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라 민회에서의 변론을 통해 정책결정에 참여한 새로운 유형의정치가들이었다. 특히 그 기간에는 정치군인이라는 존재가 사라졌다. 장군들은 군사에만 전념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과거의 힘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국내적으로는 과거보다 더욱 충실한 민주주의를 이루었고 경제도 부흥했다. 민주적 제도는 앞선어느 시절보다 더욱 충실하게 정비됐다. 민회 회의장은 더욱 넓어져 아테네 시민의 민회 참여가 더욱 더 확대됐다. 민회에 출석하는 시민에게 수당이 지급되어 참가자가 늘어나게 된 것도 민추정이 부활한 직후의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는 연극관람 수당도 지급됐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것처럼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이 성행했던 것은 당시 연극관람이 정치참여의 하나로중요시됐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적어도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바람직한 것이었다. 인치에서 법치로 지배원리를 변경한 아테네 민중은 페리클레스 같은 카리스마를 가진 인격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 대신 재무관을 비롯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의 등장은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민주정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훗날 민주정을 파탄시키는 원인의하나가 되기도 했지만, 그것만이 파탄의 원인이라고는 말할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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