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유혹에 영혼을 던진 렘브란트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외국편 5
노성두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예술의 주된 기능이 무엇이냐'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위로 '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좋다'라는 이 한 마디의 말이 나왔다면 예술은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영혼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음악이건, 미술이건, 또 다른 무엇이건간에 누군가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내거나 '어때, 멋있니?' 라는 말을 물어온다면 예술은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 맞다. 예술이 '예술을 위한 자리'가 아닌 '인간을 위한 자리'로 내려올 때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발휘된다. 더 깊숙히 들어가면 실상 예술은 '보여지는 세계' 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잔잔한 초대장인 거다.

그 예술의 자리로 안내하는 책이 있어 마치 추천서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무엇보다 작가의 성실함이 글 전반에 담겨 있었고 글의 유려함과 여운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특히나 글 자체가 주는 매력이 그림과 더불어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에게 내 가슴의 이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이 책은 어린이에게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단다. 덧붙여 미술 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며, 작품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다양한 맥락에서 살펴보게 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한다. 그 기획 의도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책을 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렘브란트이다. 렘브란트에 대해서는 이름만 많이 들었다 뿐이지 그닥 아는 것도 별로 없다. 변명 같은 말을 하자면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사람들도 많고 르네상스 이후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화가들의 이름과 작품을 제대로 안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렘브란트를 가리켜 '빛의 화가'라 한다. 우리는 빛에 대해 무덤덤하지만 화가들에게 빛은 무척 경이로운 대상인 듯 하다. 그들은 빛과 그림자를 통해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형태를 빚어내고 음영의 효과를 이용해 마치 손에 잡힐 듯한 입체감도 만들어낸다. 빛과 어둠은 단순히 평면 위에 입체감만 부여하는게 아니라 캔버스의 균형감까지도 조율하니까. 더욱 놀라운 것은 빛과 어둠을 통해 도덕성까지도 드러낼 수 있단다. 경이롭기만 하다.


렘브란트는 온종일 빛과 더불어 그림을 그렸지만 그러나 그의 생에 내린 어둠은 무척 짙었다. 그의 작품성은 자신의 공방을 차리기 전인 19살부터 인정 받았지만 그의 생은 인간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고뇌의 시간들로 채워졌다. 렘브란트가 2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7살에 결혼해 얻은 첫 아이는 생후 두 달 만에 세상을 뜨며, 3년 뒤에 얻은 둘째 아이도 한 달이 못 돼 이별을 하고 만다. 그후 2년 뒤에 태어난 셋째도 한 달이 못 돼 사망하고, 그 해에는 자신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게 된다.


자식을 셋이나 잃은 충격으로 아내는 시름시름 앓게 되고, 네째 아들을 낳은 후 그의 아내는 제대로 키워보지도 못한 채 생후 1년도 안된 아기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다. 36살의 남자가 7명의 가족을 떠나보내는 엄청난 슬픔을 만나고 있다. 그 후 렘브란트는 어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유모를 들이는데 그의 명성을 탐낸 유모가 결혼을 요구하는 바람에 재판까지 가는 시끄러운 일을 겪게된다. 결국 유모는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만다.


몇 년 후 첫번째 부인을 떠나 보낸 상처도 잊을 만큼 예쁜 처녀를 유모로 들이게 되지만 첫 부인의 유언서 작성으로 정식으로 재혼을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 졸지에 동거녀가 된 그의 아내는 결국 교회 법정에 서게 되고 결혼도 못한 상태로 딸을 낳게 된다. 이 일은 렘브란트의 명성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그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두번째 아내도 9년 후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의 첫 부인이 낳은 아들은 자신이 결혼한 그 해에 2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차마 짐작도 할 수 없다. 그에게 어떤 말을 전해야할지,어떤 말이 그에게 위로가 될지 잠시 생각해 본다. 하지만 입도 떨어지지 않는다. 입을 닫고 가만히 곁에 있어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되리라. 빗장 닫힌 그의 방은 열릴 줄 모르고 그는 그림과 더불어 하루 하루를 보낸다. 절망이 가득한 삶, 너무한 가혹한 삶. 그러나 이 속에서 예술이 나온다. 예술은 이렇듯 인간의 고통을 먹고 출생한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삶의 질곡을 통과하면서 더 깊어진다. 모든 잔가지들을 쳐내고 오로지 하나의 목표에만 집중하는 그의 눈은 오히려 고요하다. 내면에 폭풍이 휘몰아칠수록 그의 시선은 흔들림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렘브란트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빛이 아니라 고뇌, 또는 어둠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빛의 화가'라 부른다. 말년의 그의 자화상도 그가 '빛의 화가'로 불리는데 손색 없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그는 자신의 아픔들을 어둠으로 덮지 않았다. 그리곤 그 절규의 시간들을 그림과 더불어 싸우며 통과했다. 한 인간이 지난한 고통과 혹독한 운명의 굴레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을 던졌을 때 예술은 아주 작고도 작은 수식어 하나를 던져 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빛의 화가'로 등극하였고 그의 그림은 세월이 가도 지워지지 않는 감동을 작품 안에 가득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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