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은 13세에 성균관 시험에 합격하고 26세에 원에 사신으로 갔다가 원의 회시(2차 시험)와 전시(황제 앞에서 보는 최종 시험)에 연거푸 1등, 2등으로 합격했으니 흔치 않은 국제적 천재였다.
이색이 개경에서 문하생들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원에서 유학과 벼슬살이를 마치고 귀국한 1356년경부터일 것이다. 당시 신진사대부 계열의신세대 인재들은 원에서 선진 성리학을 흡수하고 막 귀국한 젊은 천재이색에게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 결과 ‘이색 학당‘은 당대 최고의 명문 엘리트 사학으로 각광받았으며,
고려 말 개혁파유신 대부분이 ‘이색 학당‘ 출신이었다 할 정도로 개혁파 선비들을 다수 배출했다. 정도전을 비롯해 정몽주 · 이숭인 · 권근 - 이존오(李存吾) · 김구용(金九容)· 김제안(金齊顔)·박의중(朴宜中)·윤소종(尹紹宗) 등 뒷날에 여말선초의 중앙 정계를 주름잡은 개혁파 정치가들이 대부분 이색 문하였으니, ‘이색 학당‘은 개혁파의 정치학교 역할을 한 셈이다.
이색이 전파한 성리학은 온건개혁파 유신들과 역성혁명과 유신들의공통된 정치 이념이 되었다. - P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