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
오쿠다 히데오 지음, 정숙경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는 말을 다루는 사람이다.
말만 다루는가?
사람도 다룬다.
단지 독자가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술수가 대단한 사람들이다.
슬렁슬렁 이야기를 풀어가다 지루할만 하면 슬쩍 고삐를 죄는 강약과 완급의 조절은
작가만이 부릴 수 있는 특혜이자 심술이다.
말을 가지고 놀기 때문에 작가도 읽는 사람도 쉴 틈은 없다.
땀은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에서야 닦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어의 마술사,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들었다.
날은 덥고 무거운 글은 싫으니 그의 글을 찾을 수밖에 없다.
코믹물로도 더위를 날려버릴 수 있음을 그가 보여주길 바라며 읽기 시작했다.
역시 가독성에 관한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 웃음이 난다.
도리 없다. 웃을수 밖에.....

오쿠다 히데오, 이번엔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루기로 했나보다.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데 직급은 한결같이 과장이다.
평사원과 간부급의 중간 자리를 통해 사회의 모순을 집어보려는 계획인 듯하다.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마돈나'다.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강하게 부각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마치 '우리에겐 마돈나가 필요해요'라는 듯이.

5편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첫편의 제목은 [마돈나]다.
주인공은 42세의 영업3과장인 오기노 하루히코다.
결혼 15년차로 변변한 연애도 못해보고 직장 동료인 노미코와 사내 결혼한 사내다.
사랑조차 못해본 자신의 처지가 딱해서인지 아니면 사랑에 대한 한풀이인지 부하 여직원을
자신도 모르게 좋아한다.
지금껏 3번이나 상상 연애를 했다.
물론 그 연애는 적당한 때에 깨졌다.
어느날 센다이 출신의 4년차인 구라타 도모미가 자신의 부서로 오게된다.
본인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아는 그로서는 제발 자신의 이상형이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상형이 오고 말았다.
그때부터 철딱서니없는 상상연애가 속도를 내며 진행된다.
뿐만아니라 라이벌도 생겼다.
부하직원인 기타하라가 속도 모르고 덤벼든다.
둘의 암투는 극에 달하게 되고 마침내 육탄전까지 벌이게 된다.
다음날 아침 둘은 엉망인 얼굴로 회사에 온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셨는지 그녀의 진짜 미소를 보게되는 일이 생긴다.
훤칠한 키에 하얀 치아가 멋진 젊은 사원의 등장으로 그녀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알게된다.
씁쓸하지만 역시 내게는 마누라밖에.....
소심한 중년의 일탈이 재미있다.

[댄스]는 45세의 영업 4과장인 다나카 요시오가 주인공이다.
요시오는 현재 고2 아들과 대립각을 이루고 있다.
아들은 대학도 가지 않고 댄서가 되겠다며 엄마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한다.
세상이 어떤 곳인데, 저런 철없는 소리를 하다니.
요시오는 그 생각이 날 때 마다 기도 안차고 화가 난다.
집안 일만 이러면 견딜만한데 직장은 한 술 더뜬다.
직장은 직장대로 그를 구석으로 몰고 집안에서는 아내까지 가세해 아들 편을 든다.
그는 설 자리가 없다.
조직과 가정 어디서도 쉴 곳이 없는 40대 남자의 애환에 가슴이 짠해진다.

[총무는 마누라]는 출세코스를 달리고 있는 40세의 온조 히로시가 주인공이다.
간부가 되려면 현장에서 빠져 내근하는 것이 이 회사의 관례이다.
회사의 룰을 따라 히로시는 서무계 과장으로 가게 된다.
가보니 서무계 뿐 아니라 총무부까지 엉망진창이다.
능력제일주의자인 히로시는 내부의 문제를 규칙에 따라 처리하려 한다.
부서에 난리가 난다.
부하부터 시작해 전임과장, 직속 부장등 사내 연결된 온갖 사람들이 줄줄이 그를 만나러 온다.
결국은 백기를 들고 마는 히로시.
부정을 알고도 묵인하는 조직의 구태의연함과 암묵적 관행의 무서움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보스]는 여상사를 모시게 된 44세의 다지마 시게노리의 이야기다.
자신이 차기 부장이 될 줄 믿고 미리 축하까지 받았건만 조직은 중도채용자인 하마나 요코를
담당 부장으로 보낸다.
신임 부장 하마나 요코는 빈틈없고 합리적인 상사로 사내 여직원들의 우상이다.
그녀는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한치의 모자람도 없이 맡겨진 일을 딱부러지게 해낸다.
이른 출근과 정시 퇴근, 접대문화의 전향은 시게노리의 재밋거리를 다 빼앗아 간다.
시게노리는 호시탐탐 상사의 헛점을 노리지만 아무리 봐도 찾을 수 없다.
결국 원치는 않았지만 그도 그녀를 자신의 존경할만한 상사로 받아들이게 된다.
일본 조직 문화의 낙후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우리는 어떤지, 일본보다 더하지는 않은지 궁금해진다.

[파티오]는 토지개발회사의 과장인 45세의 스츠키 노부히사가 주인공이다.
회사의 야심찬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 골칫거리로 전락하게 된 주상복합단지가
이야기의 주된 공간이다.
미래형 도시라며 그렇게 광고를 했건만 주말이 되면 이 곳은 유령의 도시로 변하게 된다.
그는 이 곳에서 멋진 노신사를 보게 된다.
파티오의 한적한 공간에 앉아 책을 읽는 노신사.
그를 볼 때면 자꾸 시골에 홀로 계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아버지는 세상사에 흥미를 잃은 듯하고 누나가 수시로 방문해 돌보고 있다.
아버지를 못 본지도 벌써 6개월이 됐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지만 자꾸 미루고 있다.
아버지와는 변변한 대화도 나눠 본 적이 없다.

어느날 노신사에게 말을 걸지만 그는 경계를 하고 한동안 얼굴을 나타내지 않는다.
노부히사는 타인과 거리를 두지 않은 자신의 경솔함을 질책한다.
어느날 근방에서 노신사를 발견하게 된 노부히사는 그를 통해 아버지와의 거리도 좁히게 된다.
노인들은 누군가의 짐이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사람의 손길만이 그들을 살게 하는
힘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5편의 글은 다 재미있고 생동감 있었다.
그러나 저변의 쓸쓸함이 느껴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고달픈 삶을 사는 누군가의 자화상을 본인의 동의없이 본 느낌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되레 더 바빠졌고 일의 양도 더 늘었다.
휴가는 길어지고 휴식 시간도 늘어났지만 피곤의 강도는 더할 수 없이 커졌다.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책은 이 초라한 시대에 바치는 후쿠다 히데오만의 영가이다.
또한 슬픔을 슬픔으로 느끼지도 못하는 시대에 먼저 본 사람이 느끼는 앤솔러지기도하다.
웃음으로 포장된 현대인의 구겨진 삶에 오쿠다 히데오가 주는 조그마한 습기가
과연 위로가 될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준 습기로 구겨졌던 곳이 손바닥 만큼이라도 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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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가방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가와카미 히로미의 책을 읽었다.
그녀의 글은 담백했다.
그러나 담백하다는 말만으로는 느낌이 다 전달되지 않는다.
글에서 느껴지는 우아함은 어떻게 표현해야 될까?

표현을 달리 해야겠다.
그녀의 글은 담아했다고.
그 느낌은 수사 때문은 아니었다.
인간의 감정을 대하는 그녀의 접근 방식이 달라서였다.

'선생님의 책가방'
이번이 세번째다.
소소한 일상과 자잘한 일들이 다른 나라, 다른 정서의 옷을 입고 내 감성과 맞닿아있다.
그것이 이유였달까......

이처럼 잔잔한 글은 오랜만이다.
참으로 신선하다.

정돈된 감정들이 불러일으키는 산뜻함은 여운이 길다.

'선생님의 가방'은 2001년도 다니자키 준이치로 수상작이다.

30대 후반의 미혼 여성과 30년 정도의 나이 차가 나는 고등학교 때의 국어 선생님이 조그만
주점에서 조우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선생님은 부인과 사별해 혼자 살고 있고 그녀 또한 조그만 직장을 다니며 집 근처에
따로 방을 얻어 혼자 산다.

둘의 만남은 무척이나 싱겁다.
선생님은 한결같이 정중하며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그에 걸맞는 옷차림을 하고 있다.
둘은 오며가며 만날 뿐 약속을 하고 만나진 않는다.
만나도 별 말은 없다.
때론 옆에서 때론 바로 앞에서 함께 시간을 가질 뿐이다.

이 만남은 세월 속에 서로를 향한 기다림으로 발전하게 되고 마침내 공식적인 데이트를
갖게 된다.
둘은 손을 맞잡은 채 일정한 보폭으로 그들만이 만들수 있는 시간을 멋있게 직조한다.

그들의 특별한 사랑은 선생님이 살아계시는 5년 동안 계속된다.
함께 있을 필요는 없지만 함께 있는 것이 온당한 듯한,
마치 책과 띠지의 관계같은 자연스러운 밀착이 단색톤으로 표현된다.

무척이나 담담한 사랑이다.
어떤 수식이나 정교한 장치도 없이 오로지 여백이 주는 무미한 맛이 이 책의 으뜸이다.

'객관적 거리 두기'나 '한결 같은 낯설음'이 끈끈한 정보다 나을 때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 하다.

어디에도 속해 있는 것 같지 않은 시간의 아름다움이 작가의 눈을 통해 섬세하게 복원된다.
누군가와 시간을 함께 한다는 건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자연스레 수행하기 때문이다.
행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촌스러움이 이 책에는 없다.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조금 놀라게 된다.

절제된 감정의 글은 마치 생수 같다.
속 깊이 전달되는 무미의 맛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 하다.
그 맛을 느끼고 싶어 세번이나 읽은 건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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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은 언제나 차분하다. 감정의 거품은 제거되고 찌꺼기는 가라앉은 듯 그의 글은 일정한 정조를 유지한다. 살육 현장의 피비린내도 느껴지지 않고 타의에 의한 죽음도 일상의 한 부분인듯 표현해 놓았다. 피가 불러일으키는 흥분이 그의 글에선 배제되어있다. 잔혹함을 미끼로 말초적 신경을 건드리는 부박함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그의 글은 함부로 취급할 수 없다. 구성의 복잡함이나 현장의 난립을 설정하지 않고도 긴장감과 박진감을 유지하는 탁월한 능력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갖고 있다. 그의 글이 서사의 느낌을 주는 이유이다.

'용의자 X의 헌신'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이다. 갈릴레오 시리즈 3탄인 이 책으로 그는 2006년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나오키상 외에도 '이 미스터리가 최고',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부문에서도 각각 1위를 차지했다. 무엇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이 책은 전 남편에게 시달리는 여자가 자신의 딸과 함께 남편을 죽이는데서 시작한다. 불과 몇 페이지도 넘기지 않았는데 벌써 범인이 드러난다. 대담한 시작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현장을 보여준 후 범인을 찾는 추리 소설의 정석을 과감하게 깨뜨렸다. 그런 긴박함 없이도 끌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명이다.

살인을 한 후 얼이 빠져버린 하나오카 야스코에게 옆집에 사는 이시가미라는 남자가 구원의 손길을 뻗는다. 이시가미는 현직 고등학교의 수학 선생이다. 그는 야스코가 일하는 벤덴데이에 도시락을 사러 오는 이웃일 뿐인데 그가 살인의 뒷처리를 하겠다 자청한다. 불현듯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벤덴데이의 주인 사요코의 말이 떠오른다.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 안면 몰수하고라도 손을 잡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이 덮어질리 없다. 사건은 구사나기 형사에게 맡겨지고 구사나기는 자신의 친구인 유가와 교수를 찾아간다. 유가와는 알리바이가 너무나 정확한데 놀라고 그 배후에 자신의 대학 동창인 이시가미가 있다는 걸 알고 비감에 젖는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진정 통하는 데가 있었던 친구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용의자로 그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 유가와의 가슴은 아프다. 유가와는 깊숙이 개입한 듯 하면서도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구사나기는 뭔가 변한 듯한 유가와의 태도에 의문을 가진다.

인간이란 이렇게 간사한 존재인가. 야스코는 자신을 위해 공범자란 오물을 뒤집어 쓴 이시가미보다 구도가 좋다. 구도는 야스코가 술집에 있을 때 자주 찾아온 단골 손님이다. 구도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접은 뒤 일체 오지 않다 신문 기사를 보고 걱정이 돼 찾아온다. 자신의 부인이 세상을 뜬 지금, 구도는 야스코에게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하고 싶어한다. 야스코는 전남편의 속박과 괴롭힘이 싫어 살인까지 하게 됐는데 대상만 바뀌었다 뿐 이시가미가 일일이 지시하는 상황이 간섭처럼 느껴져 몸서리를 친다.

살인사건에 유가와가 뛰어들었으니 이제 범인이 밝혀지는 건 시간 문제다. 유가와는 고뇌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그의 인간적 아픔은 커지기만 한다. 어느날 이시가미가 자수를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시가미는 야스코와 딸이 살인 사건의 범인이 결코 될 수 없도록 이미 그와 연관된 살인사건을 저질러 자신을 살인자로 만들어 놨다. 자신의 희생으로 야스코가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사건이 종결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시가미는 처음부터 야스코의 살인사건이 그 자체로 해결될 수 있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떠앉아야겠다는 마음도 이미 그 때 먹었다.

그러나 유가와는 이대로 끝나게 할 수 없었다. 친구의 바람을 생각하면 이대로 묻어야겠지만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후 허무하게 잊혀질 그를 생각하니 너무 불쌍해 가슴이 터질 듯 했다. 유가와는 야스코를 찾아가 전후 사정을 알려준다. 야스코는 이시가미의 사랑이 그정도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자신처럼 별 볼일 없는 아줌마가 뭐라고 그런 사랑을 받나. 그에게 받은 사랑을 사랑으로 되돌려 줄 순 없지만 대가는 치뤄야겠다며 용단을 내리고 경찰을 찾아간다. 이시가미는 자신이 살인자가 되는 선택으로도 그녀를 지킬 수 없음을 알고 비명을 지르고 만다.

사랑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그 어떤 이야기도 건조할 수 없다. 또한 살인이 들어가면 그 어떤 이야기도 행복할 수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둘 사이의 경계를 줄타듯 오가며 조율한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낡은 주제가 그의 손에 윤색되어 처연한 사랑 노래로 탈바꿈한다. 사랑에 목말랐던 한 수학 수재의 슬픈 운명과 엇갈린 사랑은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맺게 되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하고만 한 남자의 순애보가 가슴을 울린다. 살인의 현장에서 인간의 고결함을 보게 되는 순간 이 책은 비가가 돼버린다. 그 전환점이야말로 이 책이 추리소설의 지평을 넓히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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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모든 전쟁은 인간의 광기로부터 비롯된다. 같은 종의 싹쓸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악한 방식은 참혹한 역사를 불러왔다. 전쟁의 참상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전쟁의 진정한 슬픔은 인간에 대한 어떤 기대도 불식하는데 있다. 일체의 기대도 안한다는 것은 모든 소망을 내려 놓음과 다름없다. 추악한 역사속의 반인륜적 범죄는 참으로 부끄러운 작태였다. 세월에 의해서도 지워지지 않는 행적은 법의 심판과 용서를 통해서만 씻어낼 수 있었다. 미셸 깽의 '처절한 정원'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친독 정부였던 비시정부하의 한 동네에 두 젊은 레지스탕스가 있다. 작중 화자의 아버지와 사촌 동생인 두 레지스탕스는 동네의 변압기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수행한다. 폭파시 뜻하지 않은 사람이 심하게 다치고 두 청년은 다른 청년 둘과 함께 독일군에 체포된다. 생과 사의 기로에 놓여있는 네 명의 청년은 베르나르라는 한 독일 병사의 도움을 받게된다. 그는 생명을 담보로 조롱하고 모욕하는 독일군의 행동에 휘둘리지 말라며 적군임에도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놀라운 말을 들려준다.

"죽고 사는 일을 타인의 손에 맡기거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대가로 자신이 살아난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악의 편에 있는 독일 군복을 입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야."

그들에게 이 이야기는 엄청난 선언이었다. 목숨을 지키는 것만이 최우선이었던 상황 속에 적군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인간다움의 선포는 전율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폭파범이 자수했고 그가 사살됐다는 것이다. 4명은 재수좋게 풀려나고 아버지와 삼촌은 시간이 지난 후 폭파범의 집으로 가게 된다. 아귀가 맞지 않는 폭파범의 자수는 부인의 고발에 의한 것이었다. 변압기 폭발 당시 폭파범은 전기공으로 현장에 있었고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남편의 회생이 불가한 것을 직감한 신혼의 부인은 다른 4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용단을 내린다.
그 부인이 지금 가스똥 삼촌의 부인인 니꼴 숙모다.

그 사건과 연계된 청년들의 삶은 그들의 전생애를 뒤흔들었다. 다른 두 청년 중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고 나머지 한 명은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버린다. 그리고 나머지 두 청년인 아버지와 삼촌의 삶은 극중 화자인 어린 아들의 입을 통해 들려진다. 후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아버지는 수업외의 모든 시간을 어릿광대로 지낸다. 그는 한 푼의 대가도 받지 않은채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슬프고도 우스운 어릿광대로 최선을 다해 무대에 선다. 아버지의 그런 행동은 신경질적 발작의 원인이 될 정도로 어린 아들을 수치스럽게 한다.

시간과 자신의 명예마저 반납한 채 보잘것 없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아버지의 행동은 마치 소명 받은 자의 의무감 같았다. 아들은 인류가 저지른 죄를 용서받기 위해 아버지가 어릿광대라는 가장 초라한 모습을 취했음을 초등학교 졸업 무렵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어릿광대로 살아야만 했던 이유는 후에 가스똥 삼촌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그 날은 예전 독일군 베르나르가 만든 영화의 포스터가 주점의 벽면에 붙여진 날이었다.

미셸 깽은 비시 정부하의 하수인이었던 모리스 파퐁의 재판과 맞물리며 지난 역사의 현재적 진행을 극적으로 대비해 준다. 인간을 죽이는데 자발적인 동의도 인간이 하고, 적군임에도 같은 인간을 지원하는 것도 인간이 한다는 양면적 사실은 우리에게 아픔과 기쁨을 동시에 준다.
이는 인간성의 파괴와 복원 또한 인간에게서 발현된다는 무서운 사실의 직시를 함의한다. 이 책이 던지는 감동이 긴 여운으로 남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자유의지의 이름으로 와 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독일 병사 베르나르가 오랜 숙고 뒤 거침없이 던진 이야기는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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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글쓰기 -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의 지혜
애니 딜러드 지음, 이미선 옮김 / 공존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저자인 애니 딜러드에게 원한 것은 단지 물고기 몇 마리였다. 물고기를 잡는 법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지금 내게 시급한 것은 오늘의 양식이었지 며칠 뒤의 소망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는 물고기는 커녕 물고기 잡는 법에도 일체의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글쓰는 이의 삶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이었다. 젠장, 나는 일개 리뷰어란 말이다. 리뷰어에게 동류의식을 요구하는 건 지나치지 않은가. 그런데 그녀의 글쟁이 의식이 이상하게도 내게 위로가 되었다. 게다가 단지 리뷰어일 뿐인 내 삶과 작가인 그녀의 삶이 무척 비슷했다. 도대체 창살없는 감옥의 희열을 누가 가르쳐주었던가! 누구의 위협이나 강요도 없었건만 제발로 이 자리에 걸어들어와, 이런 삶을 행복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희안하기만 하다.

지금은 가고 없지만 장영희는 예전 자신의 글에 관해 '쥐어짜는 스타일'이라는 고백을 했었다. 그녀의 말이 얼마나 큰 위로를 주었는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녀는 '올해의 문장상'을 받을 만큼 바르고 정확한 글을 썼고 여리고 섬세한 감성에 따스함까지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선지 지성의 요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였다. 그런 그녀도 글을 쓸 때 쥐어짠다는데 하물며 쥐어짜도 나올게 없는 나는 뭘 짜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몇 가닥 남아있지 않은 기억과 알량한 지식들을 붙잡고 글을 쓰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글이라니 오죽 잘 썼겠으며 얼마나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을까! 내 기대는 컸고, 반면에 도움도 안되는 뜬구름 잡는 얘기라면 가차없이 책을 덮을 작정이었다.

내 곤두선 촉각에도 아랑곳없이 넉살 좋게도 애니 딜러드는 글쓰는 이의 일상만 늘어놓고 있다. 그 일상은 내가 걱정했던 바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었다. 글을 쓰다 몇 개의 문단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그건 기적이고, 글이 계속적으로 써지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그녀는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글 쓰는 이가 계획했던 것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책 한 권을 쓰려면 짧게는 일 이년에서 길게는 수 십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기가 막힌 이야기도 그녀는 스스럼없이 했다. 게다가 글이 안써질 때 머리를 찧거나 쥐어뜯지도 말고 또한 느린 속도로 글을 쓰는 자신을 탓하지도 말라고 느긋하게 조언까지 한다.

그렇게 염장을 질러놓고는 그녀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다. 이제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꼈나 보다. 그녀는 글 쓰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며 무엇을 썼느냐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위대한 시작을 말하는 것이며 쓴다는 자체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님을 거듭거듭 강조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이미 써놓은 글은 큰 힘을 발휘하며 그 몇 줄의 글이 쓰는 이에게 얼마나 큰 희망과 자긍심이 되는지도 전해준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이 순간을 아름답게 회상할 날이 올 것이며 결국은 끝나는 날도 온다고 그녀는 격려도 잊지 않는다.

애니 딜러드의 글을 읽다보니 마치 리뷰어를 위해 쓰여진 글 같다는 착각이 든다. 그녀의 글 속에 비춰진 작가와 부끄럽지만 내 삶이 너무도 비슷하다. 계속 읽다보니 리뷰도 한 편의 창작물처럼 느껴진다. 그녀와 나의,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일상이 작가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나는 지금 감격하고 있다. 글을 쓰며 자책하고, 이미 읽었던 문장을 지겹도록 반복해서 읽으며, 고치고 고치기를 거듭하는 시간들이 자신의 삶이었음을 그녀는 말해준다. 과장도 겸양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담담하고도 솔직하게 표현한 문장이 글쓰기의 비법서보다 더 큰 도전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작은 방에서 스스로를 조이고 풀며, 세상과 동떨어진 가운데 글과 씨름해야하는 삶이 어떤 마음가짐을 요구하는지도 언급한다.

그녀는 내게 혹 글쓰는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을 찾고 있느냐고 조용히 묻는다. 그렇다고 나는 얼른 답하고 싶다. 그런데 눈치를 보니 가르쳐줄 마음이 없어 보인다. 나는 쭈뼛거리고 있고 그녀는 진지하고 장엄한 표정으로 내 눈을 응시한다. 그리곤 입을 연다. 앞으로 너의 스승은 지면과 지면 사이에 있는 끝없는 공백이 될 것이라고. 그 스승을 벗삼아 너 자신이 글이 되고 글이 네가 되는 것, 그리하여 글쓰기 안으로 더 들어가는 것이 진짜 너의 글쓰기가 될 것이라 그녀는 들려준다.

그렇다. 글쓰기는 나와의 평생에 걸친 싸움이 될 것이다. 한없이 올랐다가 바닥이 어딘지도 모를 구덩이에 빠지는 좌절을 끝없이 반복하는 삶이, 내 글쓰기가 될 것이다. 절망의 나락과 환희의 순간을 나도 모르게 맞고 보내야 하는 치열한 전쟁의 삶, 그 삶에 내가 초대되었다. 한없이 부족하여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지극히 성찰적인 그 자리에 내 생이 포함된 것이 무척이나 기쁘다. 앞으로도 내 갈등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내 환희 또한 클 것이다. 이제 그 글쓰기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내 삶에서 시작되었다. 시간은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까. 내 기대는 마냥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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