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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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 글이 구리다면 표현법 때문이 아니라 진부한 생각 때문이다. 생각의 게으름이 상투성과 피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그러다보니 간간이 자기복제까지 하면서 먼지가 풀풀 나는 글을 쓰게 됐다. 낡고 해진 글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보기 좋게 차려진 음식에 손이 가듯 맛깔스럽게 쓰인 글은 읽는 이의 구미를 당긴다. 그러나 독자보다 작가가 더 많다는 요즘에도 자신만의 강고한 세계 위에 뚜렷한 색을 가진 작가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글을 잘 쓰는 작가는 지금도 많다. 달리 작가겠는가. 그러나 예민할 정도의 섬세함과 적확하고 감.각.적.인 글을 쓰는 작가를 찾자면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런 류의 작가로 서울대 김영민 교수를 꼽고 싶다. 만일 그의 글이 이토록 흡입력이 있지 않았다면, 아직도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것이 의식이 아닌 접속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내가, 독후감도 아니고 서평은 더더욱 아닌 조각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깔끔한 글에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이 실은 무의미하고 군더더기라고 생각하니까.



김영민은 이 책에서 공부한다는 것의 본질에 관해 말한다. 덧붙여 공부가 주는 효과와 정신의 척추 기립근을 세우는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준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만큼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는 우리나라에서 공부함에 대한 논의가 이토록 활발하지 않은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학생들도 공부하러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가려고 공부하는 것 같으니 기이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 일찍부터 입시에 정열을 바친다는 점에서 교육열이 강한 나라이지만, 진정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육에 냉담한 나라이기도 하다. 마치 부동산에 관심을 쏟으면서도, 그 부동산에서 어떻게 삶의 희로애락을 쌓아 올릴지에 대해서는 냉담한 것처럼, 사람들이 입시와 부동산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것들이 계층 이동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0~11쪽 프롤로그)


오래도록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요즘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례가 드물어 지는 건 계층의 고착화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서 보여지는 진입 장벽의 강화로 계층 상승이 어렵게 되었다. 오늘날 이토록 입시에 많은 것을 쏟아붇는 것도 막차가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이처럼 젊은 날 입시와 취업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공부를 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그 화려한 시간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마치 날씨가 너무 좋은 날 경치가 아름다운 길을 돌아 보지 않고 바삐 지나치는 것이 그 시간에 대한 모욕인 것처럼." (12쪽 프롤로그)


성과를 위한 공부는 라면과 비슷하다. 라면이 일시적 허기는 면케해 주지만 영양식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유용함의 공부는 무용함의 공부를 포괄할 수 없다. 또 아무리 좋은 영양식조차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지 공부에 맞출 이유가 없는데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공부에 눌려 살고 있으니 너무도 측은하다.


『공부란 무엇인가』는 5부로 나뉘어져 있다. 전반 1,2부에서는 공부를 하기 위해 갖춰야 할 여러 요소들과 공부를 하며 사는 삶이 어떠한지를 다루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한 공부를 다른 이에게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알고 체득해야 할 과정을 다룬다. 앞서 언급했듯 글은 쫄깃하고 탄성 가득하며, 공부를 통해 변화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섬세하고도 주의 깊게 독자를 이끈다.


개성 뿜뿜하며 재치 가득한 김영민의 글은 대개 이런 식이다.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 "공부란, 무용해 보이는 것에 대한 열정인 동시에 모호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그 중 제일 빵 터졌던 글은 " '설레다'와 '설레발'의 관계는 무얼까. 설사는 항문이 오열하는 것일까. 영어마을을 만들었던 것처럼 영어감옥을 만들면, 학부모들이 앞 다투어 자식들을 감옥에 보내지않을까." 등이다.


할 것 많고 볼 것 많은 세상에 이미 살만큼 살았고 급한 대로 늙을 만큼 늙었는데 학생 때도 안 했던 공부를 해야 한다니 애통하고 답답한 일이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 듯 김영민은 이렇게 써 놓았다. "다독도 해야 하고 정독도 해야 한다니, 그걸 언제 다해요? 이 짧은 인생에 책만 읽다가 죽으란 말인가요?"


그래 놓고는 이런 말로 시치미를 뗀다. "공부에 매진해본 사람만이 제대로 쉴 수 있습니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듯이, 공부라는 긴장을 해본 사람만이 휴식이라는 이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공부를 안 해서 제대로 못 쉬는 것은 부끄럽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쉬는 일은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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