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 진심이 열리는 열두 번의 만남
이진순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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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부터 쓰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와 빨리 쓰고 싶은데, 막상 쓰려면 이상하게 쓰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민의 만약은 없다가 그랬고, 사회학자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 그랬다. 그 뿐인가. 그토록 좋아하는 신형철의 책은 시도조차 못했다. 한데 이진순의 이 책은 또 왜 이런가. 지난 봄부터 초여름까지 두 번이나 읽어놓고선, 다시 보니 줄까지 쳐가며 읽어놓고선 못쓰고 말았다.  

 

그녀의 인터뷰집이 유명인들의 이야기거나, 로또 맞은 사람처럼 인생 역전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거나, 궁금해 죽겠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진작 썼을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데 뭔 부담이 있겠나. 한데 이제와 보니 서문도 그랬고, 다는 아니지만 인터뷰이의 삶이 여간 고되고 녹록치 않았다. 보통의 날을 사는 것조차도 경주를 요구하는데, 더 힘든 곳으로 눈을 돌려야 마음만 아프지 않을까 하는 자기보호막이 발동해서는 아닌가 싶다. 솔직하자면 이기심의 발로지 뭔가 

 

누구나 그렇듯, 내가 인터뷰한 분들도 유약하고 비루하고 소심한 보통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이 독자에게 공명과 감동을 줬다면, 그건 그들이 불퇴전의 용기와 무오류의 인생역정을 보여주는 위인이어서가 아니라 좌절의 상흔과 일상의 너절함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낙관과 사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12명의 사람들이 나온다. 널리 알려진 외상외과 의사 이국종도 있고, 영화감독 임순례도 있으며, 고위공직자였다 해직된 노태강도 있고, 글 못지않은 입담으로 유명한 황석영도 있다. 그러나 더 주목해야 할 사람들은 그 외의 8인이다. 이들의 이름 석자로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을 수도 없고,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불러키기도 힘들지만 이들의 삶은 여전히 뜨겁다 

 

왜 가는 걸 안 말렸느냐고요? 우리도 애 셋 키우는 부모니까요. 처음에 제가 남편을 말렸던 것도 애가 셋이니 위험한 일 하지 말라는 거였는데, 안타까운 부모 마음은 우리나 세월호 유가족이나 똑같은 거더라구요. 처음에 애들 때문에 말리다가 결국 애들 때문에 가라고 했어요.” 

 

이진순은 세월호의 민간잠수사 김관홍의 부인 김혜연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당시 김관홍이 세상을 뜬지 막 3개월이 지난 시점의 인터뷰인데 김혜연은 의외로 담담하다. 의인 김관홍이 아닌 인간 김관홍으로 남편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아이들에게는 아빠의 부재가 아빠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아빠의 마음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단다

 

‘여전히사이에서 세월호는 아직 부유하고, 남편을 잃은 여자와 아빠 없는 아이들 셋은 남겨져 살고 있다. 이진순은 삼십대의 부인이 살아야할 남은 세월에 목이 메여 어떤 입발림의 말도 못하고 작은 바람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앞으론………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의 가난한 노인들은 자기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기보다는 가진 자들, 배운 자들의 시선과 평가를 쫓아서 그걸 자기정체성으로 내면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많이 배운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모방해서 자기를 평가하고 그 잣대로 세상을 보죠. 

 

아이 둘을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 살다 사회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마흔일곱에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고 이혼했다는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의 이야기다. 최현숙은 가난하고 소외된 노인들의 가슴 속 깊은 응어리와 구겨진 기억들을 끄집어내 쓸모없는 삶이었다고 여기는 인생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자칭 나쁜 여자라는 최현숙이 쓴 할배의 탄생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가난한 노인들의 개인사를 역사의 한 영역으로 이입하는데 자그마한 자리를 냈다 

 

이외에도 장애를 가진 동생을 돌보며 무사히 할머니가 되기를 바라는 생각 많은 둘째언니 장혜영, 핑크 소파를 박차고 나온 우아한 미친년 이라는 별칭의 화가 윤석남, 원시적 감각의 힘을 믿는다는 작가겸 래퍼 손아람과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은 소설가 황석영, 그리고 아픈 이야기를 아프게 들어준다는 구수정과 거리의 철학자이자 교육가인 채현국의 이야기 등이 있다.

 

이들 속에, 이들과 함께 또 다른 이진순이 있다. 그녀 또한 보이지 않는 섬세함으로 사람에 몰입하며 세밀하게 사회를 다듬는 중이다. ‘세상을 밝히는 건, 잠깐씩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짧고 단속적인 반짝임이라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들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 이진순. 그녀 또한 오늘도 여전히 반짝인다. 자신이 얼마나 반짝이는 작고 아름다운 별인지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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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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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돌이켜보니 오랜 시간 책에게 굽신거렸다. 바리바리 돈까지 갖다 바치며 아양을 떨었다. 그깟 책 한 권 읽었다고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나름 전작주의자요, 북콜렉터요, 좋은 책을 보는 안목을 가졌다 자칭하며 경건하게 명품 대하듯 그래왔다. 비록 읽지는 않아도 꾸준히 구매해 왔으며, 고이 모셔둔 책은 또 얼마인가. 그렇게 일방적 애증의 관계로 책과 긴 세월을 이어왔다. 

 

그러던 어느날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역시 책은 휘뚜루마뚜루 읽어줘야 제 맛이고, 여기저기 막굴려 읽히게 해야 책의 소명을 다하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야 장서가인지, 애서가인지의 반열에 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할 때쯤 이 책을 만났다. 은근 열 받게 저자는 글을 꽤 잘 썼다. 전문 글쟁이에게 열등감이 있다 내비치고는 한치의 양보도 안하며 글에 대해 언급했다.

 

"죽은 글을 쓰려면 먼저 당신의 생생한 생각을 직접 쓰는 천박함을 피해야 한다. 세상에는 특정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인용들이 있다. 한동안 가장 핫했던 아이템으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있다. 누가 당신 차를 긁어놓고 도망간 얘기를 쓸 때조차 '중산층의 씁쓸한 뒷모습,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한 얼굴이다'라고 써야 있어 보인다. 죽은 글을 쓰고 싶은 그대, 우선 관습적 인용을 생활화해야 한다.

 

같은 일도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얘기를 하려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권력에 의한 감시와 통제 문제를 얘기하려면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 감옥 '패놉티곤'(조지 오웰의 『1984』는 유행이 지났으니 사용에 주의할 것)등등 많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갱년기적 고민에 관한 얘기는 보통 하이데거가 무슨 피투성이였다는 말로 시작하는 것 같은데 이유는 모르겠다. 헤겔의 '인정투쟁'도 여기저기 써먹기 좋다. 관습적 인용의 생활화 자체가 인정투쟁이다." <내 취향이 아닌 글들> 중에서

 

남들은 인정 안하겠지만 폼나는 말로 지식 쪼가리나마 있어 보이고 싶어 애쓰는 사람이 나다. 짧은 분량의 글이나마 올리려면 쓴 글을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읽고 또 읽는다. 나중엔 너무 읽은 뒤끝에 머리가 아파 걍 올려버리는 우를 범하니까. 그런 내게 문유석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봐요, 당신 스타일로 써! 인생 짧은데 뭐 남을 신경써!"

 

대체로 그의 글은 거침없고 재미있으며 편안하다. 작가들이 책을 많이 읽는다 듣긴 했지만 아주 많이 읽은 축에 속해 보였다. 이런 평도 어떤 데이터없이 내 기준으로 한 평이니까 진짜 많이 읽은 사람에 비하면 또 어떨진 모르겠지만 많이 읽은 건 분명한 듯했다. 어릴 때부터 주야장창 읽었다고 했고, 읽은 도서 목록이 대단했다. 저자에게 책은 단순한 글이 아니라 친구 중의 친구이지 않나 싶었다. 사실 책만큼 변함없는 친구가 어디 있으랴. 

 

"돌이켜보면 나는 책을 통해 타인을 발견하고 세상을 발견해왔다. 직접 사람들 속으로,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부등켜안고 몸부림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어릴 적부터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이방인들 사이에 던져진 고립된 존재로 스스로를 생각해왔다. 타인들이 성큼 내게 다가오면 불쑥 겁부터 난다. 그것이 나의 한계다.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다.

 

책이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가느다란 끈이었다. 책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고통, 욕망을 배워왔다. 판사가 된 이후의 삶도 어떻게 보면 비슷하다. 법정에서 재현되는 것은 실제 삶이 아니다. 재판 기록은 결국 누군가에 의해 편집된 삶이다. 나는 끊임없이 타인의 삶을 읽고 바라보며 살아온 것이다. 간접 경험은 당연히 직접경험만큼의 깊이는 없다.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진심을 이해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남들의 삶을 읽기라도 함으로써 조금씩 조금씩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며 살아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간접경험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다> 중에서

 

어디선가 '책을 읽는다는 건 삶을 읽는 것'이란 글을 본 적이 있다. 문유석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읽은 책들을 소개했지만 나는 책을 통해 문유석을 읽었다. 문유석이란 사람의 생각을 접했고, 책으로 지어진 한 사람의 생을 만났다. 그리곤 내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좋은 책을 사고 싶어 호들갑을 떨었고, 읽고 싶어 안달했고, 읽히지 않아 속상해했던 시간들이 결국 내 인생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통해 나를 알고 다른 사람을 만나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니. 이 정도면 내 인생도 성공한 인생이다. 이토록 긍정적으로 말하다니, 이 또한  책이 내게 선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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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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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겨울, 한 지인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해 달라' 하셨다. 책을 고르려다 보니, 이 분이 이미 오래 전 책을 낸 적이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 웬 어불성설인가. 책을 낸 적도 없는 사람이 책을 낸 작가에게 글쓰기 관련 책자를 소개해 준다니. 즉시 연락을 했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 그러자 '진지하게 부탁하는 거'라며 책을 소개해 달라신다. 급하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나 또한 진지하고 급하게, 게다가 평까지 꼼꼼이 읽은 다음 책을 골랐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이다.

 

 

얼마 되지 않아 전부 주문했다며 '고맙다'는 인사가 왔다. 읽지도 않은 책을 소개해 드렸으니 켕긴다고 할까, 뭔가 거북했다. 그리고는 잊고 지내다 여기저기서 괜찮다는 말이 들리길래 궁금하기도 하고 글 쓸 때 도움이 될까 싶어 구입했다. 요즘 그림같이 편집 잘 된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책 표지나 안이나 하나같이 덤덤하고 재미없게 편집돼 있었다. 하지만 음식이 맛 있으면 식당 허름한 게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이 책이 그랬다(위에 보여지는 책은 예스24 리커버본). 약간의 냉소와 그보다 좀 더 많은 유머를 버물여 글 쓸 때 알아야 할 기본적인 내용들이 구체적인 예와 함께 쉽게 설명돼 있었다.

 

 

저자 김정선은 20년 넘게 교정 교열 일을 하며 남의 문장을 다듬어 왔다고 했다. 오랜 실무를 통해 배우며 익힌 시간들이 이 책을 내게 된 동기인 듯하다. 김정선, 이러니까 여자같지만 남자다. 김정선은 평소 별 생각 없이 쓰거나 안 써도 상관없는데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부터 소개한다. '-적'을 먼저 드는 걸 보니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예인가 보다.

 

그는 "사회적 현상, 경제적 문제, 정치적 세력, 국제적 관계, 혁명적 사상, 자유주의적 경향"와 같은 표현을 "사회 현상, 경제 문제, 정치 세력, 국제 관계, 혁명 사상, 자유주의 경향"으로 바꾸어준다. 이렇게 쓰면 훨씬 깔끔하고 더 분명해 보인단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 조사 '-의'의 남발도 있다. "문제의 해결, 음악 취향의 형성 시기, 노조 지도부와의 협력, 문제 해결은 그다음의 일이다, 부모와의 화해가 우선이다, 이제는 모든 걸 혼자의 힘으로 해내야만 한다"를 "문제 해결, 음악 취향이 형성되는 시기, 노조 지도부와 협력하는 일, 문제 해결은 그다음 일이다, 부모와 화해하는 일이 우선이다, 이제는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해내야만 한다 "로 다듬어준다.

 

 

'들'은 의존 명사로도 쓰이고 접미사로도 쓰인다. 의존명사로 쓰일 때는 '등'에 해당되는데 우리말 문장에서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은 조금만 써도 문장을 어색하게 만든단다. "사과나무들에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모든 아이들이 손에 꽃들을 들고 자신들의 부모들을 향해 뛰어갔다, 수많은 무리들이 열을 지어 행진해 갔다"와 같은 경우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모든 아이가 손에 꽃을 들고 자신의 부모를 향해 뛰어갔다, 수많은 무리가 열을 지어 행진해 갔다'로 고쳐준다.

 

 

덧붙여 관형사 '모든'으로 수식되는 명사에는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을 붙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무리'나 '떼'처럼 복수를 나타내는 명사에 뭐하러 '-들'을 붙이냐고 오히려 되묻는다.

 

 

어질러졌던 집이 정리된 느낌이다. 이밖에도 많이 있지만 글 쓸 때 늘 나를 불편하게 하던 '과거형을 써야 하는지 안 써도 되는지'에 대한 예가 있어 살펴본다. "배웠던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복습이다, 자책에 빠져 지냈던 몇 해 동안 그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어린 시절 외국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내겐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를  "배운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복습이다, 자책에 빠져 지낸 몇 해 동안 그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어린 시절 외국에서 보낸 시간들이 내겐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로 매만져준다.

 

 

우리말의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뿐이어서 한 문장에 과거형을 여러 번 쓰면 가독성도 떨어지고 문장도 난삽해 보인단다. '내가 어렸을 때는 좁은 교실에서 난로를 피워가며 공부를 했어야 했다'와 같은 문장은 '내가 어렸을 때는 좁은 교실에서 난로를 피워가며 공부를 해야 했다'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복수 표준어가 있는 것을 알기 전 헷갈리는 낱말을 쓸 때마다 맞춤법 검사기에 넣고 일일이 확인하곤 했다. 진작 알았다면 틀릴까봐 염려하는 일 없이 안심하고 썼을텐데 말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만 알아도 글이 더 정돈되고 뜻이 명확해질 거란 생각이 든다. 게다가 문법에 대한 기본 지식도 더하여질 것 같다. 우리가 졸업한 지가 어언 몇 년인가 말이다. 요즘 나는 '옛날에' 하면 기본 30년이다. 김정선은 이 책을 내기 전 『동사의 맛』이란 책도 썼단다.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부제가 이렇다.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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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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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 부식되지 않고 여전히 눈부신 것들이 있다. 시간을 무용하게 만들어 그 지배를 거부하는 것들, 그래서 감탄을 불러오는 것들. 그 하나를 만났다. 김영하의 이 소설이 그렇다. 이렇게 냉소적이고 나른하며 감각적이라니. 뒤표지의 도서평에 나온 "스타일리시하다. 뻔한 것과는 매우 거리가 먼 작품"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소설이 출간됐을 당시 사용됐던 책 속의 기기들을 지우고 오늘날 쓰는 기기들을 대입하면 시간차를 못 느낄 것 같다. 이렇게 멋진 책을 이제서야 만나다니. , 비감하여라.     

 

문유석의 쾌락 독서에 따르면 이 소설은 개과와 고양이과의 글 중, 단연 고양이과 글의 표본이다. 1996년 출간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크고 작게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내게 있는 책은 2014년에 나온 38쇄본이다. 책은 크게 세 번 탈바꿈을 하는데, 첫 번째 두번째 표지는 목차에 나온 제목의 그림들이다. 두 표지는 고전적이고 묵중한 느낌을 주는데 반해 세 번째 표지는 가볍고 몽환적이다. 

 

이제껏 책을 읽으며 주연이 책이었다면 작가는 대개 조연이었다. 더 알면 낫고 이 상태로 있어도 그만인. 그런데 이 책을 읽고는 김영하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이곳저곳을 뒤졌다. 201587일자 한 도서 웹진에서는 김영하를 "도시적 감수성을 냉정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작가"로 소개한다 

 

"보편성을 담보하는 소설의 주제의식과 트렌디한 소재를 통해 동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저자 특유의 통찰력과 문제의식으로 전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소설가 김영하. 단편들에서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 타인과의 연대에 대한 무능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명쾌하고도 아이러니하게, 또한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며 독특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었다면, 장편들에서는 독자들에게 늘 새로운 실험을 선보여왔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도 그 자장 안에서 이해된다. 화자는 다른 사람의 자살을 도와주는 일을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 그의 고객이었던 여성들은 유디트와 미미이며, 고객은 아니었지만 해외 여행지에서 잠시 만난 그녀라 불리는 홍콩 여성이 있다. 유디트는 화자 C의 여자로 한 때 그의 동생 K의 여자였다. 유디트의 입장에서는 누구의 여자도 아닌 1,2,3으로 지칭되는 남자들 중 하나였겠지만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이 겪어야 했을 삶의 신산은 나이와는 무관하다. 그녀들은 이십을 넘은지 얼마 안 됐거나 삼십 안팎인데도 무감하고 무미한 느낌을 준다. 선이나 경계가 무너진 일상의 반복으로 매사가 심드렁하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살짝만 건드려도 부서질 것 같은 내면에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극도의 분노가 있다. 그녀들에게 죽음은 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

 

C가 왜 남의 죽음에 개입하는 일을 하게 됐는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동생 K의 입장에서 C는 언제나 자신의 모든 것을 가져가는 사람이다. K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가져가고도 가져간 줄 모르는 사람, 그래서 미안함도 없다. C는 마침내 K의 여자 유디트마저 빼앗아간다 

 

처음 너랑 자던 날 말야. 내가 사탕을 먹고 있었던 것 기억나? 난 네가 나를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던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게임을 해본 거야. 사탕에 넘어오는지, 아님 그 다음에 넘어오는지, 난 그게 궁금했어. 그래서 마음 속으로 내기를 걸었지. 내가 사탕을 다 먹기 전에 네가 넘어오면 너랑 살고, 그다음 단계에서 넘어오면 K랑 살기로. 어때, 재밌지 않아?” 35  

 

유디트는 섹스를 하면서도 추파춥스를 먹는다. 홍콩 여자 그녀는 물을 먹지 않는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물을 마시면 구토가 나오기 때문이다. 미미는 그 바닥에서 이름난 행위예술가다. 매혹적인 것만큼 파괴적이라 경계해야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촬영을 불허하기로 유명한 그녀가 어쩐 일인지 이번 C의 협작 제안에 흔쾌히 응한다. 미미와 유디트는 외견상 공통점이 없는데도 닮아있다.

 

총알택시를 운전하는 K는 스피드에 광적으로 자신을 던진다. 지난 5년간 자신을 지탱케 한 것은 스피드였다. 그러나 유디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자신에게 더 이상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튜닝이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K는 유디트 아니 세연이를 만나야겠다며 자신의 택시에 오른 후 스피드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다 

 

C의 도움으로 의뢰인 유디트도, 미미도 갔다. 그녀들은 주체할 수 없는 삶으로부터 해방되길 원했고, 모순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랐다. 더 이상 상실할 것이 없는 그녀들은 방임으로 가장된 삶을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 생의 막을 내린다. 이야기도, 전달되는 느낌도 다른데 김영하의 살인자의 건강법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김영하의 글은 직선으로 달릴 때 가장 빛난다.

 

자살은 '제대로 살 수만 있다면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는 몸의 이야기다. 김영하는 이 시대의 비루한 일상을 조명한 후, 오늘 이 자리에서 휘발케 한다. "이제 이 소설을 부치고 나면 나도 이 바빌로니아를 떠날 것이다. 비엔나 여행에서처럼 그곳에도 미미나 유디트 같은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C는 '자신의 거실 가득히 피어있는 조화처럼 자신의 인생이 한없이 무료하다'고 건조하게 말한다. 덧붙여 '이제 쉬고 싶다'고까지 한다. 여일한 것이 인생이며 아무리 반짝거려도 조화는 잎파리 하나도 내지 못한다. 이런 비산(飛散)이야말로 김영하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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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늘 한 줄 써봅시다 - 평범한 일상을 바꾸는 아주 쉽고 단순한 하루 3분 습관
김민태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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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나마 내놓을만한 경력은 그 시간들이 만들어 주었지만, 내게는 인생의 아픈 흑역사였다. 못 써도 어찌 그리 못 쓰는지 죽을 맛이었다. 그만둘 수만 있다면 당장 그만두었을 텐데,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에 탄식을 하며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남들은 잘도 쓰러지더만 내 몸은 왜 이리 건강하냐’는 무언의 절규를 수도 없이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의식의 고매함은 찾을 수 없고, 밥벌이의 곤혹스러움에 늘 발은 종종 대고 마음만 바빴다.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세상의 더러움에 치가 떨렸고, 세상의 더러움을 말할 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까워서 가슴 아팠다.” 라고 말한 김훈의 글은 당시의 내게는 멀어도 너무 먼 그대였다. 일을 그만둘 수 있는 기회가 온 듯하자 그 기회를 잡아채 밥벌이로써의 글쓰기와 별리를 만들었다. 지금에 비하면 가소롭지만 나이도 조금 먹었겠다, 누가 나를 막으랴. 모든 부담과 짐을 내려놓은 듯한 안도감을 느끼며 그 시절의 막을 내려버렸다.


글쓰기가 뭐길래, 글쓰기가 도대체 뭐냔 말이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이나마 잡문이나마 끄적거리며 기쁨을 누리게 된 건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 기적에 글쓰기 안내서도 한 몫 했는데, 산문의 최고봉 이태준과 이제는 드라마 작가 홍자매의 아버지로 더 알려진 소설가 홍성원, 서울대 박동규 교수의 책이 길 안내를 해주었다. 그 후로도 많이는 아니지만 간간이 읽곤 했는데 크게 두 갈래로 갈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용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두루뭉술 이런 저런 글들을 가져와 킬링 타임식으로 엮어 내는 경우도 있더란 거다.


『일단 오늘 한줄 써봅시다』는 많은 글쓰기 안내서 중 특별한 상큼함으로 다가온 책이다. 저자 김민태는 글쓰기의 실용적인 부분도 전달하지만 글쓰기가 우리 마음과 영혼에 얼마나 유익이 되는지를 진심을 다해 전한다. 다른 책들이 실효성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한다. 당장은 기능적인 면이 우세해 보이지만 장구하고 흔들림 없는 결과물의 도출은 본질이 답을 쥔다.


김민태는 “글쓰기를 통해 진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 글쓰기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극적으로 변화시키는지를 전한다. 글쓰기는 나를 다른 세계로 보내는 작업이자 자기 안의 타자에게 말을 거는 것이며, 결국은 자신을 위해 쓰는 행위라 규정한다. 글을 쓸수록 자신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게 돼 솔직하게 쓰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솔직해야 치유의 힘이 강해진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저자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심리치료사인가? 무슨 말씀을! 김민태는 EBS의 스타 PD다. 그가 만든 프로그램을 보자. <다큐 프라임>, <시대의 초상>, <아이의 사생활> 등 어디서 많이 들어본 프로그램이지 않나!


그가 쓴 책도 있다. 『아이의 자존감』, 『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 『부모라면 그들처럼』 이밖에 그는 강의도 나가고 사람을 부추기는데도 뛰어나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좋은 일에는 보이지 않는 그의 기획이 숨어있다. 현재 김민태는 EBS 모바일 육아학교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일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왜 김민태는 굳이 글쓰기 관련 책을 썼을까? 프롤로그에 쓰인 글을 보자. “글쓰기는 대박이야. 인생이 바뀌어. 그러니까 그냥 막 써 봐. 봐주는 사람 없으면 페북에 써. 쓰다 보면 주제는 나와. 전문성 없어도 돼.”


글쓰기에 재미를 느끼는 순간 삶이 마법처럼 변하는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라고 했다. 글을 썼더니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커졌고, 정서적으로 좋아졌으며, 새로운 관심사가 계속 생겼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시렸던 내 이십대를 떠올려 본다. 그 때 글쓰기가 밥벌이가 아니라 친구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아니라 지우고 싶지 않은 짝사랑 같진 않았을까? 아마 그랬다면 잘 쓴다는 말은 못 들어도 오히려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기 전엔 해 본 적 없는 생각이다. 모든 좋은 것은 나눠야 한다. 그래서 나도 감상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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