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가방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가와카미 히로미의 책을 읽었다.
그녀의 글은 담백했다.
그러나 담백하다는 말만으로는 느낌이 다 전달되지 않는다.
글에서 느껴지는 우아함은 어떻게 표현해야 될까?

표현을 달리 해야겠다.
그녀의 글은 담아했다고.
그 느낌은 수사 때문은 아니었다.
인간의 감정을 대하는 그녀의 접근 방식이 달라서였다.

'선생님의 책가방'
이번이 세번째다.
소소한 일상과 자잘한 일들이 다른 나라, 다른 정서의 옷을 입고 내 감성과 맞닿아있다.
그것이 이유였달까......

이처럼 잔잔한 글은 오랜만이다.
참으로 신선하다.

정돈된 감정들이 불러일으키는 산뜻함은 여운이 길다.

'선생님의 가방'은 2001년도 다니자키 준이치로 수상작이다.

30대 후반의 미혼 여성과 30년 정도의 나이 차가 나는 고등학교 때의 국어 선생님이 조그만
주점에서 조우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선생님은 부인과 사별해 혼자 살고 있고 그녀 또한 조그만 직장을 다니며 집 근처에
따로 방을 얻어 혼자 산다.

둘의 만남은 무척이나 싱겁다.
선생님은 한결같이 정중하며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그에 걸맞는 옷차림을 하고 있다.
둘은 오며가며 만날 뿐 약속을 하고 만나진 않는다.
만나도 별 말은 없다.
때론 옆에서 때론 바로 앞에서 함께 시간을 가질 뿐이다.

이 만남은 세월 속에 서로를 향한 기다림으로 발전하게 되고 마침내 공식적인 데이트를
갖게 된다.
둘은 손을 맞잡은 채 일정한 보폭으로 그들만이 만들수 있는 시간을 멋있게 직조한다.

그들의 특별한 사랑은 선생님이 살아계시는 5년 동안 계속된다.
함께 있을 필요는 없지만 함께 있는 것이 온당한 듯한,
마치 책과 띠지의 관계같은 자연스러운 밀착이 단색톤으로 표현된다.

무척이나 담담한 사랑이다.
어떤 수식이나 정교한 장치도 없이 오로지 여백이 주는 무미한 맛이 이 책의 으뜸이다.

'객관적 거리 두기'나 '한결 같은 낯설음'이 끈끈한 정보다 나을 때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 하다.

어디에도 속해 있는 것 같지 않은 시간의 아름다움이 작가의 눈을 통해 섬세하게 복원된다.
누군가와 시간을 함께 한다는 건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자연스레 수행하기 때문이다.
행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촌스러움이 이 책에는 없다.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조금 놀라게 된다.

절제된 감정의 글은 마치 생수 같다.
속 깊이 전달되는 무미의 맛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 하다.
그 맛을 느끼고 싶어 세번이나 읽은 건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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