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에 향후 100년간 중국과 한반도 관계에 영향을 미칠 서로 다른 두 가지 과정이 진행되었다. 하나는 조선 청나라 정부 관계의 점진적인 개선이었다. 건륭제의 꾸준하지만 강력한 외교, 그리고 건륭제의 오랜 재위 기간을 통해 조선인이 청나라 황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거의 명나라 말기와 유사할 정도로 복원되었다. 19세기 초까지 많은 조선의 지도자들은 적어도 과거 명나라를 대하듯이 청나라에 관해 이야기했다. 또 다른과정은 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국제 체제를 향한 서구 열강의 진출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온 배들이 조선 앞바다에 나타나기 시작하자, 조선인은 그들의 지리적 관념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사절단으로 북경을 방문하기도 했던 이수광李光은 "세상에서 사해(동서남북 사방의 바다)라 일컫는 것은 다만 중국을 표준으로1988)하여 말한 것이지, 천지 사이의 사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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