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 진심이 열리는 열두 번의 만남
이진순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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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부터 쓰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와 빨리 쓰고 싶은데, 막상 쓰려면 이상하게 쓰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민의 만약은 없다가 그랬고, 사회학자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 그랬다. 그 뿐인가. 그토록 좋아하는 신형철의 책은 시도조차 못했다. 한데 이진순의 이 책은 또 왜 이런가. 지난 봄부터 초여름까지 두 번이나 읽어놓고선, 다시 보니 줄까지 쳐가며 읽어놓고선 못쓰고 말았다.  

 

그녀의 인터뷰집이 유명인들의 이야기거나, 로또 맞은 사람처럼 인생 역전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거나, 궁금해 죽겠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진작 썼을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데 뭔 부담이 있겠나. 한데 이제와 보니 서문도 그랬고, 다는 아니지만 인터뷰이의 삶이 여간 고되고 녹록치 않았다. 보통의 날을 사는 것조차도 경주를 요구하는데, 더 힘든 곳으로 눈을 돌려야 마음만 아프지 않을까 하는 자기보호막이 발동해서는 아닌가 싶다. 솔직하자면 이기심의 발로지 뭔가 

 

누구나 그렇듯, 내가 인터뷰한 분들도 유약하고 비루하고 소심한 보통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이 독자에게 공명과 감동을 줬다면, 그건 그들이 불퇴전의 용기와 무오류의 인생역정을 보여주는 위인이어서가 아니라 좌절의 상흔과 일상의 너절함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낙관과 사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12명의 사람들이 나온다. 널리 알려진 외상외과 의사 이국종도 있고, 영화감독 임순례도 있으며, 고위공직자였다 해직된 노태강도 있고, 글 못지않은 입담으로 유명한 황석영도 있다. 그러나 더 주목해야 할 사람들은 그 외의 8인이다. 이들의 이름 석자로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을 수도 없고,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불러키기도 힘들지만 이들의 삶은 여전히 뜨겁다 

 

왜 가는 걸 안 말렸느냐고요? 우리도 애 셋 키우는 부모니까요. 처음에 제가 남편을 말렸던 것도 애가 셋이니 위험한 일 하지 말라는 거였는데, 안타까운 부모 마음은 우리나 세월호 유가족이나 똑같은 거더라구요. 처음에 애들 때문에 말리다가 결국 애들 때문에 가라고 했어요.” 

 

이진순은 세월호의 민간잠수사 김관홍의 부인 김혜연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당시 김관홍이 세상을 뜬지 막 3개월이 지난 시점의 인터뷰인데 김혜연은 의외로 담담하다. 의인 김관홍이 아닌 인간 김관홍으로 남편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아이들에게는 아빠의 부재가 아빠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아빠의 마음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단다

 

‘여전히사이에서 세월호는 아직 부유하고, 남편을 잃은 여자와 아빠 없는 아이들 셋은 남겨져 살고 있다. 이진순은 삼십대의 부인이 살아야할 남은 세월에 목이 메여 어떤 입발림의 말도 못하고 작은 바람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앞으론………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의 가난한 노인들은 자기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기보다는 가진 자들, 배운 자들의 시선과 평가를 쫓아서 그걸 자기정체성으로 내면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많이 배운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모방해서 자기를 평가하고 그 잣대로 세상을 보죠. 

 

아이 둘을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 살다 사회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마흔일곱에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고 이혼했다는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의 이야기다. 최현숙은 가난하고 소외된 노인들의 가슴 속 깊은 응어리와 구겨진 기억들을 끄집어내 쓸모없는 삶이었다고 여기는 인생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자칭 나쁜 여자라는 최현숙이 쓴 할배의 탄생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가난한 노인들의 개인사를 역사의 한 영역으로 이입하는데 자그마한 자리를 냈다 

 

이외에도 장애를 가진 동생을 돌보며 무사히 할머니가 되기를 바라는 생각 많은 둘째언니 장혜영, 핑크 소파를 박차고 나온 우아한 미친년 이라는 별칭의 화가 윤석남, 원시적 감각의 힘을 믿는다는 작가겸 래퍼 손아람과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은 소설가 황석영, 그리고 아픈 이야기를 아프게 들어준다는 구수정과 거리의 철학자이자 교육가인 채현국의 이야기 등이 있다.

 

이들 속에, 이들과 함께 또 다른 이진순이 있다. 그녀 또한 보이지 않는 섬세함으로 사람에 몰입하며 세밀하게 사회를 다듬는 중이다. ‘세상을 밝히는 건, 잠깐씩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짧고 단속적인 반짝임이라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들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 이진순. 그녀 또한 오늘도 여전히 반짝인다. 자신이 얼마나 반짝이는 작고 아름다운 별인지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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