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말하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1
김혜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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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의 기자 김혜리는 내게 떨리는 그대다. 김혜리가 불러오는 설레임은 인터뷰이에 대한 그녀의 한시적이고도 온전한 짝사랑처럼, 내게도 그렇다. 인터뷰이를 대하는 정중하고도 진지한 자세, 주도면밀한 준비, 섬세하고도 결다른 언어 감각은 나른한 만족을 선사한다. 이 사뭇 중독적인 충일은 그녀에게 빠지게되는 강력한 질료가 되고만다.


조심스럽지만 용감하고 따뜻하지만 간혹 무미한 그녀의 글은, 피상과 안일을 거부하며 조용히 도발한다. 그녀의 글이 매혹적인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터뷰이가 속한 직업적 환경에 대한 전문가급의 식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인터뷰이와 읽는이를 동시에 긴장시키며 대화의 즐거움을 배가한다. 그녀의 글이 사랑받는 이유다.

 

김혜리의 인터뷰는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제한된 시간과 집중불가한 공간적 상황을 장악하는 그녀의 보이지 않는 뚝심이야말로, 그녀의 인터뷰가 왜 색다른지를 가르는 원천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그녀에게 말하다』 앞날개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인터뷰어로서의 붙임성과 순발력은 좋지 않지만, 어딘가 '절박해' 보이는 인상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자평한다. 새로운 약속 장소로 향할 때마다 팔뚝에 잔소름이 돋을 만큼 긴장하면서도, 언젠가 한번쯤 대화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수첩 한 페이지에 남몰래 적어넣고 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김혜리를 그되게 만드는 특질이다. 그러나 김혜리 인터뷰의 특징은 전체를 아우르며 부분에도 구체적 특별성을 띈 독특함이다. 인터뷰이에 대한 소개가 긴것도 그렇지만, 도입부의 글은 따로 떼어놓고 그 부분만 모아도 한 권의 책으로 손색이 없을만큼 독창적이며 이미 그대로 충분하다.

 

"십 수 년 전, <댕기>라는 잡지에서 만화가 김진이 어두운 고교 시절을 회고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버렸다고 마음먹었다 치더라도 그건 그냥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고, 어느 순간 죽어도 아무 남을 게 없으리라던 외로움들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저가될 것이다" 라고 그는 썼다. 증오도 향수도 풍화된 그 문장에 나는 크게 위로받았다. 김진과 그녀의 만화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일부러 위안하려고 애쓰지 않음으로써 위로했고, 꽃 속같이 천진한 영혼들이 기어코 심연을 들여다보게 하는 가혹한 성장담을 통해 살아갈 기운을 주었다. 슬픔과 기쁨 사이에 복잡한 표정으로 멈추어선 이야기를 통해 남들이 표현한 감정을 외워 말하는 것은 좋은 버릇이 아니라는 것을 엄격히 가르쳐 주었다. 언젠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 ㅡ만화가 김진 (본문 77쪽)

 

" 언제인가부터 나는 소심한 사람들의 괴력을 눈치채게 되었다. 대범한 사람들이 세계를 들썩들썩 움직이는 동안 소심한 사람들은 주섬주섬 세상을 해석한다. 살아남기 위해 예민해질 도리밖에 없는 초식동물처럼 그들은 누가 힘을 가졌는지 계절이 언제쯤 변하는지 민첩하고 정확하게 읽어낸다. 미미한 자극에 큰 충격을 받고 사소한 현상에 노심초사하는 그들의 인생은 남보다 느리게 흐른다. 타고난 관찰자이며 기록자인 그들의 소극적 복수는 '이야기'다. 그들은 더디게 살기 때문에 삶을 사는 동시에 재구성한다. 목소리 큰 당신이 휘어잡았다고 생각하는 어젯밤 술자리에서 벽지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듣기만 하던 동료가 있었던가. 그가 잠들기 전 떠올린 스토리 속에서 당신은 놀림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계의 평형을 유지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라고 판명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ㅡPD 김병욱 (본문 115쪽)

 

위 글들은 인터뷰이에 대한 소개글로, 소개글 전체의 3분의 1도 채 안되는 분량이다. 나머지 3의 2도 이 같은 밀도로 채워지며, 이후 몇 배나 되는 구체적 인터뷰가 들어간다. 이토록 많은 분량을 글로 채우는 것은 여간 수고스런 일이 아니다. 녹취를 푸는 일의 고단함은 삶의 고단함 만큼이나 힘겨우니까. 이 정도 분량을 채우기위해 김혜리는 날밤을 새웠을 것이고, 독자인 나는 잔인하게도 그녀의 수고를 통해 위로와 포만을 느낀다.

 

소설가 정이현은 '이 책을 내가 읽은 최고의 인터뷰집이라 감히 말한다'며 추천사를 썼다. 그러나 나는 아직 유보중이다. 『그녀에게 말하다』 보다 『진심의 탐닉』을 먼저 읽었고, 읽으며 감탄했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 손을 들어줄까? 좀 더 고민해 보아야겠다. 하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내게 최고의 인터뷰어는 김혜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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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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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고통의 순간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질문을 담은 엔도 슈샤쿠의  『침묵』을 읽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가장 인자한 얼굴을 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찌나 섬찟하던지 아직도 그 느낌이 잊혀지지 않는다. 험악한 얼굴을 한 사람은 경계라도 하지만, 어떤 의도를 가진 사람이 인자한 얼굴에 따뜻한 말로 위로를 건내며 더욱이 신뢰까지 쌓는다면 그 수중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들것 같다. 그런 사람을 장르 불문하고 사기꾼이라 하는데, 그런 사람에게 걸리면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도리가 없다며, 심지어 자신 같은 사람도 걸리면 빠져나가지 못하니 제발 당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직업은 검사다.

 

​검사라...우리 사회는 검사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검사를 단지 직업군의 하나로 보았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런 반응을 뒤집으면 그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일터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들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뼈를 깍는 심정으로 새롭게 하겠다'는 말을 수뇌부가 하도 많이 써서, 더 이상 깎을 뼈도 남아있지 않다는 어느 검사분의 자조적인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웅도 일부 검사 때문에 싸잡아 욕먹는 상황을 억울해 한다.

 

 

한데 참 재미있는 현상은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사람들이 검사가 글을 쓰면 읽어준다는 거다. 그들만의 세상에 대한 궁금함은 아닐까 싶다. 그러면 나는 왜 읽었느냐, 소개 글 중 생활형 검사라는 말에 꽃혀서이다. 요즘 들어 새롭게 추가된 내 삶의 기준 중 하나가 재미인데, 『검사내전』은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충족시켜준 책이었다. 

 

김웅은 자신을 가리켜 당청꼴찌, 팔랑귀, 맹탕, 또라이라 칭하며 선배 검사에게 또라이에서 집요한 또라이로 승격되어 불렸다는 것도, 피의자에게 의식없는 검사라 불렸다는 것도 적는다. 자신의 수사 스타일을 보고 같은 검사가 구걸수사의 달인이라 불러주었다는 것도 서슴지 않는데, 이 뿐 아니다. 자신이 알기는 칠월 귀뚜라미요, 안다니 똥파리라는 우스꽝스러운 말도 능청스럽게 한다. 게다가 자신은 어릴 때부터 온갖 병을 두루 섭렵했으며, 백만 문청 중 하나라 출판사가 책을 내자는 제의를 했을 때 회가 동했음도 솔직히 고백한다.

김웅은 자신이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 직장 생활이 늘 순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검사를 하면서 별 탈이 없었던 것은, 검찰이라는 조직 문화가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유연하고 열려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이 되어 자신이 맡은 임무를 다하겠다'는 선배 검사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그 또한 자신의 위치를 생활형 검사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생활형 검사는 형사부 소속의 검사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말인듯 하다. 

 

"검사는 남의 말을 들어주는 직업인데, 또 남의 말을 절대로 안 듣는 직업이기도 하다. 검사라는 직업이 참 맹랑한 게, 어서 말을 하라고 하고서 정작 말을 하면 거짓말한다고 윽박지르곤 한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늘 술래 역할만 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나는 수사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남의 말을 잘 듣는 능력을 가졌다. 의심스럽겠지만 '경청하는 법'이라는 주제의 강의도 했다." (138쪽)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경청이 중요하니 어쩌니 해도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검사실에서 하는 말들은 대부분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조사받는 피의자의 말도 거짓말이고, 돈을 바라고 ​고소한 것은 아니라는 고소인의 말도 거짓말이다. 조사하면 다 밝혀진다고 위협하는 검사의 말도 거짓말이다. 조사해서 다 밝혀질 거라면 굳이 사실을 실토하라고 수고롭게 설득할 리 없다. 그래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무렵 나는 사람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139~140쪽)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남의 말을 잘 믿고 잘 속는 나로 복귀했다. 잘 믿고 잘 속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비웃었던 남의 말이 진실이었다는 게 밝혀지면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말도 많은 편이지만 어떤 사람의 말도 잘 들어주고 맞장구도 잘 쳐준다."​   (140쪽)

 

잘 읽히는 책이다. 편하게 읽히기도 하고, 주의 깊게 읽으면 더 좋은 곳도 꽤 많다. 읽다보니 검사직의 애환도 조금 알겠다. 조직이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만드는 건데 김웅 같은 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면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위로를 받겠다 싶다. 물론 안 마주치는 게 가장 좋겠지만 말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하지않는가. 그런데 그 자리는 지푸라기가 아니라 어느 한 사람의 사회적 생존권을 쥐고 있는 자리 아닌가. 

 

나는 사람이 답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재앙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답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답이다. 이렇게 사람이 넘쳐나는데 늘 ​사람을 찾는 걸 보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서두에 말했듯 인상 좋고 모든 것을 다해줄 것처럼 말 풍년인 사람을 나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좋은 자리에 있음에도 자신의 별볼일 없음을 편히 말하는 사람이 좋다. 그렇게 말한다고 그를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자신을 소탈하게 말했다고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도 모르진 않는다.

 

"나는 그녀의 어리석음에 왈칵 짜증이 났지만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그녀의 진심에 그만 부끄러워졌다. 자신에게 죄를 덮어씌운 사람임에도 그녀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녀에게 "아이고 죽네, 죽어"라고 말했던 경박함이 부끄러워진다. 어릴 때 동네 아이들로부터 따돌림 당한 기억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무작정 흉내내보려 하다 보니 점점 경박해졌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혹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나 반응을 보이더라도 내 얕은 수준에서 쉽게 판단하기보다 좀 더 기다려보고 존중하는, 성숙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남의 말을 잘 믿어주는 것과 달리 그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165쪽)

 

​김웅만 그렇겠는가. 누구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이제 나도 마무리를 해야겠다. 김웅이 그다운 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으니, 나는  기가 막히게 내 마음을 표현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며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민섭의 글로 대신하련다.

"아, 역시 잘하는 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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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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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공중보건의로 일했고, 지금은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김승섭 교수가 세상에 내놓은 첫 책이랍니다. 언론의 극찬을 받은 책이라하여 작년 말 사놓고는, 제법 되는 두께에 눌려 책장 한 구석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더랬습니다. 언젠가부터 책 읽기가 힘겨워지고 밀도있는 글도 쓰지 못하는 터라,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평에 끌려 제게 오게 하였습니다.

인문교양서나 사회비평서로 분류되는 글인데 어쩜 이리 아름다운지요. 기저에 슬픔이 깔려서일까요? 이 책을 통해 아름다운 글은 문장 자체가 가진 고유의 힘에 의해서도 나오지만, 대상을 대하는 사람의 애정에도 크게 기인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처연한 느낌이 계속 저를 잡고 있습니다. 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저이기에 어쩌면 저 자신에 대한 애처로움이 투사되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고 리뷰라는 이름의 글을 올리는 것이 이 책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리뷰를 무용하게 하는 책이랄까요? 조금 과장되이 말하자면,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어떤 문장을 올려도 평균 수준의 리뷰보다 낫지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감상을 올리지 않는다면 선악을 분별하지만 침묵하는 자의 비겁함이 되지 싶어 책의 일부분을 올리는 것으로 면피코자 합니다.

<건강은 공동체의 책임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변화는 항상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나타나고 진행됩니다. 공동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에,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개개인으로만 바라볼 때 그런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난 100년간 거대한 혁신을 이뤄낸 현대의학으로도 알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병원에 찾아오는 개개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병원의 임상진료 과정에서는 환자 개개인의 몸에 새겨진 사회구조적 원인을, 현상 너머에서 작동하는 정치·경제적 구조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중략...

그러나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이들을 아프게 했던 '원인의 원인'이 보입니다. 그 원인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위험한 작업장을 방치했던 일터가 금연율을 낮췄고, HIV 치료약 공급을 전적으로 민간보험에 맡겨둔 지역사회가 AIDS 사망률을 높였고, 경제 위기 속에서 공공보건의료 영역의 투자를 줄이기로한 국가의 결정이 결핵 사망률을 증가시켰습니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강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요건이기 때문이지요.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경제적인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건강해야 공부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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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유혹에 영혼을 던진 렘브란트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외국편 5
노성두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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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주된 기능이 무엇이냐'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위로 '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좋다'라는 이 한 마디의 말이 나왔다면 예술은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영혼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음악이건, 미술이건, 또 다른 무엇이건간에 누군가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내거나 '어때, 멋있니?' 라는 말을 물어온다면 예술은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 맞다. 예술이 '예술을 위한 자리'가 아닌 '인간을 위한 자리'로 내려올 때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발휘된다. 더 깊숙히 들어가면 실상 예술은 '보여지는 세계' 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잔잔한 초대장인 거다.

그 예술의 자리로 안내하는 책이 있어 마치 추천서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무엇보다 작가의 성실함이 글 전반에 담겨 있었고 글의 유려함과 여운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특히나 글 자체가 주는 매력이 그림과 더불어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에게 내 가슴의 이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이 책은 어린이에게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단다. 덧붙여 미술 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며, 작품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다양한 맥락에서 살펴보게 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한다. 그 기획 의도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책을 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렘브란트이다. 렘브란트에 대해서는 이름만 많이 들었다 뿐이지 그닥 아는 것도 별로 없다. 변명 같은 말을 하자면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사람들도 많고 르네상스 이후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화가들의 이름과 작품을 제대로 안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렘브란트를 가리켜 '빛의 화가'라 한다. 우리는 빛에 대해 무덤덤하지만 화가들에게 빛은 무척 경이로운 대상인 듯 하다. 그들은 빛과 그림자를 통해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형태를 빚어내고 음영의 효과를 이용해 마치 손에 잡힐 듯한 입체감도 만들어낸다. 빛과 어둠은 단순히 평면 위에 입체감만 부여하는게 아니라 캔버스의 균형감까지도 조율하니까. 더욱 놀라운 것은 빛과 어둠을 통해 도덕성까지도 드러낼 수 있단다. 경이롭기만 하다.


렘브란트는 온종일 빛과 더불어 그림을 그렸지만 그러나 그의 생에 내린 어둠은 무척 짙었다. 그의 작품성은 자신의 공방을 차리기 전인 19살부터 인정 받았지만 그의 생은 인간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고뇌의 시간들로 채워졌다. 렘브란트가 2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7살에 결혼해 얻은 첫 아이는 생후 두 달 만에 세상을 뜨며, 3년 뒤에 얻은 둘째 아이도 한 달이 못 돼 이별을 하고 만다. 그후 2년 뒤에 태어난 셋째도 한 달이 못 돼 사망하고, 그 해에는 자신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게 된다.


자식을 셋이나 잃은 충격으로 아내는 시름시름 앓게 되고, 네째 아들을 낳은 후 그의 아내는 제대로 키워보지도 못한 채 생후 1년도 안된 아기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다. 36살의 남자가 7명의 가족을 떠나보내는 엄청난 슬픔을 만나고 있다. 그 후 렘브란트는 어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유모를 들이는데 그의 명성을 탐낸 유모가 결혼을 요구하는 바람에 재판까지 가는 시끄러운 일을 겪게된다. 결국 유모는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만다.


몇 년 후 첫번째 부인을 떠나 보낸 상처도 잊을 만큼 예쁜 처녀를 유모로 들이게 되지만 첫 부인의 유언서 작성으로 정식으로 재혼을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 졸지에 동거녀가 된 그의 아내는 결국 교회 법정에 서게 되고 결혼도 못한 상태로 딸을 낳게 된다. 이 일은 렘브란트의 명성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그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두번째 아내도 9년 후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의 첫 부인이 낳은 아들은 자신이 결혼한 그 해에 2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차마 짐작도 할 수 없다. 그에게 어떤 말을 전해야할지,어떤 말이 그에게 위로가 될지 잠시 생각해 본다. 하지만 입도 떨어지지 않는다. 입을 닫고 가만히 곁에 있어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되리라. 빗장 닫힌 그의 방은 열릴 줄 모르고 그는 그림과 더불어 하루 하루를 보낸다. 절망이 가득한 삶, 너무한 가혹한 삶. 그러나 이 속에서 예술이 나온다. 예술은 이렇듯 인간의 고통을 먹고 출생한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삶의 질곡을 통과하면서 더 깊어진다. 모든 잔가지들을 쳐내고 오로지 하나의 목표에만 집중하는 그의 눈은 오히려 고요하다. 내면에 폭풍이 휘몰아칠수록 그의 시선은 흔들림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렘브란트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빛이 아니라 고뇌, 또는 어둠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빛의 화가'라 부른다. 말년의 그의 자화상도 그가 '빛의 화가'로 불리는데 손색 없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그는 자신의 아픔들을 어둠으로 덮지 않았다. 그리곤 그 절규의 시간들을 그림과 더불어 싸우며 통과했다. 한 인간이 지난한 고통과 혹독한 운명의 굴레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을 던졌을 때 예술은 아주 작고도 작은 수식어 하나를 던져 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빛의 화가'로 등극하였고 그의 그림은 세월이 가도 지워지지 않는 감동을 작품 안에 가득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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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은 죽지 않는다 - 종이책의 미래를 짊어진 서점 장인들의 분투기
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백원근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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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 가진 안정적이고도 차분한 분위기를 나는 사랑한다. 서점이란 공간이 만들어내는 친숙하고 편안한 느낌은, 내 집은 아니지만 내 집보다 더 좋은 어떤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책만이 낼 수 있는 향훈과 그 질감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랑 고백은 순전하지 않다. 사랑하면 좋으나 싫으나 한결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인터넷 서점에 비해 할인율이 적다는 이유로 한때 잘 가지도 않았고, 때로는 이용만 했다. 원래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지는 게임이다. 사랑과 이용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나를, 그럼에도 서점은 온전히 품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서점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내가 그렇게 무심한 사이 서점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1994년 5,683개였던 서점이 근 20여년 만에 4,100 곳이 넘게 폐업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서점 수는 1,559 곳으로 줄어들었다.(한국서점편람 2016)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렇게까지 지역 서점들이 사라졌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물론 최근 도서정가제로 인한 경쟁력 강화로 지역 서점의 숨통이 트이고, 독립서점의 출현 등 반가운 소식이 들리긴 해도 지역 서점은 여전히 위기 속에서 허덕이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난 뭘하고 있었던 걸까? 서점을 사랑한다며, 책을 많이 읽는다며 자만하고 있을 때 서점은 벼랑 끝에 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점의 부재야말로 우리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것을 왜 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예전 직장에 다닐 때 지진 몸을 잠시 쉴 겸 서점에 가면, 몸보다 더 지친 마음이 쉴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집어 몇 장 넘기고 나면 피곤함이 사르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동화책은 정말 좋았다. 읽을수록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렇게 환상적인 책들이 나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삶이 서럽게 느껴질 때 서점 안에 있으면,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 위로보다 더 큰 위로를 받았다. 잔잔하지만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따스함에 힘을 낼 수 있었고, 씩씩하게 다시 삶을 꾸려갈 수 있었다. 

 

그래서 젊어 한동안, 서점에 대한 내 감정이 나만의 짝사랑인줄 알았다. 당시는 인터넷 서점도 없었고, 생긴 후에도 굳이 이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하고 서점을 자주 찾지 않게 되면서, 서점은 내 기억 속의 아름다운 장소로만 남게 되었다. 자주 들르지 않게 되니 마음에서도 멀어졌다. 서점이 나란 사람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임을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책을 파는 곳, 그래서 좋은 곳으로만 한정짓고 있었다. 쥰쿠도서점의 후쿠시마 아키라가 그의 책 '희망의 서점론'에서 "독자란 책의 후원자"라 정의한 것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책을 읽는 내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내 짧은 소견이  부끄러웠다. 어떻게 그런 의식을 한번도 가져보지 않았는지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난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채 물신주의적 사고에 물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나름 인문학 책을 읽는다는 사람이, 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비루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니...사람만이 미래라고 하면서, 서점인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나를 누가 죽비로 등이 아니라 머리를 쳐줬으면 싶었다. 그길로 딸 아이의 손을 잡고 서점을 찾았다. 그래야 미안한 마음이 가실 것 같았다.    

 

서점은 여전했다. 잔잔한 음악에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책이 서가에 가득 꽂혀 있었다. '그래, 이 느낌이었어.' 이 느낌을 내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삶이 힘들 때 책 속에서 다시 힘을 찾았던 엄마처럼 내 아이도 그리 되길 간절히 바랐다.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있는지조차 모를 직원은 움직임마저 조용했다. '만일 이 서점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내 아이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서점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졌던, 서점은 우리 동네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서점이 단순히 그리움의 장소로만 기억되면 안될 것 같다. 사람들의 발길을 서점으로 돌릴 수 있도록 진지하고도 꾸준한 변화가 선행되어야지 싶다. 종이책의 위기를 말하지만, 서점의 미래는 앞으로 더 혹독할지 모른다. 어디를 가나 딱딱하고 비슷한 서가의 배열은, 서점을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하는 매력없는 공간으로 전락시켰다. 이제 각 서점만의 특장점을 부각시키고, 지역이 요구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서점 운영에 반영해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서점인들도 스스로 책과 책 사이의 숨겨진 스토리를 개발하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 자생력을 키워야하지 싶다. 그래야 서점이 단순한 책 판매장이 아닌 책으로 인해 꿈 꿀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어쩌면 이미 시도해 왔고 별 효과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서점이 존재하는 한 계속되어야 할 준엄한 숙제이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불확실할지도 모를 효과에도 불구하고 고객으로서 이것만은 장담할 수 있다. 아이들이 존재하는 한 그 일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며, 서점에서 자신의 미래를 발견하는 아이들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지금까지 서점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사명감을 갖고 맡겨진 일을 해왔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찾아올 수 있을지, 서점은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 일에 독자이자 서점의 수혜를 입은 나도 작은 발걸음이지만 동참할 계획이다. 책의 후원자란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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