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의 문신가 스토리콜렉터 73
헤더 모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북로드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상처는 살아온 시간의 무늬'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말로 지나온 시간을 그릴 수 있다면 그건 차라리 축복일 것이다. 순식간에 공포가 찾아오고, 누군가 죽어야만 되는 시간 속에 갇혀있던 사람들의 상처는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사람들은 홀로코스트라 명명했고, 그 시간을 뚫고나온 사람들을 생존자라 불렀다.


미국의 역사 저술가 조셉 커민스는 그의 책 『잔혹한 세계사』에서 인류의 역사는 벽돌이나 콘크리트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피와 살, 뼈로 세워졌다고 했다. 그 말이 아우슈비츠만큼 부합되는 곳이 어디 있을까? 6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극도의 공포 속에 수용소의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 이야기를 뉴질랜드의 작가 헤더 모리스가 소설로 펴냈다.


헤더 모리스는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유대인들의 팔에 수형 번호 새기는 일을 했다는, 슬로바키아 출신의 유대인 랄레 소콜로프를 만나 지난 시간을 듣는다. 그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 바로 『아우슈비츠의 문신가』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불안이 전신을 휘어감는 그곳에서 랄레는 반드시 살아나가겠다는 다짐을 한다. 겁을 먹고 떨고 있는 한 소녀, 기타와 함께 하면서부터다. 이제 랄레는 두 사람 몫의 희망을 붙잡고 자신을 다잡는다.


수용소에 오기 전 랄레는 수려한 외모와 재치로 잘 나가던 24세의 패기만만한 젊은이었다. 그러나 달라진 세상에서 유대인은 있으면 안되는 존재였고, 마땅히 격리되거나 어딘가로 수송되어야 하는 족속이었다. 그토록 죽음이 근접한 곳에서 목숨을 지키는 것은 신의 가호와 담력이 손을 잡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3년을 넘어설 줄은 누구도 몰랐고, 기타가 다른 곳으로 끌려갈 때까지 랄레는 그녀의 이름조차 정확히 몰랐다. 생존의 법칙은 그토록 무서웠다.


그런 시간들을 감싼 이야기이자 기록이 『아우슈비츠의 문신가』이다. 단 몇 초도 허비할 수 없을만큼 급박한 상황과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인간의 삶을 향한 염원과 사랑은 더 뜨겁게 발화한다. 생이 구차할수록 간절한 바람은 목숨을 담보하고 삶의 유일한 끈이 된다. 그 이야기를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만났다. 해가 바뀌면 하게 되는 기대와 기대가 주는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여기저기서 많은 일들이 난무하고 있는 이런 시점에서. 책의 뒷 표지에는 '아우슈비츠의 문신가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 라고 책 소개를 마무리 한다.


그런데 내게는 '사랑 이야기'가 아닌 '아우슈비츠'에 자꾸 방점이 찍힌다. '아우슈비츠'로 쓰고 있지만 자꾸 '경고'로 보인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하나 안다면 아우슈비츠는 멀리 있지 않다는 것 정도다. 굳이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 악의 평범성을 끌어오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때론 내 안에, 때론 당신 안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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