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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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공중보건의로 일했고, 지금은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김승섭 교수가 세상에 내놓은 첫 책이랍니다. 언론의 극찬을 받은 책이라하여 작년 말 사놓고는, 제법 되는 두께에 눌려 책장 한 구석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더랬습니다. 언젠가부터 책 읽기가 힘겨워지고 밀도있는 글도 쓰지 못하는 터라,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평에 끌려 제게 오게 하였습니다.

인문교양서나 사회비평서로 분류되는 글인데 어쩜 이리 아름다운지요. 기저에 슬픔이 깔려서일까요? 이 책을 통해 아름다운 글은 문장 자체가 가진 고유의 힘에 의해서도 나오지만, 대상을 대하는 사람의 애정에도 크게 기인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처연한 느낌이 계속 저를 잡고 있습니다. 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저이기에 어쩌면 저 자신에 대한 애처로움이 투사되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고 리뷰라는 이름의 글을 올리는 것이 이 책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리뷰를 무용하게 하는 책이랄까요? 조금 과장되이 말하자면,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어떤 문장을 올려도 평균 수준의 리뷰보다 낫지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감상을 올리지 않는다면 선악을 분별하지만 침묵하는 자의 비겁함이 되지 싶어 책의 일부분을 올리는 것으로 면피코자 합니다.

<건강은 공동체의 책임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변화는 항상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나타나고 진행됩니다. 공동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에,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개개인으로만 바라볼 때 그런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난 100년간 거대한 혁신을 이뤄낸 현대의학으로도 알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병원에 찾아오는 개개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병원의 임상진료 과정에서는 환자 개개인의 몸에 새겨진 사회구조적 원인을, 현상 너머에서 작동하는 정치·경제적 구조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중략...

그러나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이들을 아프게 했던 '원인의 원인'이 보입니다. 그 원인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위험한 작업장을 방치했던 일터가 금연율을 낮췄고, HIV 치료약 공급을 전적으로 민간보험에 맡겨둔 지역사회가 AIDS 사망률을 높였고, 경제 위기 속에서 공공보건의료 영역의 투자를 줄이기로한 국가의 결정이 결핵 사망률을 증가시켰습니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강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요건이기 때문이지요.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경제적인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건강해야 공부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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