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은 죽지 않는다 - 종이책의 미래를 짊어진 서점 장인들의 분투기
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백원근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서점이 가진 안정적이고도 차분한 분위기를 나는 사랑한다. 서점이란 공간이 만들어내는 친숙하고 편안한 느낌은, 내 집은 아니지만 내 집보다 더 좋은 어떤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책만이 낼 수 있는 향훈과 그 질감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랑 고백은 순전하지 않다. 사랑하면 좋으나 싫으나 한결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인터넷 서점에 비해 할인율이 적다는 이유로 한때 잘 가지도 않았고, 때로는 이용만 했다. 원래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지는 게임이다. 사랑과 이용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나를, 그럼에도 서점은 온전히 품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서점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내가 그렇게 무심한 사이 서점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1994년 5,683개였던 서점이 근 20여년 만에 4,100 곳이 넘게 폐업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서점 수는 1,559 곳으로 줄어들었다.(한국서점편람 2016)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렇게까지 지역 서점들이 사라졌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물론 최근 도서정가제로 인한 경쟁력 강화로 지역 서점의 숨통이 트이고, 독립서점의 출현 등 반가운 소식이 들리긴 해도 지역 서점은 여전히 위기 속에서 허덕이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난 뭘하고 있었던 걸까? 서점을 사랑한다며, 책을 많이 읽는다며 자만하고 있을 때 서점은 벼랑 끝에 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점의 부재야말로 우리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것을 왜 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예전 직장에 다닐 때 지진 몸을 잠시 쉴 겸 서점에 가면, 몸보다 더 지친 마음이 쉴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집어 몇 장 넘기고 나면 피곤함이 사르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동화책은 정말 좋았다. 읽을수록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렇게 환상적인 책들이 나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삶이 서럽게 느껴질 때 서점 안에 있으면,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 위로보다 더 큰 위로를 받았다. 잔잔하지만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따스함에 힘을 낼 수 있었고, 씩씩하게 다시 삶을 꾸려갈 수 있었다. 

 

그래서 젊어 한동안, 서점에 대한 내 감정이 나만의 짝사랑인줄 알았다. 당시는 인터넷 서점도 없었고, 생긴 후에도 굳이 이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하고 서점을 자주 찾지 않게 되면서, 서점은 내 기억 속의 아름다운 장소로만 남게 되었다. 자주 들르지 않게 되니 마음에서도 멀어졌다. 서점이 나란 사람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임을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책을 파는 곳, 그래서 좋은 곳으로만 한정짓고 있었다. 쥰쿠도서점의 후쿠시마 아키라가 그의 책 '희망의 서점론'에서 "독자란 책의 후원자"라 정의한 것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책을 읽는 내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내 짧은 소견이  부끄러웠다. 어떻게 그런 의식을 한번도 가져보지 않았는지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난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채 물신주의적 사고에 물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나름 인문학 책을 읽는다는 사람이, 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비루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니...사람만이 미래라고 하면서, 서점인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나를 누가 죽비로 등이 아니라 머리를 쳐줬으면 싶었다. 그길로 딸 아이의 손을 잡고 서점을 찾았다. 그래야 미안한 마음이 가실 것 같았다.    

 

서점은 여전했다. 잔잔한 음악에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책이 서가에 가득 꽂혀 있었다. '그래, 이 느낌이었어.' 이 느낌을 내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삶이 힘들 때 책 속에서 다시 힘을 찾았던 엄마처럼 내 아이도 그리 되길 간절히 바랐다.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있는지조차 모를 직원은 움직임마저 조용했다. '만일 이 서점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내 아이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서점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졌던, 서점은 우리 동네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서점이 단순히 그리움의 장소로만 기억되면 안될 것 같다. 사람들의 발길을 서점으로 돌릴 수 있도록 진지하고도 꾸준한 변화가 선행되어야지 싶다. 종이책의 위기를 말하지만, 서점의 미래는 앞으로 더 혹독할지 모른다. 어디를 가나 딱딱하고 비슷한 서가의 배열은, 서점을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하는 매력없는 공간으로 전락시켰다. 이제 각 서점만의 특장점을 부각시키고, 지역이 요구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서점 운영에 반영해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서점인들도 스스로 책과 책 사이의 숨겨진 스토리를 개발하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 자생력을 키워야하지 싶다. 그래야 서점이 단순한 책 판매장이 아닌 책으로 인해 꿈 꿀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어쩌면 이미 시도해 왔고 별 효과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서점이 존재하는 한 계속되어야 할 준엄한 숙제이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불확실할지도 모를 효과에도 불구하고 고객으로서 이것만은 장담할 수 있다. 아이들이 존재하는 한 그 일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며, 서점에서 자신의 미래를 발견하는 아이들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지금까지 서점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사명감을 갖고 맡겨진 일을 해왔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찾아올 수 있을지, 서점은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 일에 독자이자 서점의 수혜를 입은 나도 작은 발걸음이지만 동참할 계획이다. 책의 후원자란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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