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세월에 부식되지 않고 여전히 눈부신 것들이 있다. 시간을 무용하게 만들어 그 지배를 거부하는 것들, 그래서 감탄을 불러오는 것들. 그 하나를 만났다. 김영하의 이 소설이 그렇다. 이렇게 냉소적이고 나른하며 감각적이라니. 뒤표지의 도서평에 나온 "스타일리시하다. 뻔한 것과는 매우 거리가 먼 작품"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소설이 출간됐을 당시 사용됐던 책 속의 기기들을 지우고 오늘날 쓰는 기기들을 대입하면 시간차를 못 느낄 것 같다. 이렇게 멋진 책을 이제서야 만나다니. , 비감하여라.     

 

문유석의 쾌락 독서에 따르면 이 소설은 개과와 고양이과의 글 중, 단연 고양이과 글의 표본이다. 1996년 출간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크고 작게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내게 있는 책은 2014년에 나온 38쇄본이다. 책은 크게 세 번 탈바꿈을 하는데, 첫 번째 두번째 표지는 목차에 나온 제목의 그림들이다. 두 표지는 고전적이고 묵중한 느낌을 주는데 반해 세 번째 표지는 가볍고 몽환적이다. 

 

이제껏 책을 읽으며 주연이 책이었다면 작가는 대개 조연이었다. 더 알면 낫고 이 상태로 있어도 그만인. 그런데 이 책을 읽고는 김영하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이곳저곳을 뒤졌다. 201587일자 한 도서 웹진에서는 김영하를 "도시적 감수성을 냉정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작가"로 소개한다 

 

"보편성을 담보하는 소설의 주제의식과 트렌디한 소재를 통해 동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저자 특유의 통찰력과 문제의식으로 전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소설가 김영하. 단편들에서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 타인과의 연대에 대한 무능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명쾌하고도 아이러니하게, 또한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며 독특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었다면, 장편들에서는 독자들에게 늘 새로운 실험을 선보여왔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도 그 자장 안에서 이해된다. 화자는 다른 사람의 자살을 도와주는 일을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 그의 고객이었던 여성들은 유디트와 미미이며, 고객은 아니었지만 해외 여행지에서 잠시 만난 그녀라 불리는 홍콩 여성이 있다. 유디트는 화자 C의 여자로 한 때 그의 동생 K의 여자였다. 유디트의 입장에서는 누구의 여자도 아닌 1,2,3으로 지칭되는 남자들 중 하나였겠지만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이 겪어야 했을 삶의 신산은 나이와는 무관하다. 그녀들은 이십을 넘은지 얼마 안 됐거나 삼십 안팎인데도 무감하고 무미한 느낌을 준다. 선이나 경계가 무너진 일상의 반복으로 매사가 심드렁하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살짝만 건드려도 부서질 것 같은 내면에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극도의 분노가 있다. 그녀들에게 죽음은 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

 

C가 왜 남의 죽음에 개입하는 일을 하게 됐는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동생 K의 입장에서 C는 언제나 자신의 모든 것을 가져가는 사람이다. K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가져가고도 가져간 줄 모르는 사람, 그래서 미안함도 없다. C는 마침내 K의 여자 유디트마저 빼앗아간다 

 

처음 너랑 자던 날 말야. 내가 사탕을 먹고 있었던 것 기억나? 난 네가 나를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던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게임을 해본 거야. 사탕에 넘어오는지, 아님 그 다음에 넘어오는지, 난 그게 궁금했어. 그래서 마음 속으로 내기를 걸었지. 내가 사탕을 다 먹기 전에 네가 넘어오면 너랑 살고, 그다음 단계에서 넘어오면 K랑 살기로. 어때, 재밌지 않아?” 35  

 

유디트는 섹스를 하면서도 추파춥스를 먹는다. 홍콩 여자 그녀는 물을 먹지 않는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물을 마시면 구토가 나오기 때문이다. 미미는 그 바닥에서 이름난 행위예술가다. 매혹적인 것만큼 파괴적이라 경계해야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촬영을 불허하기로 유명한 그녀가 어쩐 일인지 이번 C의 협작 제안에 흔쾌히 응한다. 미미와 유디트는 외견상 공통점이 없는데도 닮아있다.

 

총알택시를 운전하는 K는 스피드에 광적으로 자신을 던진다. 지난 5년간 자신을 지탱케 한 것은 스피드였다. 그러나 유디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자신에게 더 이상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튜닝이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K는 유디트 아니 세연이를 만나야겠다며 자신의 택시에 오른 후 스피드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다 

 

C의 도움으로 의뢰인 유디트도, 미미도 갔다. 그녀들은 주체할 수 없는 삶으로부터 해방되길 원했고, 모순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랐다. 더 이상 상실할 것이 없는 그녀들은 방임으로 가장된 삶을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 생의 막을 내린다. 이야기도, 전달되는 느낌도 다른데 김영하의 살인자의 건강법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김영하의 글은 직선으로 달릴 때 가장 빛난다.

 

자살은 '제대로 살 수만 있다면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는 몸의 이야기다. 김영하는 이 시대의 비루한 일상을 조명한 후, 오늘 이 자리에서 휘발케 한다. "이제 이 소설을 부치고 나면 나도 이 바빌로니아를 떠날 것이다. 비엔나 여행에서처럼 그곳에도 미미나 유디트 같은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C는 '자신의 거실 가득히 피어있는 조화처럼 자신의 인생이 한없이 무료하다'고 건조하게 말한다. 덧붙여 '이제 쉬고 싶다'고까지 한다. 여일한 것이 인생이며 아무리 반짝거려도 조화는 잎파리 하나도 내지 못한다. 이런 비산(飛散)이야말로 김영하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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