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트 - 새로움을 만드는 창조의 명령어
김유열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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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에너지를 몸 안에  채운 후, 누르고 눌러 터질 듯한 기운으로 쓰여진 글은 언제나 나를 매혹시킨다. 이런 글에선 치장된 겸손도, 자의식의 과잉도 찾을 수 없다. 세상적인 제스처가 무용하기 때문이다.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게 있고, 버리려 해도 버려지지 않는 게 있다. 폭발할 듯한 불덩어리를 가슴에 안고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사람의 글은 그래서 눈여겨볼 만하다. 설혹 그에게 저항감이 생긴다해도, 그가 진리의 한 조각에 포박되어 있다면 그의 글에 결코 야박할 수 없다.

 

몇 년 전 철학자 강신주가 쓴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쓴 것은 김수영의 인문 정신이었지만 내가 읽은 것은 김수영을 향한 강신주의 지독한 사랑이었다. 김수영에 대한 강신주의 사랑은 짙고 붉었다. 소년처럼 순수했고 중년처럼 찐득했으며 집요하기까지 했다. 강신주는 그 책을 김수영에게 바쳐지는 조사나 묘지명이라 했지만, 내게는 김수영에 대한 연서로 읽혀졌다.

 

『딜리트』를 읽으며 대상과 결은 다르지만 저류에 흐르는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저자 김유열을 추동케한 '딜리트'는 무엇이었을까? 기획출판이라는 이름 하에 몇 개월만 틀어박혀 쓰면 책 한 권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서, 5년이란 시간과 3천 매가 넘는 초고의 많은 부분을 버려가며 책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글을 써 본 사람은 안다. 문장을 잘라낼 때의 아픔과 안타까움을. 김유열은 생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원고를 줄여 더 강력하게 무장했다고 했다. 그토록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긴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을 유배했을 것이고 독촉했을 것이며, 미련하도록 한 우물만 팠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딜리트』는 압도적인 힘으로 다가온다. 본래 말의 힘은 뜻에 있지만, 요즘처럼 말이 한 푼어치의 값도 안 되는 시대에는 그 말대로 살아온 시간에 비례한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믿지 말고 그가 하는 행동을 보라'는 말은 언어의 진정성이 사라진 이 시대에 우리가 잡을만한 금언이 된다. 힘주어 말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주창하는 대로 살았어야만 그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말의 힘은 유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힘을 실어준 행동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유열은 '딜리트'를 주창할 만하다. 그는 남을 설득하기 전에 자신을 설득했고, 자신을 설득했기에 자신의 원하는 바를 직장 내에서 구축할 수 있었다. 알려진 바대로 김유열은 EBS의 PD다. 한때 EBS는 시청률이 거의 나오지 않는 방송이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방송처럼 비참한 것은 없다. 누군가 사활을 걸고 총대를 매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김유열은 선봉장이 되었다.

 

'미쳐야 미친다'고 했던가. 그는 딜리트에 주목하고, 딜리트로 정비한 후, 딜리트로 나아갔다. 흔히 딜리트는 '제거하다, 삭제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이 책에서는 '단순화하다, 파괴하다, 해방시키다, 반항하다' 등의 여러 의미를 포괄한다. 딜리트는 무언가를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을 수행한다. 인간은 무언가가 없어지면 빈 곳에 무언가를 채우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로 채우려는 특성 때문에 딜리트는 창조의 계기가 된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즉시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되는 것, 이것이 바로 딜리트의 신비다.

 

김유열은 딜리트가 여러 방면에서 유용하게 쓰인다며 근거들을 제시한다. 그는 완벽한 딜리터로 피카소를 소개했고, 기존의 질서와 관습에 저항했던 반항아 혹은 이단아로 스티브 잡스나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을 들었다. 또한 고향을 제거했던 사카모토 료마를 통해 딜리트가 운명과 속박으로부터 자유도 선사한다고 했다.

 

김유열은 딜리트만 잘해도 삶을 변혁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딜리트는 진중한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다며, 즉시 떠오른 생각을 편안하게 적어보기만 해도 무언가가 새롭게 떠오른다고 했다. 부담스런 일이 많은 세상에서 더하는 것이 아닌, 덜고 비우는 마이너스의 미학을 통해 시대를 꿰뚫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딜리트의 유용성은 덜어내기만 해도 그 자리에 자동적으로 창조적인 생각이 들어선다는 점이다.

 

김유열은 일터에서의 성공을 통해 누구보다 딜리트의 위력을 맛본 사람이다. 비우고 버리는 것을 통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었고, 방송 현장에서 딜리트의 폭발적인 힘을 체감했다. 세 번의 편성기획부장을 맡으며 EBS를 교육과 다큐멘터리의 방송으로 자리매김했고, 그 결과 EBS는 평균 시청률 0.6%에서 프라임 타임대 시청률이 600% 가까이 오르는 고도성장을 했다. 이뿐 아니다. 수상 실적 1,000% 상승이라는 기록적인 고공행진도 이뤘다. 게다가 유아 어린이 시청률 1위를 거머쥐었고,올해에는 미디어 신뢰도 2위까지 차지했다.

 

딜리트는 가시적인 효과만 주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우아함도 배가시킨다. 그의 뮤즈 오드리 헵번은 덜고 더는 것을 통해 귀족적인 우아함이라는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획득했고, 샤넬은 유행을 넘어 시대정신이 되었다. 그러나 딜리트의 최대 장점은 본질을 이해하고 본질에 집중케 하는 힘을 키워준다는 데 있다. 덜어냄으로 인해 비어진 공간이 생각도 못했던 새로운 것으로 창조되는 기쁨은 딜리트 밖에 없다. 게다가 효과는 파격적이고 극적이다. 이 밖에도 딜리트의 성공 사례들은 이 책에 넘치게 있다.

 

평론가 신형철은 '인식이 곧 위로'라고 했다. 정확한 인식만이 정확한 위로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딜리트』는 정확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 이제 이 시대의 통찰까지 담고 있다. 노장의 무위사상과 니체의 니힐리즘을 근간으로  『딜리트』는 현장 경험과 그 속에서 나타난 실질적인 결과물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자신있게 우리를 설득한다. 딜리트만 잘해도 창조할 수 있고, 혁신할 수 있으며, 개척하고, 개혁할 수 있다고.

 

할 일은 산적해 있는데 갈수록 속도는 느리고 매너리즘에 발목 잡혀 있는가. 달라져야 한다고 매일 결심하면서도 금새 하루를 놓쳐버리고 저녁이면 후회하는가. 이럴 때 '지금, 여기에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딜리트의 도움을 받아보면 좋겠다. 

우리를 대신해 한 권이 책이 된 사람의 이야기이니 신뢰할만하겠다. 만일 시간의 검증만 통과한다면 이 책은 이 시대의 고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당신이 읽고 딜리터가 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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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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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뒷북 스타일이라 세월이 흘러도 한참 흐른 후, 좋은 무언가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당시 뭘 하느라 이런 걸 놓치고 살았나 하는 후회를 조금 한다. 그리고는 이제라도 만났으니 다행이라며 긍정주의자 행세를 한다. 안 그러면 속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동명의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가 끝난 후 여주인공이었던 배우가 예능 프로에 나와 자신이 맡았던 역할을 말하며 소개하길래, 어떤 드라마였는지 궁금해 VOD로 역주행해 보다 원작이 궁금해져서 읽게 되었다. 재미있는 부분만 골라서 올린 동영상이니 재미없을 수가 없고, 남녀 주인공들의 빼어난 외모와 개성있는 조연들의 활약이 원작에 대한 궁금증을 더 부추겼다. 지금껏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원작보다 나은 경우를 본 적이 없었기에 원작에 대한 기대가 자꾸 커졌다. 게다가 원작자가 쓴 극본이란다. 거참 대단할 일이세! 판사가 드라마 대본을 썼다니!

 

원작자인 문유석 판사의 책은 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기회가 되지 않아서 읽지 못하고 있었다. 뒷북 스타일이라고 했지만 무섭게 쏟아져 나오는 신간을 두고 굳이 예전에 나온 책을 읽기는 주저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관심이 있었던 터라 『미스 함무라비』를 겁나 빠르게 읽어 젖혔다. 드라마를 주마간산이라도 훑었으니 내용은 거의 다 아는 터이고, 나도 모르게 비교하면서 읽게 되더라. 책의 내용을 드라마가 좀 더 입체적으로 구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책이 좀 밋밋했달까.  

 

『미스 함무라비』 대본집에 쓴 작가의 말에 따르면, 문유석 판사가 파죽지세로 3회까지 극본을 쓴 후 의기양양해 있었는데, 제작사의 주선으로 만난 김은숙 작가가 하나하나 짚으며 세세한 조언을 했단다. 이 조언을 듣고 극본을 썼으니 캐릭터를 얼마나 잘 살렸을까? 예전에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는 다른 걸 해도 깊게 잘 하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문유석 판사도 그런 것 같다. 박차오름역을 맡은 고아라가 약간 과하면서 귀여운 감이 있다면, 한세상역을 맡은 성동일은 부장 판사의 고뇌와 생의 어쩔수 없음을 때론 괴팍하게, 때론 깊고 섬세하게 구현했다. 책이 단선적이고 칼날 같았다면 드라마는 입체적이고 좀 더 친근했다.

 

법정 활극이라는 출판사의 소개처럼  『미스 함무라비』는 신임 여판사의 좌충우돌 정의 구현기다. 그러니 불협화음이 나고 조직에서 겉돌 수밖에 없는데, 이를 우배석 임바른 판사와 한세상 부장 판사가 같이 욕 먹고 함께 하면서 뿌리를 내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세상을 살아보니 짧고 굵은 것도 중요하지만, 가늘고 긴 것이 모양은 빠져도 더 의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짠'하고 한두 번 뭔가를 한 후 사직서를 내며 자폭하기 보다는, 변할 때까지 꾸준히 표도 안 나는 뭔가를 하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실질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것도 나이 들어서야 하게 된 생각이지만.

 

편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세상의 비리와 바뀌지 않는 많은 것들, 옳지 않은 것들과 인간의 지독스런 추함, 그런 시궁창 속에서도 피어나는 거친 인간애는 여러 감정들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다 알 법한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올랐다. 바닷가에 뒤집혀 있는 수많은 불가사리를 보고 한 어린아이가 꼬물대며 하나씩 다시 뒤집어 주었단다. 여기서 불가사리는 다른 어떤 생명체로도 대체될 수 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더란다. 그깟 몇 마리 뒤집어서 뭔 소용이 있겠느냐고. 그러자 아이가 이 많은 불가사리를 다 살릴 수는 없지만 방금 자신이 뒤집은 저 불가사리는 살았다며 가리키더란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이 그래도 이나마 지탱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이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고아라와 그녀를 사랑해서 어쩔 수없이 변하게 된 임바른과 적잖은 컴플렉스를 가진 한세상은 소설에서나마 살맛나는 세상을 선보여준다. 우리가 일하는 것도 에돌려 말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위해서고, 이왕 살거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일조한다. 소설적인 측면에서는 보완해야 할 것이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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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천 년을 사는 아이들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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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북유럽은 아직도 좀 멀다. 지구촌이라지만 지역적으로 멀면 심정적으로도 거리를 내기 때문인 듯하다. 요새는 스칸디나비아 삼국 외에 덴마크와 아이슬란드까지도 북유럽에 포함시킨단다. 그 중 가장 멀리 느껴지는 곳을 들라면 내게는 노르웨이가 그렇다. 덴마크는 어릴 때부터 튜울립과 풍차의 나라로 친근했고, 스웨덴은 아바와 볼보 덕에 거리를 넘어뛸 수 있었으며, 핀란드는 구한 말 이준 열사가 머물렀던 땅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까울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는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일방적으로 친분을 텄다. 


이제 남아있는 나라는 노르웨이. 딱히 연결점이 없다. 굳이 찾자면 2011년 극우파 청년이 참사를 일으켰던 나라라는 정도! 아, 참 요네스 뵈가 있었지? 요네스 뵈의 『스노우맨은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과 더불어 덜덜 떨면서 읽었던 책이다. 그가 노르웨이 작가라는 걸 잊고 있었다. 오늘부터 가깝게 여기기 1일!

 

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한 것 같다. 다소 개인차는 있지만 태양이 작렬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낙천적이고 쾌활하며 개방적이다. 반면 날이 춥거나 습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울하거나 폐쇄적인 느낌을 준다. 북유럽처럼 사회적으로 안정된 곳은 삶이 단조로워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소설은 삶과 반비례하여 환상과 스릴러가 넘치는 듯하다. 그 노르웨이의 판타지 소설이라니 구미가 얼마나 땡기든지...

 

환생을 거듭하며 사는 아이들이 있다. 열네 살 생일이 되면 죽어 다시 태어나게 되는 아이들은 수천 년에 걸친 환생을 되풀이하고 있다. 아이들은 삶에 대해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며, 어느 때는  광기와 혼란스러움마저 느낀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운명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새로운 인생을 받아들인다. 그러던 어느날 지구상에 있는 421명의 선택된 아이들 중 한 아이 아르투르가 열네 살이 지났는데도 어제와 동일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이 아침 자신은 갓난아기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또 다른 아이 파울로가 있다. 파울로의 머리 속에는 끝모를 외로움과 고통스런 기억밖에 없다. 파울로는 이런 상황을 다시 맞지 않으려 지구라는 공간을 아예 없애버리려 한다. 그래야 다시 태어나지 않고 영원히 죽을 수 있으니까. 파울로의 바람은 강렬하다. 파울로는 이미 행동에 나섰고 저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너새니얼은 위성 사용권 때문에 고민이다. 시간적 공간 속에 존재하는 특별한 방해전파를 특정 형태로 배치하려는 그의 프로젝트가 과도한 전력 소비로 인해 중단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너새니얼은 지구 상에 반짝이는 421개의 하얀 점들을 계속 추적하고 싶고, 그 점들이 인간임을 알고 있다. 위성 사용권이 있어야 연구를 계속할 수 있기에 너새니얼은 지인인 소렌슨 박사의 조언을 받아 어떤 한 기업과 자신의 프로젝트를 연계한다.

 

너새니얼이 계약한 곳은 아르투르와 같은 아이들이 만든 단체다. 이 단체는 파울로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너새니얼을 아르투르와 만나게 하고, 둘은 함께 있는 시간을 통해 서로를 조율한다. 이제 파울로의 움직임은 속도를 더하고 있고, 파울로 곁에는 특별한 힘을 가진 메르세르와 그녀가 고용한 지질학자들이 있다. 지키려는 자들과 파괴하려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어 있고, 그들 곁에는 삶과 죽음이 상존한다. 

 

책에는 서로 다른 두 이야기가 있고, 로마 숫자로 된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세 이야기들은 맞물려 있으며, 각기 다른 슬픔을 내포하고 있다. 느린듯 빠르게 좁혀오는 이야기 뒤에는 소리없는 절규와 무거운 침묵이 자리하고 있다. 삶이란 작은 행복과 긴 슬픔이 교차하는 것이며, 작은 행복을 위해 긴 슬픔은 감내해야만 하기 때문일테다. 판타지임에도 말미 너새니얼의 편지를 읽으며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무릇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냐고 말하는 듯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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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말하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1
김혜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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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의 기자 김혜리는 내게 떨리는 그대다. 김혜리가 불러오는 설레임은 인터뷰이에 대한 그녀의 한시적이고도 온전한 짝사랑처럼, 내게도 그렇다. 인터뷰이를 대하는 정중하고도 진지한 자세, 주도면밀한 준비, 섬세하고도 결다른 언어 감각은 나른한 만족을 선사한다. 이 사뭇 중독적인 충일은 그녀에게 빠지게되는 강력한 질료가 되고만다.


조심스럽지만 용감하고 따뜻하지만 간혹 무미한 그녀의 글은, 피상과 안일을 거부하며 조용히 도발한다. 그녀의 글이 매혹적인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터뷰이가 속한 직업적 환경에 대한 전문가급의 식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인터뷰이와 읽는이를 동시에 긴장시키며 대화의 즐거움을 배가한다. 그녀의 글이 사랑받는 이유다.

 

김혜리의 인터뷰는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제한된 시간과 집중불가한 공간적 상황을 장악하는 그녀의 보이지 않는 뚝심이야말로, 그녀의 인터뷰가 왜 색다른지를 가르는 원천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그녀에게 말하다』 앞날개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인터뷰어로서의 붙임성과 순발력은 좋지 않지만, 어딘가 '절박해' 보이는 인상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자평한다. 새로운 약속 장소로 향할 때마다 팔뚝에 잔소름이 돋을 만큼 긴장하면서도, 언젠가 한번쯤 대화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수첩 한 페이지에 남몰래 적어넣고 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김혜리를 그되게 만드는 특질이다. 그러나 김혜리 인터뷰의 특징은 전체를 아우르며 부분에도 구체적 특별성을 띈 독특함이다. 인터뷰이에 대한 소개가 긴것도 그렇지만, 도입부의 글은 따로 떼어놓고 그 부분만 모아도 한 권의 책으로 손색이 없을만큼 독창적이며 이미 그대로 충분하다.

 

"십 수 년 전, <댕기>라는 잡지에서 만화가 김진이 어두운 고교 시절을 회고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버렸다고 마음먹었다 치더라도 그건 그냥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고, 어느 순간 죽어도 아무 남을 게 없으리라던 외로움들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저가될 것이다" 라고 그는 썼다. 증오도 향수도 풍화된 그 문장에 나는 크게 위로받았다. 김진과 그녀의 만화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일부러 위안하려고 애쓰지 않음으로써 위로했고, 꽃 속같이 천진한 영혼들이 기어코 심연을 들여다보게 하는 가혹한 성장담을 통해 살아갈 기운을 주었다. 슬픔과 기쁨 사이에 복잡한 표정으로 멈추어선 이야기를 통해 남들이 표현한 감정을 외워 말하는 것은 좋은 버릇이 아니라는 것을 엄격히 가르쳐 주었다. 언젠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 ㅡ만화가 김진 (본문 77쪽)

 

" 언제인가부터 나는 소심한 사람들의 괴력을 눈치채게 되었다. 대범한 사람들이 세계를 들썩들썩 움직이는 동안 소심한 사람들은 주섬주섬 세상을 해석한다. 살아남기 위해 예민해질 도리밖에 없는 초식동물처럼 그들은 누가 힘을 가졌는지 계절이 언제쯤 변하는지 민첩하고 정확하게 읽어낸다. 미미한 자극에 큰 충격을 받고 사소한 현상에 노심초사하는 그들의 인생은 남보다 느리게 흐른다. 타고난 관찰자이며 기록자인 그들의 소극적 복수는 '이야기'다. 그들은 더디게 살기 때문에 삶을 사는 동시에 재구성한다. 목소리 큰 당신이 휘어잡았다고 생각하는 어젯밤 술자리에서 벽지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듣기만 하던 동료가 있었던가. 그가 잠들기 전 떠올린 스토리 속에서 당신은 놀림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계의 평형을 유지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라고 판명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ㅡPD 김병욱 (본문 115쪽)

 

위 글들은 인터뷰이에 대한 소개글로, 소개글 전체의 3분의 1도 채 안되는 분량이다. 나머지 3의 2도 이 같은 밀도로 채워지며, 이후 몇 배나 되는 구체적 인터뷰가 들어간다. 이토록 많은 분량을 글로 채우는 것은 여간 수고스런 일이 아니다. 녹취를 푸는 일의 고단함은 삶의 고단함 만큼이나 힘겨우니까. 이 정도 분량을 채우기위해 김혜리는 날밤을 새웠을 것이고, 독자인 나는 잔인하게도 그녀의 수고를 통해 위로와 포만을 느낀다.

 

소설가 정이현은 '이 책을 내가 읽은 최고의 인터뷰집이라 감히 말한다'며 추천사를 썼다. 그러나 나는 아직 유보중이다. 『그녀에게 말하다』 보다 『진심의 탐닉』을 먼저 읽었고, 읽으며 감탄했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 손을 들어줄까? 좀 더 고민해 보아야겠다. 하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내게 최고의 인터뷰어는 김혜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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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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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고통의 순간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질문을 담은 엔도 슈샤쿠의  『침묵』을 읽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가장 인자한 얼굴을 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찌나 섬찟하던지 아직도 그 느낌이 잊혀지지 않는다. 험악한 얼굴을 한 사람은 경계라도 하지만, 어떤 의도를 가진 사람이 인자한 얼굴에 따뜻한 말로 위로를 건내며 더욱이 신뢰까지 쌓는다면 그 수중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들것 같다. 그런 사람을 장르 불문하고 사기꾼이라 하는데, 그런 사람에게 걸리면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도리가 없다며, 심지어 자신 같은 사람도 걸리면 빠져나가지 못하니 제발 당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직업은 검사다.

 

​검사라...우리 사회는 검사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검사를 단지 직업군의 하나로 보았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런 반응을 뒤집으면 그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일터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들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뼈를 깍는 심정으로 새롭게 하겠다'는 말을 수뇌부가 하도 많이 써서, 더 이상 깎을 뼈도 남아있지 않다는 어느 검사분의 자조적인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웅도 일부 검사 때문에 싸잡아 욕먹는 상황을 억울해 한다.

 

 

한데 참 재미있는 현상은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사람들이 검사가 글을 쓰면 읽어준다는 거다. 그들만의 세상에 대한 궁금함은 아닐까 싶다. 그러면 나는 왜 읽었느냐, 소개 글 중 생활형 검사라는 말에 꽃혀서이다. 요즘 들어 새롭게 추가된 내 삶의 기준 중 하나가 재미인데, 『검사내전』은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충족시켜준 책이었다. 

 

김웅은 자신을 가리켜 당청꼴찌, 팔랑귀, 맹탕, 또라이라 칭하며 선배 검사에게 또라이에서 집요한 또라이로 승격되어 불렸다는 것도, 피의자에게 의식없는 검사라 불렸다는 것도 적는다. 자신의 수사 스타일을 보고 같은 검사가 구걸수사의 달인이라 불러주었다는 것도 서슴지 않는데, 이 뿐 아니다. 자신이 알기는 칠월 귀뚜라미요, 안다니 똥파리라는 우스꽝스러운 말도 능청스럽게 한다. 게다가 자신은 어릴 때부터 온갖 병을 두루 섭렵했으며, 백만 문청 중 하나라 출판사가 책을 내자는 제의를 했을 때 회가 동했음도 솔직히 고백한다.

김웅은 자신이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 직장 생활이 늘 순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검사를 하면서 별 탈이 없었던 것은, 검찰이라는 조직 문화가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유연하고 열려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이 되어 자신이 맡은 임무를 다하겠다'는 선배 검사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그 또한 자신의 위치를 생활형 검사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생활형 검사는 형사부 소속의 검사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말인듯 하다. 

 

"검사는 남의 말을 들어주는 직업인데, 또 남의 말을 절대로 안 듣는 직업이기도 하다. 검사라는 직업이 참 맹랑한 게, 어서 말을 하라고 하고서 정작 말을 하면 거짓말한다고 윽박지르곤 한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늘 술래 역할만 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나는 수사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남의 말을 잘 듣는 능력을 가졌다. 의심스럽겠지만 '경청하는 법'이라는 주제의 강의도 했다." (138쪽)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경청이 중요하니 어쩌니 해도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검사실에서 하는 말들은 대부분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조사받는 피의자의 말도 거짓말이고, 돈을 바라고 ​고소한 것은 아니라는 고소인의 말도 거짓말이다. 조사하면 다 밝혀진다고 위협하는 검사의 말도 거짓말이다. 조사해서 다 밝혀질 거라면 굳이 사실을 실토하라고 수고롭게 설득할 리 없다. 그래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무렵 나는 사람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139~140쪽)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남의 말을 잘 믿고 잘 속는 나로 복귀했다. 잘 믿고 잘 속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비웃었던 남의 말이 진실이었다는 게 밝혀지면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말도 많은 편이지만 어떤 사람의 말도 잘 들어주고 맞장구도 잘 쳐준다."​   (140쪽)

 

잘 읽히는 책이다. 편하게 읽히기도 하고, 주의 깊게 읽으면 더 좋은 곳도 꽤 많다. 읽다보니 검사직의 애환도 조금 알겠다. 조직이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만드는 건데 김웅 같은 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면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위로를 받겠다 싶다. 물론 안 마주치는 게 가장 좋겠지만 말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하지않는가. 그런데 그 자리는 지푸라기가 아니라 어느 한 사람의 사회적 생존권을 쥐고 있는 자리 아닌가. 

 

나는 사람이 답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재앙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답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답이다. 이렇게 사람이 넘쳐나는데 늘 ​사람을 찾는 걸 보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서두에 말했듯 인상 좋고 모든 것을 다해줄 것처럼 말 풍년인 사람을 나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좋은 자리에 있음에도 자신의 별볼일 없음을 편히 말하는 사람이 좋다. 그렇게 말한다고 그를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자신을 소탈하게 말했다고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도 모르진 않는다.

 

"나는 그녀의 어리석음에 왈칵 짜증이 났지만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그녀의 진심에 그만 부끄러워졌다. 자신에게 죄를 덮어씌운 사람임에도 그녀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녀에게 "아이고 죽네, 죽어"라고 말했던 경박함이 부끄러워진다. 어릴 때 동네 아이들로부터 따돌림 당한 기억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무작정 흉내내보려 하다 보니 점점 경박해졌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혹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나 반응을 보이더라도 내 얕은 수준에서 쉽게 판단하기보다 좀 더 기다려보고 존중하는, 성숙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남의 말을 잘 믿어주는 것과 달리 그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165쪽)

 

​김웅만 그렇겠는가. 누구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이제 나도 마무리를 해야겠다. 김웅이 그다운 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으니, 나는  기가 막히게 내 마음을 표현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며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민섭의 글로 대신하련다.

"아, 역시 잘하는 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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