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감사합니다 - 감사로 세상을 헤쳐 나간 사람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
김준수 지음 / 밀라드(구 북센)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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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갑니다. 가을의 품 안에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그 속에서 옛 시간은 추억으로 치환되고, 그 풍요와 고요의 힘으로 저는 다시 새롭게 됩니다. 이런 가을에 책 한 권과 조우합니다. 삶이 어떻게 철학이 되는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대단한 비법이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하려면 결코 쉽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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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질 끈다구요? 이제 그만 알려드릴까요? 책 제목이 답입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근데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래도'라니요? 그렇게 할 수 없음에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돕니다. 책을 읽어 갑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이태석 신부, 장영희 교수, 헬렌 켈러, 오드리 헵번, 에이브러햄 링컨, 장기려 박사 등. 지금은 지상에 없는 이들이 감사로 빚어낸 삶을 그림처럼 펼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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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옥에 있는 동안 신께 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늘을 보면서도 감사하고, 땅을 보면서도 감사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물을 마시면서도 감사했지요. 강제 노동을 나갈 때면 다른 죄수들은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끌려갔지만, 나는 감옥보다 넓은 자연으로 나갈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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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년의 수감 생활을 한 후 출옥한 만델라에게, 한 기자가 그토록 건강한 이유를 묻자 만델라는 이처럼 대답합니다. 만델라도 수감 초에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있었고 견딜 수 없어 신에게 항변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신은 용서를 원했고 만델라는 생각을 바꾸어 모든 상황에 감사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평안이 오면서 백인들을 용서하게 되었고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환경은 동일했지만 마음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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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의 이야기도 놀랍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각고의 노력 끝에 박사 학위 논문을 전동타자기로 완성하지만, 심사를 앞두고 논문 뭉치가 들어있는 가방을 도둑 맞습니다. 6 년의 세월이 일시에 날라가 버리자 그녀는 기절해 버립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시 쓴 후 1년 만에 더 좋은 논문을 완성합니다. 그녀는 논문 헌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논문 원고를 훔쳐 가서 내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 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도둑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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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잇닿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풍성하게 합니다. 감사가 덧입혀지면 삶의 고통과 질곡이 한 사람을 빚어내는 배경으로 전환 됩니다. 상처는 보기 싫은 흉터가 아니라 생존의 훈장이 됩니다. 모든 것이 빛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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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을 바라보는 이어령 교수의 글도 가슴을 적십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딸 이민아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믿음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전해 주고 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딸을 잃은 후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읽고 알았습니다. 냉정해 보이는 그에게 그토록 절절한 사랑과 깊은 그리움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딸이 원하는 것은 슬픔이 아니기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모든 것을 감사로 수용하며 그도 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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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 일들이 아직도 많아요. 예수님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요. 나는 그저 찢기고 때묻은 주님의 옷 끝자락, 질질 끌려서 흙 묻은 주님의 옷 끝자락을 잡아드리는 마음으로 남은 삶을 살고 싶어요. 이건 딸 덕분이죠. 민아야, 아빠 잘할게. 고맙다, 내 딸 민아야.”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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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갈라지고 터진 부분을 봉합해주고 새 살이 돋게 합니다.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허무에 빠지지 않게 하며 건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슬픔마저 그대로 머물게 하지 않고 어제를 오늘과 연잇게 하며 내일을 만드는 징검다리가 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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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감사합니다』에는 이외에도 감사의 인생을 현재 진행형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음주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그토록 고운 얼굴을 잃고서도 원망하지 않으며 감사로 자신의 인생을 일으켜 세운 이지선 교수와, 전투기의 추락으로 하루 아침에 부인과 아이 둘, 장모님까지 네 명의 가족을 잃었지만 조종사를 원망하지 않고 용서한 윤동주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그 어떤 존재감 없이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베트남 축구의 영웅 박항서 감독의 이야기와 장애를 가진 자녀를 어엿한 청년 성악가로 키워낸 조영애씨의 감사행전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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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때로 허망해지는 삶도 각기 다른 작품으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 앞에서는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다른 이의 도움으로 서는 것을 통해 타인도 그 감사의 축제에 참여케 합니다. 성과 없는 삶에 반발하고 싶을 때 감사해 보세요. 하찮게 생각되던 일들이 반짝반짝 빛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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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한 장의 풍경 사진을 찍기 위해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머뭅니다. 아무리 지나쳐도 결코 과하지 않은 감사의 볕 아래 제 오래된 슬픔과 상처난 욕망과 쓰라린 절망을 말립니다. 당신도 내밀한 아픔과 고통스런 감정을 말리시면 좋겠습니다. 동화처럼 맑고 순전한 가을이 익어가는 그 한복판에 우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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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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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 글이 구리다면 표현법 때문이 아니라 진부한 생각 때문이다. 생각의 게으름이 상투성과 피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그러다보니 간간이 자기복제까지 하면서 먼지가 풀풀 나는 글을 쓰게 됐다. 낡고 해진 글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보기 좋게 차려진 음식에 손이 가듯 맛깔스럽게 쓰인 글은 읽는 이의 구미를 당긴다. 그러나 독자보다 작가가 더 많다는 요즘에도 자신만의 강고한 세계 위에 뚜렷한 색을 가진 작가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글을 잘 쓰는 작가는 지금도 많다. 달리 작가겠는가. 그러나 예민할 정도의 섬세함과 적확하고 감.각.적.인 글을 쓰는 작가를 찾자면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런 류의 작가로 서울대 김영민 교수를 꼽고 싶다. 만일 그의 글이 이토록 흡입력이 있지 않았다면, 아직도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것이 의식이 아닌 접속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내가, 독후감도 아니고 서평은 더더욱 아닌 조각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깔끔한 글에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이 실은 무의미하고 군더더기라고 생각하니까.



김영민은 이 책에서 공부한다는 것의 본질에 관해 말한다. 덧붙여 공부가 주는 효과와 정신의 척추 기립근을 세우는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준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만큼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는 우리나라에서 공부함에 대한 논의가 이토록 활발하지 않은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학생들도 공부하러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가려고 공부하는 것 같으니 기이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 일찍부터 입시에 정열을 바친다는 점에서 교육열이 강한 나라이지만, 진정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육에 냉담한 나라이기도 하다. 마치 부동산에 관심을 쏟으면서도, 그 부동산에서 어떻게 삶의 희로애락을 쌓아 올릴지에 대해서는 냉담한 것처럼, 사람들이 입시와 부동산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것들이 계층 이동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0~11쪽 프롤로그)


오래도록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요즘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례가 드물어 지는 건 계층의 고착화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서 보여지는 진입 장벽의 강화로 계층 상승이 어렵게 되었다. 오늘날 이토록 입시에 많은 것을 쏟아붇는 것도 막차가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이처럼 젊은 날 입시와 취업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공부를 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그 화려한 시간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마치 날씨가 너무 좋은 날 경치가 아름다운 길을 돌아 보지 않고 바삐 지나치는 것이 그 시간에 대한 모욕인 것처럼." (12쪽 프롤로그)


성과를 위한 공부는 라면과 비슷하다. 라면이 일시적 허기는 면케해 주지만 영양식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유용함의 공부는 무용함의 공부를 포괄할 수 없다. 또 아무리 좋은 영양식조차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지 공부에 맞출 이유가 없는데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공부에 눌려 살고 있으니 너무도 측은하다.


『공부란 무엇인가』는 5부로 나뉘어져 있다. 전반 1,2부에서는 공부를 하기 위해 갖춰야 할 여러 요소들과 공부를 하며 사는 삶이 어떠한지를 다루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한 공부를 다른 이에게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알고 체득해야 할 과정을 다룬다. 앞서 언급했듯 글은 쫄깃하고 탄성 가득하며, 공부를 통해 변화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섬세하고도 주의 깊게 독자를 이끈다.


개성 뿜뿜하며 재치 가득한 김영민의 글은 대개 이런 식이다.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 "공부란, 무용해 보이는 것에 대한 열정인 동시에 모호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그 중 제일 빵 터졌던 글은 " '설레다'와 '설레발'의 관계는 무얼까. 설사는 항문이 오열하는 것일까. 영어마을을 만들었던 것처럼 영어감옥을 만들면, 학부모들이 앞 다투어 자식들을 감옥에 보내지않을까." 등이다.


할 것 많고 볼 것 많은 세상에 이미 살만큼 살았고 급한 대로 늙을 만큼 늙었는데 학생 때도 안 했던 공부를 해야 한다니 애통하고 답답한 일이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 듯 김영민은 이렇게 써 놓았다. "다독도 해야 하고 정독도 해야 한다니, 그걸 언제 다해요? 이 짧은 인생에 책만 읽다가 죽으란 말인가요?"


그래 놓고는 이런 말로 시치미를 뗀다. "공부에 매진해본 사람만이 제대로 쉴 수 있습니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듯이, 공부라는 긴장을 해본 사람만이 휴식이라는 이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공부를 안 해서 제대로 못 쉬는 것은 부끄럽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쉬는 일은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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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 똥 쌌어?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69
이서우 지음 / 북극곰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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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강아지가 천사같은 얼굴을 하고 쳐다보는 사진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한번 만져보고 싶고 키워보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하는 그런 사진 말입니다. 그런데 예쁜 것과 실제 키우는 것은 많이 다른지, 그렇게 사랑스런 강아지들도 키울 수 없게 되는 일을 만나게 되나봅니다.


주인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지만 어찌된 사연인지 누군가의 집 앞에 버려진 강아지가 있습니다. 주인은 케이지 안에 강아지를 둔 후 이런 편지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누누는 칭찬을 좋아해요. 특히, 똥을 잘 싸면 온 가족이 크게 칭찬해 주세요!"



똥마저 예쁘게 봐 준 주인은 무슨 사정이 있었길래 강아지와 헤어져야 했을까요? 그 사연을 알 순 없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필경 좋은 주인을 찾았을 테고, 이 집이 가장 적합하다 여긴 듯합니다.


이 집엔 다 큰 자녀들과 육십을 바라보는 듯한 부부가 있습니다. 눈썹이 올라간 북극곰같은 아버지는 뭔가 못마땅 듯한 느낌이구요, 갑작스레 나타난 강아지 누누로 엄마는 당황스러운 듯한 느낌입니다. 한데 누누는 오자마자 눈치 없게 응가를 하려하네요.


아버지는 TV만 보고 있구요, 다른 식구들은 숨 죽인채 누누를 지켜봅니다. 온 힘을 다하여 누누는 응가를 합니다. 마침내 두 덩어리의 똥이 떨어지자, 세상에나 기다렸다는듯 식구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어느새 누누는 가족이 되었고, 어디를 가든 응가를 합니다. 아들의 결혼식장에서도, 딸의 졸업식장에서도요. 그 때마다 축제같은 분위기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이제 어른이 된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해 부모 곁을 떠납니다. 그 때마다 누누는 함께 합니다. 언제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엄마는 고운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누누는 여전히 두 덩어리의 똥으로 엄마를 기쁘게 하구요.


그러던 어느날 생각지도 못하게 엄마가 쓰러집니다. 아버지의 간호도 무색하게 엄마는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곁에는 누누만 남습니다. 한결같이 뚱한 아버지는 변함없이 TV만 봅니다. 그 아버지가 어느날 누누의 똥을 보고 춤을 춥니다.


강아지에게 주인은 절대적 환경과 같고, 전부와도 같습니다.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생이 달라지니까요. 주인에 따라 처지가 달라지는 강아지를 볼 때면 애처롭기 짝이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어디 사람과 사람만의 일이겠습니까? 『누누 똥 쌌어?』는 반려동물 천만이라는 시대에 강아지라는 생명체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떤 삶인지 생각케 하는 그림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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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부터 탄탄하게, 처음 듣는 의대 강의 - 의대 지망생과 일반인을 위한 의학 수업
안승철 지음 / 궁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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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혹은 가보고 싶지만 가기 힘든 길에 대한 호기심이 누구나 있다. 그런 호기심은 때로 특정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는데, 내게는 의학 혹은 의사라는 직업이 그렇다. 오래 전 방송국에서 건강 프로그램의 구성작가를 했었다. 프로그램의 성격이 그렇다보니 의사 선생님들을 모시고 했는데, 많은 환자로 쉴 시간이 없는 그분들에겐 방송 출연이 휴식 같은 시간이었던 듯하다. 들뜬 듯 기뻐했던 모습들을 기억한다. 연사는 면면이 달랐는데 유쾌하고 깔끔하게 프로그램을 이끄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본인의 성격대로 서글서글하고 씩씩하게 방송을 이끈 선생님도 있었고, 첫 출연이라 진땀을 흘리며 말을 이어가 보는 사람마저 긴장하게 만든 선생님도 있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임에도 연을 대어 나오게 된 선생님 중 한 분은, 이렇게  해서라도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토로하기도 했다. 방송 출연을 안 하다 보니 환자들이 '우리 선생님은 실력이 없나' 하는 의심을 한다며, 때로 전문가도 아닌 사람을 명의로 만들고 방송 출연을 안 했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우스꽝스런 현실에 대해 난감한 심정을 피력했다. 당시 이 선생님은 유명 대학 병원의 부원장이었다.


사설이 길었다. 다시 돌아가자. 그래서 의사가 저자인 책은 기회가 닿으면 읽는 편이고, 이 책도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인 의사가 쓴 책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둔 부모라면 못 보내서 문제지, 된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들여보내고 싶은 곳이 의대일 거다. 비록 서울의 끝에 가깝지만 내가 사는 곳도 교육특구라 불리는 곳 중 한 곳인데, 몇 년 전 근처의 어떤 학교가 서울대 의대에 10년 만에 학생을 들여보냈다며 플래카드를 걸고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아이가 어려 별 관심 없이 듣고 말았지만, 해당 범주 안에 있는 부모들에겐 무척 희망을 주는 소식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상위 1%의 학생만 들어갈 수 있다는 의대에서는 강의를 어떻게 하며 어떤 걸 가르치는 걸까? 인터넷을 뒤지면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있겠지만 현직 의대 교수가 알려주는 것만큼 정확하고 믿을만한 책이 있을까 싶다. 의대를 꿈꾸는 학생이나 궁금해 하는 일반인, 자녀로 인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학부모들에게 이 책은 명쾌히 궁금증을 해결해 줄만하다. 저자 안승철은 단국대 의대 교수로, 몇 년 전부터 대학의 교양강좌를 통해 일반 학생들에게도 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난이도를 낮춰 쉽게 가르쳐도 어렵다는 말을 들었단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쉬우면 그게 의학인가? 그러나 배우는 사람의 입장은 그렇지 않으니 이 딜레마 사이에서 고민하던 결과물이 시간이 흘러 이 책 『처음 듣는 의대 강의』를 낳게 되었다.


저자의 글은 쉽고 친절하며 유려하다. 믿고 잘 따라가면 된다. 단지 내용이 조금 어려울 뿐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데, 독자가 학생이라면 별 걱정 안 해도 된다. 군인이 돌이라도 씹어먹듯 학생은 그 어떤 내용도 읽을 수 있고, 분위기만 잘 잡아주면 신이 나서 읽을 수도 있다. 학생의 정신력은 위대하니까.


"호흡계를 구성하는 기관 중 인두나 후두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테지만 사실은 누구나 다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입니다. 이비인후과(耳鼻咽喉科)의 인(咽)과 후(喉)가 바로 인두와 후두를 가리키거든요. 이(耳)와 비(鼻)는 귀와 코를 가리키는 말인 것은 아시죠? 인두는 코와 입의 내부 공간이 합쳐지는 곳에서 식도가 시작하는 곳까지의 공간을 말합니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들여다보는 곳이 바로 인두입니다. 감기에 걸리면 인두의 림프절들이 부어오르거든요. 후두는 인두와 기관 사이의 공간을 말합니다. 이 공간으로 음식물과 공기가 같이 지나가죠. 


코와 입의 공간을 아래쪽으로 연장시켜보면 코가 입의 위쪽에 자리하고 있으니 당연히 기관이 식도의 뒤쪽으로 지나가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식도가 기관의 뒤쪽에 놓여 있습니다. 잘못하면 음식물이 기관으로 들어가기 딱 좋게 생겼지요. 다행히도 우리 몸에는 음식물이 기관으로 넘어가는 걸 방지할 수 있는 장치(후두 덮개)가 있습니다. 음식물이 기관으로 잘못 들어가면 사래가 들리죠. 후두 덮개가 제 기능을 못해 음식물이 기관지로 들어가면 폐렴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p.113~114


이 책은 생리학적 시각에서 인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대해 주로 다룬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각종 사진과 그래프, 그림들이 있으며 소설 읽듯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 관심사부터 읽어도 되고, 모르면 넘겼다가 다시 읽으면 된다. 참,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선정하는 '2019년도 세종 도서 교양 부문'에도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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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문신가 스토리콜렉터 73
헤더 모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북로드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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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처는 살아온 시간의 무늬'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말로 지나온 시간을 그릴 수 있다면 그건 차라리 축복일 것이다. 순식간에 공포가 찾아오고, 누군가 죽어야만 되는 시간 속에 갇혀있던 사람들의 상처는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사람들은 홀로코스트라 명명했고, 그 시간을 뚫고나온 사람들을 생존자라 불렀다.


미국의 역사 저술가 조셉 커민스는 그의 책 『잔혹한 세계사』에서 인류의 역사는 벽돌이나 콘크리트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피와 살, 뼈로 세워졌다고 했다. 그 말이 아우슈비츠만큼 부합되는 곳이 어디 있을까? 6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극도의 공포 속에 수용소의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 이야기를 뉴질랜드의 작가 헤더 모리스가 소설로 펴냈다.


헤더 모리스는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유대인들의 팔에 수형 번호 새기는 일을 했다는, 슬로바키아 출신의 유대인 랄레 소콜로프를 만나 지난 시간을 듣는다. 그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 바로 『아우슈비츠의 문신가』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불안이 전신을 휘어감는 그곳에서 랄레는 반드시 살아나가겠다는 다짐을 한다. 겁을 먹고 떨고 있는 한 소녀, 기타와 함께 하면서부터다. 이제 랄레는 두 사람 몫의 희망을 붙잡고 자신을 다잡는다.


수용소에 오기 전 랄레는 수려한 외모와 재치로 잘 나가던 24세의 패기만만한 젊은이었다. 그러나 달라진 세상에서 유대인은 있으면 안되는 존재였고, 마땅히 격리되거나 어딘가로 수송되어야 하는 족속이었다. 그토록 죽음이 근접한 곳에서 목숨을 지키는 것은 신의 가호와 담력이 손을 잡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3년을 넘어설 줄은 누구도 몰랐고, 기타가 다른 곳으로 끌려갈 때까지 랄레는 그녀의 이름조차 정확히 몰랐다. 생존의 법칙은 그토록 무서웠다.


그런 시간들을 감싼 이야기이자 기록이 『아우슈비츠의 문신가』이다. 단 몇 초도 허비할 수 없을만큼 급박한 상황과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인간의 삶을 향한 염원과 사랑은 더 뜨겁게 발화한다. 생이 구차할수록 간절한 바람은 목숨을 담보하고 삶의 유일한 끈이 된다. 그 이야기를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만났다. 해가 바뀌면 하게 되는 기대와 기대가 주는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여기저기서 많은 일들이 난무하고 있는 이런 시점에서. 책의 뒷 표지에는 '아우슈비츠의 문신가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 라고 책 소개를 마무리 한다.


그런데 내게는 '사랑 이야기'가 아닌 '아우슈비츠'에 자꾸 방점이 찍힌다. '아우슈비츠'로 쓰고 있지만 자꾸 '경고'로 보인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하나 안다면 아우슈비츠는 멀리 있지 않다는 것 정도다. 굳이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 악의 평범성을 끌어오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때론 내 안에, 때론 당신 안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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