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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감사합니다 - 감사로 세상을 헤쳐 나간 사람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
김준수 지음 / 밀라드(구 북센) / 2020년 9월
평점 :
가을이 깊어갑니다. 가을의 품 안에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그 속에서 옛 시간은 추억으로 치환되고, 그 풍요와 고요의 힘으로 저는 다시 새롭게 됩니다. 이런 가을에 책 한 권과 조우합니다. 삶이 어떻게 철학이 되는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대단한 비법이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하려면 결코 쉽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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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질 끈다구요? 이제 그만 알려드릴까요? 책 제목이 답입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근데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래도'라니요? 그렇게 할 수 없음에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돕니다. 책을 읽어 갑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이태석 신부, 장영희 교수, 헬렌 켈러, 오드리 헵번, 에이브러햄 링컨, 장기려 박사 등. 지금은 지상에 없는 이들이 감사로 빚어낸 삶을 그림처럼 펼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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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옥에 있는 동안 신께 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늘을 보면서도 감사하고, 땅을 보면서도 감사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물을 마시면서도 감사했지요. 강제 노동을 나갈 때면 다른 죄수들은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끌려갔지만, 나는 감옥보다 넓은 자연으로 나갈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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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년의 수감 생활을 한 후 출옥한 만델라에게, 한 기자가 그토록 건강한 이유를 묻자 만델라는 이처럼 대답합니다. 만델라도 수감 초에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있었고 견딜 수 없어 신에게 항변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신은 용서를 원했고 만델라는 생각을 바꾸어 모든 상황에 감사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평안이 오면서 백인들을 용서하게 되었고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환경은 동일했지만 마음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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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의 이야기도 놀랍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각고의 노력 끝에 박사 학위 논문을 전동타자기로 완성하지만, 심사를 앞두고 논문 뭉치가 들어있는 가방을 도둑 맞습니다. 6 년의 세월이 일시에 날라가 버리자 그녀는 기절해 버립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시 쓴 후 1년 만에 더 좋은 논문을 완성합니다. 그녀는 논문 헌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논문 원고를 훔쳐 가서 내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 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도둑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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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잇닿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풍성하게 합니다. 감사가 덧입혀지면 삶의 고통과 질곡이 한 사람을 빚어내는 배경으로 전환 됩니다. 상처는 보기 싫은 흉터가 아니라 생존의 훈장이 됩니다. 모든 것이 빛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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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을 바라보는 이어령 교수의 글도 가슴을 적십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딸 이민아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믿음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전해 주고 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딸을 잃은 후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읽고 알았습니다. 냉정해 보이는 그에게 그토록 절절한 사랑과 깊은 그리움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딸이 원하는 것은 슬픔이 아니기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모든 것을 감사로 수용하며 그도 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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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 일들이 아직도 많아요. 예수님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요. 나는 그저 찢기고 때묻은 주님의 옷 끝자락, 질질 끌려서 흙 묻은 주님의 옷 끝자락을 잡아드리는 마음으로 남은 삶을 살고 싶어요. 이건 딸 덕분이죠. 민아야, 아빠 잘할게. 고맙다, 내 딸 민아야.”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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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갈라지고 터진 부분을 봉합해주고 새 살이 돋게 합니다.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허무에 빠지지 않게 하며 건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슬픔마저 그대로 머물게 하지 않고 어제를 오늘과 연잇게 하며 내일을 만드는 징검다리가 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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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감사합니다』에는 이외에도 감사의 인생을 현재 진행형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음주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그토록 고운 얼굴을 잃고서도 원망하지 않으며 감사로 자신의 인생을 일으켜 세운 이지선 교수와, 전투기의 추락으로 하루 아침에 부인과 아이 둘, 장모님까지 네 명의 가족을 잃었지만 조종사를 원망하지 않고 용서한 윤동주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그 어떤 존재감 없이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베트남 축구의 영웅 박항서 감독의 이야기와 장애를 가진 자녀를 어엿한 청년 성악가로 키워낸 조영애씨의 감사행전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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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때로 허망해지는 삶도 각기 다른 작품으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 앞에서는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다른 이의 도움으로 서는 것을 통해 타인도 그 감사의 축제에 참여케 합니다. 성과 없는 삶에 반발하고 싶을 때 감사해 보세요. 하찮게 생각되던 일들이 반짝반짝 빛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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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한 장의 풍경 사진을 찍기 위해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머뭅니다. 아무리 지나쳐도 결코 과하지 않은 감사의 볕 아래 제 오래된 슬픔과 상처난 욕망과 쓰라린 절망을 말립니다. 당신도 내밀한 아픔과 고통스런 감정을 말리시면 좋겠습니다. 동화처럼 맑고 순전한 가을이 익어가는 그 한복판에 우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