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 1756 년에 영국동인도회사 소속 장교 로버 클라이브 Robert Clive가 플라Plassay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무굴 왕조를 무너뜨리고 인도의 벵골, 비하르, 오리사 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했다. 이 승리로 회사는 포르투갈을 제치고 캘커타, 마드라스, 봄베이에 식민정부를 운영하는 인도의 가장 강력한식민세력으로 떠올랐다.

 이제 회사는 민간 무역회사에서 인도 식민정부로바뀌었다. 각 지역 주재원의 대표president가 총독governor 으로 바뀌면서 관할 지역의 행정권과 조세 징수권을 확보했고, 군대를 보유해 선전포고 권한도 가졌다. 본국과의 연락선도 이원화되었다. 행정과 외교 사안은 외무성에 보고해 외상의 지침을 받았고, 무역에 관해서는 런던 본사에 연락해 지침을 받았다. 

회사는 조세 징수권이 충분한 배당을 보장한다는 논리로 부정적인 투자자를 설득했다.

그러나 벵골 지역을 점령한 후 회사는 여러 방면의 압력에 직면했다. 대기업의 방만한 경영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어서 회사도 이익이 기대에 못미치는데도 비용을 너무 많이 쓴다는 투자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 P124

 무역은 수출과 수입 양쪽에서 이익을 남겨야 하는데회사는 수입에서만 이익을 남겼다. 18세기 초에는 인도의 면직물을 수입해큰 장사를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산업혁명으로 영국의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면직물과 모직물을 수출하게 되자 인도의 면직물 공업이 무너졌다. 이로 인해 회사는 영국 소비시장과 인도 상품의 수출이 창출하는 세금의 두가지 수입원을 한꺼번에 놓쳤다. 또한 사람들은 식민지를 황금 달걀을 낳는닭이라고 생각했지만 인도 식민지의 운영은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광대한지역을 연결하는 행정망 유지에 엄청난 비용이 들었고, 대규모 군대의 유지비용도 상당했다. 반면에 조세 징수권은 큰 도움이 못 되었다. 토후들이 비협조적이었고 주민의 조세 저항도 거셌다. 회사가 무역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식민정부의 유지를 위해 지출해야 했으니,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배당금이 줄어든 것은 당연했다.
- P125

[차]수입량이 늘수록 관세 수입도 늘게 되어 있지만 함정이 있었다. 런던 본사는 수입 대금으로 은을 보내지 않고 수출품으로 상계했다. 영국 상품을 팔아 차를 수입하라는 의도였지만 실효성이 없는 조치였다. 식민정부는, 다시 말해서 회사는 은으로 차를 구입해 보내지만 본국으로부터는 은을 받지못해 통화부족에 빠졌다. 본국 정부에 재정 지원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그럴여유가 없었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독립운동과 유럽 열강의 각축으로 군비軍費 지출이 커서 정부도 재정적 어려움에 빠져 있었다. 은 부족으로 직격탄을 맞은 것은 차를 가장 많이 수입한 캘커타 식민정부였다.
- P128

캘커타 식민정부의 워런 헤이스팅스Warren Hastings 총독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 논리적인 해결책은 영국 상품을 인도에서 팔고 인도 상품을 중국에서 팔고 차를 영국으로 가져가는 삼각무역의 고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환상적인 고리였지만 중간에 있는 인도가 걸림돌이었다. 인도의 면직물 산업이 영국의 대량 생산으로 무너지는 바람에 구매력이 없었다. 

인도를 영국 상품의 소비지로 만들려면 구매력을 높여야 하고, 그러려면 인도에서 생산해 중국에서 팔아먹을 상품, 특히 중국에는 없지만 중국인이 원하는 상품을 찾아야 했다. 이렇게 골똘히 머리를 굴려 찾아낸 결과가 아편이었다. 벵골 지역이 세계 최대의 아편 생산지였고, 캘커타 식민정부가이 특별한 상품의 생산과 판매의 독점권을 갖고 있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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