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 문서정 소설집
문서정 지음 / 강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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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려진 칼처럼 날이 선 사람들이 있다. 곤두선 신경과는 달리 마음은 약해 그들은 조금만 다쳐도 아파 견디질 못한다. 생에 시달리다 못해 화가 나 있는 그들에겐 사소한 말도 버겁다.

그러나 살짝만 닿아도 살을 가를 것 같은 기세와는 달리 그들이 지닌 칼은 무디다. 누군가를 해치려는 용도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쓰임에서다. 칼을 들고라도 나서지 않으면 생을 이어가기 힘든 이들은 먼저 찌르거나 외면하고, 은폐하거나 버리면서 도리어 버려지는 모순 속에 산다.

『눈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는 삶이란 숙제를 안고 피 흘리며 사는 이들의 격통이 담긴 문서정의 소설집이다. 책에는 평생에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한 사연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여덟 편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배우가 여러 인물로 분해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가슴과 손에 번뜩이는 칼을 품은 「밤의 소리」의 희명은 어릴 때 입은 화상으로 인조 귀를 붙이고 다니는 스물일곱 살의 아가씨다. 다른 한 쪽의 청력마저 잃어 보청기를 끼지만 희명은 거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한데 기이한 일은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밤부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희명은 들리지 않는 낮의 세계와 세미한 소리마저 들리는 밤의 세계를 산다.

희명은 P시청 본관에 있는 도서관의 사서로, 같은 장애인 공무원이자 관 내 갤러리의 큐레이터 겸 실장인 조승우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조승우의 집을 방문하던 날 희명은 자신의 왼쪽 귀가 인조임을 알게 된 그와 다투게 되고, 서로를 수용하지 못한 채 뺨을 때리며 헤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희명은 자신의 옆 호에 사는 말더듬이 총각이 생을 멈추려는 것을 보고 구해준 후 세상과 맞서 나갈 수 있도록 욕을 가르친다. 빨간 셰퍼드라는 별명에 맞게 공격적 수비법을 가르치면서 이런 날 조승우에게 연락이 오면 행복한 밤이 될 거라 생각한다. 벼려진 칼이 되어 자신을 지키는 희명의 이야기는, 사회적 약자의 생존이 물어뜯기라는 처절함 속에 나온다는 것을 아프게 보여준다.

첫 작인 「레일 위의 집」의 서준과 마지막 작인 「소파 밑의 방」의 수현은 다르고도 흡사하다. 기간제 교사인 서준과 주간지의 훈남 기자 수현은 제목에서 전해지는 느낌 그대로 불안한 현실을 지탱하기 위해 분투하며 산다. 그들은 어릴 적 자신을 둘러싼 환경으로 인해 위선조차 부리지 못하는 용렬함과 분노 조절 장애라는 생의 부산물에 각기 눌려있다.

서준은 역사에서 만난 오갈 데 없는 수영과의 짧았던 일탈로 자신의 생이 꼬일까 두려워 연거푸 그녀를 외면한다. 버림받은 수영은 자기처럼 구질구질한 인생을 구원해준다는 미명 하에 노숙자의 살인까지 감행한다. 결혼을 며칠 앞두고 파혼 했던 수현은 이제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정원을 추억하며, 그녀와의 사랑을 떠올리는 소파를 과감히 정리한다. 버리고 외면하는 서준에게 생은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까. 자신을 직시하고 생이 새긴 상처를 받아들인 수현은 또 어떤 삶을 짤까.

「개를 완벽하게 버리는 방법」의 은성과 「밀봉의 시간」의 나는 다른 이에 의해 삶이 무너지거나, 다른 이를 추락하게 만든 상처로 괴로워한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거나, 가해의 상처를 지우고 싶어 기억을 잃은 물고 물리는 삶의 정경은 인생의 불가해성과 함께 인생이 지난한 숙제이자 범접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임을 처연히 보여준다.

소설 속의 그들은 삶의 격랑 안에 일그러지고 부서지며 벼랑 끝이나 폭풍의 한가운데 홀로 서 있다. 한 줄기 빛조차 보이지 않는 현실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건진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 뿐인데 그들은 버티며 내일을 기약한다. 그런 그들의 눈물은 삶의 결정체이고, 수많은 버려짐을 통해 터득한 존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눈물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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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07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Hello,Stranger 2021-07-08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초딩님의 당선작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