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부터 탄탄하게, 처음 듣는 의대 강의 - 의대 지망생과 일반인을 위한 의학 수업
안승철 지음 / 궁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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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혹은 가보고 싶지만 가기 힘든 길에 대한 호기심이 누구나 있다. 그런 호기심은 때로 특정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는데, 내게는 의학 혹은 의사라는 직업이 그렇다. 오래 전 방송국에서 건강 프로그램의 구성작가를 했었다. 프로그램의 성격이 그렇다보니 의사 선생님들을 모시고 했는데, 많은 환자로 쉴 시간이 없는 그분들에겐 방송 출연이 휴식 같은 시간이었던 듯하다. 들뜬 듯 기뻐했던 모습들을 기억한다. 연사는 면면이 달랐는데 유쾌하고 깔끔하게 프로그램을 이끄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본인의 성격대로 서글서글하고 씩씩하게 방송을 이끈 선생님도 있었고, 첫 출연이라 진땀을 흘리며 말을 이어가 보는 사람마저 긴장하게 만든 선생님도 있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임에도 연을 대어 나오게 된 선생님 중 한 분은, 이렇게  해서라도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토로하기도 했다. 방송 출연을 안 하다 보니 환자들이 '우리 선생님은 실력이 없나' 하는 의심을 한다며, 때로 전문가도 아닌 사람을 명의로 만들고 방송 출연을 안 했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우스꽝스런 현실에 대해 난감한 심정을 피력했다. 당시 이 선생님은 유명 대학 병원의 부원장이었다.


사설이 길었다. 다시 돌아가자. 그래서 의사가 저자인 책은 기회가 닿으면 읽는 편이고, 이 책도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인 의사가 쓴 책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둔 부모라면 못 보내서 문제지, 된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들여보내고 싶은 곳이 의대일 거다. 비록 서울의 끝에 가깝지만 내가 사는 곳도 교육특구라 불리는 곳 중 한 곳인데, 몇 년 전 근처의 어떤 학교가 서울대 의대에 10년 만에 학생을 들여보냈다며 플래카드를 걸고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아이가 어려 별 관심 없이 듣고 말았지만, 해당 범주 안에 있는 부모들에겐 무척 희망을 주는 소식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상위 1%의 학생만 들어갈 수 있다는 의대에서는 강의를 어떻게 하며 어떤 걸 가르치는 걸까? 인터넷을 뒤지면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있겠지만 현직 의대 교수가 알려주는 것만큼 정확하고 믿을만한 책이 있을까 싶다. 의대를 꿈꾸는 학생이나 궁금해 하는 일반인, 자녀로 인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학부모들에게 이 책은 명쾌히 궁금증을 해결해 줄만하다. 저자 안승철은 단국대 의대 교수로, 몇 년 전부터 대학의 교양강좌를 통해 일반 학생들에게도 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난이도를 낮춰 쉽게 가르쳐도 어렵다는 말을 들었단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쉬우면 그게 의학인가? 그러나 배우는 사람의 입장은 그렇지 않으니 이 딜레마 사이에서 고민하던 결과물이 시간이 흘러 이 책 『처음 듣는 의대 강의』를 낳게 되었다.


저자의 글은 쉽고 친절하며 유려하다. 믿고 잘 따라가면 된다. 단지 내용이 조금 어려울 뿐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데, 독자가 학생이라면 별 걱정 안 해도 된다. 군인이 돌이라도 씹어먹듯 학생은 그 어떤 내용도 읽을 수 있고, 분위기만 잘 잡아주면 신이 나서 읽을 수도 있다. 학생의 정신력은 위대하니까.


"호흡계를 구성하는 기관 중 인두나 후두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테지만 사실은 누구나 다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입니다. 이비인후과(耳鼻咽喉科)의 인(咽)과 후(喉)가 바로 인두와 후두를 가리키거든요. 이(耳)와 비(鼻)는 귀와 코를 가리키는 말인 것은 아시죠? 인두는 코와 입의 내부 공간이 합쳐지는 곳에서 식도가 시작하는 곳까지의 공간을 말합니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들여다보는 곳이 바로 인두입니다. 감기에 걸리면 인두의 림프절들이 부어오르거든요. 후두는 인두와 기관 사이의 공간을 말합니다. 이 공간으로 음식물과 공기가 같이 지나가죠. 


코와 입의 공간을 아래쪽으로 연장시켜보면 코가 입의 위쪽에 자리하고 있으니 당연히 기관이 식도의 뒤쪽으로 지나가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식도가 기관의 뒤쪽에 놓여 있습니다. 잘못하면 음식물이 기관으로 들어가기 딱 좋게 생겼지요. 다행히도 우리 몸에는 음식물이 기관으로 넘어가는 걸 방지할 수 있는 장치(후두 덮개)가 있습니다. 음식물이 기관으로 잘못 들어가면 사래가 들리죠. 후두 덮개가 제 기능을 못해 음식물이 기관지로 들어가면 폐렴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p.113~114


이 책은 생리학적 시각에서 인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대해 주로 다룬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각종 사진과 그래프, 그림들이 있으며 소설 읽듯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 관심사부터 읽어도 되고, 모르면 넘겼다가 다시 읽으면 된다. 참,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선정하는 '2019년도 세종 도서 교양 부문'에도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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