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뚱은 프랑스와 싸우는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하고 훈련을 도와주고싶어 했다. 왜냐하면, 베트남의 전투가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볼 때 한반도의 통일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이루어져야 했다. 이미 마오쩌둥은 1949년 5월 김일성의 특사로중국을 방문한 김일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50년 초에 국제적 상황이 조선 동지들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바뀔 때만 남조선을 향한 공격이 가능할 것입니다." 마오쩌둥은 스탈린 앞에서는 더 직설적이었다. 중국은 전쟁 전戰前 수준의 경제를 회복하고 전국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3~5년간의 평화가 필요합니다. - P142

이승만과 김일성은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도록 그들의 초강대국 후원자들에게 더 많은 무기 지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 모두 한반드의 내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들은 이와 같은전쟁에서 역할을 하는 데 큰 열의가 없었다. 1949년 여름 두 강대국은, 한반도의 두 정권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자국 병력의 대부분을 한반도에서 철수시켰다.
- P143

었다. 김일성은 남한을 향한 공세에 스탈린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호소했다. 김일성은 현재는 북한의 전력이 우세하지만, 향후 남한의 게릴라들이 진압되고, 남한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경제·군사적으로 회복되면 향후의 세력균형은 불리해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 스탈린은 당시 진행되고 있던 중국의 국공내전을 이유로 김일성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1950년 1월 스탈린은 마음을 바꾸었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군사적 승리와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의 서방의 도발에 보복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소련의 지도자는 한반도의 무력통일을 돕겠다고 암시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한반도 무력통일을 지지할 때만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 P144

스탈린의 승인을 얻어낸 김일성은 1950년 5월 베이징으로 가서 중국의지원을 문의했다. 마오쩌둥은 아주 많은 이유로 김일성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1) 거절은 스탈린의 결정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다. 

2) 그리고 이는 중국공산당이 중국을 무력으로 통일할 때 북한이 도와준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기도 했다. 

3) 그러나 아마도 제일 중요했던 것은 만약 중국이 김일성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이는 공산당의 신중국이 일본의 부상 이후 깨어져 나간 중국 한반도의 긴밀한 관계를 재확립할 의도가 없다는 신호로 읽힐지도 몰랐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중화인민공화국보다 먼저 수립되었지만, 중국 지도자는 북조선 공산주의자들을 ‘동생‘이라고 지칭했다. 형제적 질서를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 중국은 김일성의 계획에 동조하고,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비록 마오쩌둥은 김일성이 원했던 한반도 무력통일 작전에 대한 중국의 실질적인 지원은 제한된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지만, 김일성은 그가 원하던 바를 얻어냈다. 김일성은 소련과 중국에 군사적 승리 이후에 통일이 신속히 이루어져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시간이 없을 것이라 약속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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