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모든 전쟁은 인간의 광기로부터 비롯된다. 같은 종의 싹쓸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악한 방식은 참혹한 역사를 불러왔다. 전쟁의 참상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전쟁의 진정한 슬픔은 인간에 대한 어떤 기대도 불식하는데 있다. 일체의 기대도 안한다는 것은 모든 소망을 내려 놓음과 다름없다. 추악한 역사속의 반인륜적 범죄는 참으로 부끄러운 작태였다. 세월에 의해서도 지워지지 않는 행적은 법의 심판과 용서를 통해서만 씻어낼 수 있었다. 미셸 깽의 '처절한 정원'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친독 정부였던 비시정부하의 한 동네에 두 젊은 레지스탕스가 있다. 작중 화자의 아버지와 사촌 동생인 두 레지스탕스는 동네의 변압기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수행한다. 폭파시 뜻하지 않은 사람이 심하게 다치고 두 청년은 다른 청년 둘과 함께 독일군에 체포된다. 생과 사의 기로에 놓여있는 네 명의 청년은 베르나르라는 한 독일 병사의 도움을 받게된다. 그는 생명을 담보로 조롱하고 모욕하는 독일군의 행동에 휘둘리지 말라며 적군임에도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놀라운 말을 들려준다.

"죽고 사는 일을 타인의 손에 맡기거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대가로 자신이 살아난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악의 편에 있는 독일 군복을 입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야."

그들에게 이 이야기는 엄청난 선언이었다. 목숨을 지키는 것만이 최우선이었던 상황 속에 적군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인간다움의 선포는 전율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폭파범이 자수했고 그가 사살됐다는 것이다. 4명은 재수좋게 풀려나고 아버지와 삼촌은 시간이 지난 후 폭파범의 집으로 가게 된다. 아귀가 맞지 않는 폭파범의 자수는 부인의 고발에 의한 것이었다. 변압기 폭발 당시 폭파범은 전기공으로 현장에 있었고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남편의 회생이 불가한 것을 직감한 신혼의 부인은 다른 4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용단을 내린다.
그 부인이 지금 가스똥 삼촌의 부인인 니꼴 숙모다.

그 사건과 연계된 청년들의 삶은 그들의 전생애를 뒤흔들었다. 다른 두 청년 중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고 나머지 한 명은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버린다. 그리고 나머지 두 청년인 아버지와 삼촌의 삶은 극중 화자인 어린 아들의 입을 통해 들려진다. 후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아버지는 수업외의 모든 시간을 어릿광대로 지낸다. 그는 한 푼의 대가도 받지 않은채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슬프고도 우스운 어릿광대로 최선을 다해 무대에 선다. 아버지의 그런 행동은 신경질적 발작의 원인이 될 정도로 어린 아들을 수치스럽게 한다.

시간과 자신의 명예마저 반납한 채 보잘것 없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아버지의 행동은 마치 소명 받은 자의 의무감 같았다. 아들은 인류가 저지른 죄를 용서받기 위해 아버지가 어릿광대라는 가장 초라한 모습을 취했음을 초등학교 졸업 무렵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어릿광대로 살아야만 했던 이유는 후에 가스똥 삼촌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그 날은 예전 독일군 베르나르가 만든 영화의 포스터가 주점의 벽면에 붙여진 날이었다.

미셸 깽은 비시 정부하의 하수인이었던 모리스 파퐁의 재판과 맞물리며 지난 역사의 현재적 진행을 극적으로 대비해 준다. 인간을 죽이는데 자발적인 동의도 인간이 하고, 적군임에도 같은 인간을 지원하는 것도 인간이 한다는 양면적 사실은 우리에게 아픔과 기쁨을 동시에 준다.
이는 인간성의 파괴와 복원 또한 인간에게서 발현된다는 무서운 사실의 직시를 함의한다. 이 책이 던지는 감동이 긴 여운으로 남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자유의지의 이름으로 와 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독일 병사 베르나르가 오랜 숙고 뒤 거침없이 던진 이야기는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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