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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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겨울, 한 지인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해 달라' 하셨다. 책을 고르려다 보니, 이 분이 이미 오래 전 책을 낸 적이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 웬 어불성설인가. 책을 낸 적도 없는 사람이 책을 낸 작가에게 글쓰기 관련 책자를 소개해 준다니. 즉시 연락을 했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 그러자 '진지하게 부탁하는 거'라며 책을 소개해 달라신다. 급하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나 또한 진지하고 급하게, 게다가 평까지 꼼꼼이 읽은 다음 책을 골랐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이다.

 

 

얼마 되지 않아 전부 주문했다며 '고맙다'는 인사가 왔다. 읽지도 않은 책을 소개해 드렸으니 켕긴다고 할까, 뭔가 거북했다. 그리고는 잊고 지내다 여기저기서 괜찮다는 말이 들리길래 궁금하기도 하고 글 쓸 때 도움이 될까 싶어 구입했다. 요즘 그림같이 편집 잘 된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책 표지나 안이나 하나같이 덤덤하고 재미없게 편집돼 있었다. 하지만 음식이 맛 있으면 식당 허름한 게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이 책이 그랬다(위에 보여지는 책은 예스24 리커버본). 약간의 냉소와 그보다 좀 더 많은 유머를 버물여 글 쓸 때 알아야 할 기본적인 내용들이 구체적인 예와 함께 쉽게 설명돼 있었다.

 

 

저자 김정선은 20년 넘게 교정 교열 일을 하며 남의 문장을 다듬어 왔다고 했다. 오랜 실무를 통해 배우며 익힌 시간들이 이 책을 내게 된 동기인 듯하다. 김정선, 이러니까 여자같지만 남자다. 김정선은 평소 별 생각 없이 쓰거나 안 써도 상관없는데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부터 소개한다. '-적'을 먼저 드는 걸 보니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예인가 보다.

 

그는 "사회적 현상, 경제적 문제, 정치적 세력, 국제적 관계, 혁명적 사상, 자유주의적 경향"와 같은 표현을 "사회 현상, 경제 문제, 정치 세력, 국제 관계, 혁명 사상, 자유주의 경향"으로 바꾸어준다. 이렇게 쓰면 훨씬 깔끔하고 더 분명해 보인단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 조사 '-의'의 남발도 있다. "문제의 해결, 음악 취향의 형성 시기, 노조 지도부와의 협력, 문제 해결은 그다음의 일이다, 부모와의 화해가 우선이다, 이제는 모든 걸 혼자의 힘으로 해내야만 한다"를 "문제 해결, 음악 취향이 형성되는 시기, 노조 지도부와 협력하는 일, 문제 해결은 그다음 일이다, 부모와 화해하는 일이 우선이다, 이제는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해내야만 한다 "로 다듬어준다.

 

 

'들'은 의존 명사로도 쓰이고 접미사로도 쓰인다. 의존명사로 쓰일 때는 '등'에 해당되는데 우리말 문장에서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은 조금만 써도 문장을 어색하게 만든단다. "사과나무들에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모든 아이들이 손에 꽃들을 들고 자신들의 부모들을 향해 뛰어갔다, 수많은 무리들이 열을 지어 행진해 갔다"와 같은 경우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모든 아이가 손에 꽃을 들고 자신의 부모를 향해 뛰어갔다, 수많은 무리가 열을 지어 행진해 갔다'로 고쳐준다.

 

 

덧붙여 관형사 '모든'으로 수식되는 명사에는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을 붙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무리'나 '떼'처럼 복수를 나타내는 명사에 뭐하러 '-들'을 붙이냐고 오히려 되묻는다.

 

 

어질러졌던 집이 정리된 느낌이다. 이밖에도 많이 있지만 글 쓸 때 늘 나를 불편하게 하던 '과거형을 써야 하는지 안 써도 되는지'에 대한 예가 있어 살펴본다. "배웠던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복습이다, 자책에 빠져 지냈던 몇 해 동안 그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어린 시절 외국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내겐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를  "배운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복습이다, 자책에 빠져 지낸 몇 해 동안 그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어린 시절 외국에서 보낸 시간들이 내겐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로 매만져준다.

 

 

우리말의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뿐이어서 한 문장에 과거형을 여러 번 쓰면 가독성도 떨어지고 문장도 난삽해 보인단다. '내가 어렸을 때는 좁은 교실에서 난로를 피워가며 공부를 했어야 했다'와 같은 문장은 '내가 어렸을 때는 좁은 교실에서 난로를 피워가며 공부를 해야 했다'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복수 표준어가 있는 것을 알기 전 헷갈리는 낱말을 쓸 때마다 맞춤법 검사기에 넣고 일일이 확인하곤 했다. 진작 알았다면 틀릴까봐 염려하는 일 없이 안심하고 썼을텐데 말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만 알아도 글이 더 정돈되고 뜻이 명확해질 거란 생각이 든다. 게다가 문법에 대한 기본 지식도 더하여질 것 같다. 우리가 졸업한 지가 어언 몇 년인가 말이다. 요즘 나는 '옛날에' 하면 기본 30년이다. 김정선은 이 책을 내기 전 『동사의 맛』이란 책도 썼단다.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부제가 이렇다.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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