴의 길이자 정치적 권리를 지닌 각성된 시민으로서 프로테스탄트의 삶이었다. 1620년 11월11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 분리파 계열의 첫 이주민들이 맨 먼저 한 일은 정치단체를 만들고 그 규약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메이플라워 서약 The Mayflower Compact‘이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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