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K, 교회를 나가다 - 한국 개신교의 성공과 실패, 그 욕망의 사회학
김진호 지음 / 현암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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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도 불편한 책을 읽었다. 근현대 한국사와 맞물린 한국 교회사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었다. 그 아픔의 근간은 내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한국 개신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이 책은 읽는 내내 아픔과 부끄러움의 상반된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기독교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격한 감정을 비추며 야유나 조롱의 방식으로 다루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겁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저자가 타 종교의 신자나 무종교주의자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신학자이면서 목사였다. 나는 준엄한 심판대에 선 자의 심정으로 이 책을 읽어내려갔다.

 

 

 

언젠가부터 한국 교회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믿건, 믿지 않건간에 말이다. 그래서 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러이러한 행동과 사고를 할 것이라는 최소한도의 기대치가 있었다. 게다가 나라의 대통령이 두 분이나 교회 장로였다. 그러나 좀 다르려나 하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위정자 뿐 아니라 사회 각계에 크리스천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태나, 열심히 교회를 다닌다는 교인들의 삶의 양식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회의 병폐는 교회에서도 볼 수 있었고, 세상의 마인드와 가치관은 교회에서도 통용되고 있었다

 

이런 시급하고도 중대한 문제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김진호가 시도했다. 김진호는 개신교가 근대 한국 사회의 형성에 중차대한 역할을 했다며, 개신교를 묻는 일은 한국 사회를 묻는 일과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와 개신교가 서로 어떻게 맞물리며 형성되었는지, 그 얽힘의 과정과 방식에 대한 해석을 김진호는 찬찬히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는 한국 개신교의 지난 역사를, 2부는 작금의 상황을, 3부는 한국 개신교의 미래에 대해 언급한다.

 

김진호는 한국 개신교의 특징으로 '배타성과 성공지상주의, 극우반공과 친미성'을 들고 있다. 이런 특징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개신교가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추적하면 금세 알 수 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파송된 선교사는 90%가 미국인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졌다는 북장로회 소속이었다. 선교사들은 수많은 교육기관을 세우고 운영했으며, 자신들이 속한 교단의 교리를 신자들에게 확고히 주입시켰다. 한편 선교사들이 머무는 교회는 한국인들이 일본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피신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즉 교회가 일종의 치외법권적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1907년에 있었던 평양의 대부흥운동은 조선 기독교의 원체험이 되었고, 배타주의적 신앙관을 제도화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를 선교사들에게 제공했다.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 신사참배로 인해 좌절감과 수치심을 맛보야 했던 기독교인에게 공산주의는 아픔과 증오를 떠넘길 수 있는 안전한 대상이 되었다. 이북에서 월남한 목사들과 신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영락교회는 극우반공의 산실 역할을 하며 한국 교회를 이끌었다. 그러나 불안전한 정국으로 인한 혼란에 채 적응도 못한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이 다가왔고, 전쟁의 상처는 너무도 깊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황폐화 되었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심적 고통 못지않게 먹지 못하는 고통도 컸다. 교회는 이런 빈민들에게 위로를 주었고, 사람들은 신앙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되찾아갔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경제 개발이 되면서 교회는 도시 빈민을 교회 안으로 깊숙이 들이게 된다. 1970년대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이들을 수용하면서 교세를 확장하게 되고, 미국의 대형 교회인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 목사의 번영신학을 받아들이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다. 당시 대형교회와 한국 정세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의 출현은 한국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형 교회에도 나타났다. 그 후 오랜 시간을 대형 교회는 권위주의적인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목사 1인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었고, 199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역인 시민들이 교회로 대거 유입됐음에도 이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대형 교회는 시대의 변화를 이끌거나 개혁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교인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데만 신경을 썼다. 해외단기 선교 프로그램의 도입과 미국에서 들여온 번영신학의 정착화, 나아가 자신들의 힘을 정치세력화하는 길에만 관심을 둔채 안주하는데 급급한 실정이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인한 물신주의의 팽배 및 전지구적인 자연 재앙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도 감당못할 두려움 속에 빠져 다시 신을 찾고 있다. 이제 신의 귀환은 필수적이고도 중대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의 신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지 못하는 부자의 신으로 전도돼 버렸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 교회는 웰빙교회로 전환되어 웰빙신앙문화까지도 형성하고 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貧者는 교회에서도 설 자리가 없게 돼 버렸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과 비슷한 궤도를 달리고 있고, 존립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받는 시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웠던 것은 한국 교회가 받는 지탄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만큼 추락한 교회의 위상 때문만도 아니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눈을 감고 외면하는 듯한 한국 교회의 둔감함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오게 된 자리의 의미를 성찰과 반성의 자리로 인식하지 않고 속히 탈피해야만 하는 자리로 한국 교회가 받아들이는 점 때문이었다. 번영신학이란 이름의 외피를 입은 성공지상주의와, 소비사회에서의 여유를 호혜 형식으로 지출하는 작금의 기독교적 삶이 조만간 어떤 모양의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나는 염려스럽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에 미래는 없는가? 김진호는 현재 자신이 행하고 있는 교회적 양식과 삶의 방식을 통해 대안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작은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개별적 만남과 교제의 장을 통해 진짜 기독교적 삶을 몸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소망을 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회개라는 진지한 자기 반성이 아직 한국 교회내에 없었기 때문에 그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와 나약함, 그리고 지독하리만큼 뿌리 깊은 이기적 속성을 도려내는 교회적 방법인 회개, 즉 신앙안에서의 개혁적 태도야말로 출발점이자 궁극적 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신자의 아픔이 세상과 화해하며 소통할 수 있는 다리임을 깨닫게 한, 보이지 않는 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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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한 곤충 친구들 재미있는 곤충 학교 1
우샹민 지음, 샤지안 외 그림, 임국화 옮김, 최재천 외 감수 / 명진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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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엔 흙이 친구였다. 밖에서 놀때 흙 만큼 만만하고 좋은 친구는 없었다. 흙 장난을 하다 지칠 즈음이면 나는 슬슬 땅을 파기 시작했다. 파다보면 그 속에 땅강아지가 들어있곤 했다. 그 녀석이 왜 그리 귀엽게 보이던지 땅강아지만 보면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커가며 흙 만질 일이 없게 되었고, 내가 땅강아지를 좋아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지냈다. 30년도 더 넘은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다 땅강아지를 보게 됐다. 잊혀졌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래, 저렇게 생겼었지. 걸음을 멈춘채 쪼그리고 앉아 땅강아지를 쳐다보는 내 마음이 어느새 촉촉해지고 있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곤충은 내게, 여름이 되면 찾아와 밤잠을 설치게 하고, 반찬 위를 날라다니고, 하루 종일 나무에 붙어 극성스럽게 울어대고, 게다가 병균까지 옮기는 동물에 불과했다. 모기와 똥파리, 바퀴벌레, 그리고 화초에 붙어있는 진딧물등은 없앨 수만 있다면 싹쓸이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곤충을 키우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예뻐할래야 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동물이 곤충이란다. 그러니까 나는 유해곤충을 곤충의 전부라 생각하고는 다른 곤충들까지 속으로 미워했던 거다. 그들이 있어야 결국 내 삶도 자연스럽게 운행되는 건데, 불편을 끼친다는 이기적인 생각 아래 없애려는 마음만 가득했던 거다.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 땅과 생명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적었다는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곤충생태 체험 학습장도 가보고, 곤충이 있으면 쭈그려 앉아 구경도 하며 살펴보았다. 가만히 보니 생명이란 그 자체로도 경이로운 것이었다. 곤충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무르익으려할 즈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큰 기대를 하고 보진 않았다. 재미있어봐야 얼마나 재미있겠나 하고는 별 관심 없이 책을 펼쳤다. 생각 이상이었다.

 

 

 

 

이 책은 곤충들을 등장 인물로 하여, 곤충들이 갖고 있는 생태적 특징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었다. 작가인 우샹민은 중국인 특유의 엉뚱함과 능청스러움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곤충 학교는 중구난방에 좌충우돌, 약육강식이 판치는 곳이었다. 도시락을 안 싸온 학생이 학급의 선생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곳의 책임자인 메뚜기 교장 선생은 그래서 늘 노심초사해야했다. 자신보다 강하고 사나운 학생들 때문에 근심 걱정이 가실 날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딱정벌레반은 가장 흉포스러웠다. 이미 금파리 선생이 먹히고 말았다.

 

 

 

 

새로운 담임으로 앞장다리풍뎅이 선생이 초빙됐다. 얼마나 갈 수 있으련지 메뚜기 교장 선생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엎친데 덮친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인가. 곤충도 아니면서 암늑대거미가 자신의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켜달라며 시위를 벌인다. 거미를 지금껏 곤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거미가 곤충이 아니란다. 좀 놀랬다. 음, 거미는 곤충이 아니구나.

 

 

딱정벌레반 학생들은 살아있는 곤충을 도시락으로 싸오는 친구들이다. 어느 날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도시락으로 싸온 후 맛있게 먹으려다, 늑대거미의 심술로 도시락이 뒤집히게 된다. 진딧물은 다 도망가버렸고 학교는 한바탕 난리가 난다. 그러나 싸움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와중에도 서로 도와가며 지내는 곤충들이 있다. 진딧물과 개미가 그러하다. 도란도란 도와가며 사이좋게 지내는 진딧물과 개미는 떼어놓을 수 없는 좋은 친구다.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사람이 아니, 곤충이 많으면 바람 잘 날이 없다더니, 딱정벌레반의 반장인 무당벌레 빨강점박이가 학교에 오다 새의 습격을 받았다. 늑대거미가 유일한 목격자라는데 아무래도 수상쩍다. 이 기회를 틈타 늑대거미는 반장의 자리에 오른다. 할말은 많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딱정벌레반에는 힘좋은 친구들이 많다. 힘겨루기는 서열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오늘 사슴벌레보다 힘이 세 보이는 장수풍뎅이가 전학을 왔다. 장수풍뎅이를 본 사슴벌레의 눈이 궹하다. 학급의 곤충들과 사슴벌레는 앞으로의 패권이 누구에게 갈지 동시에 짐작한다. 그러나 사슴벌레는 여전히 학교에서 폭력을 행사해 학내 분위기를 어둡게 한다. 교사 회의에서는 제제를 가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사슴벌레는 아무도 없는 교실에 외로이 있다. 그 때 또다른 장수풍뎅이가 다가와 엄청난 소식을 전한다. 자신이 딱정벌레반 친구들을 배고픈 김에 먹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충격으로 사슴벌레는 슬픔에 빠지고 친구의 소중함을 깨달은 후,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학생으로 변하게 된다. 참, 기특한 녀석이다.

 

 

 

 

아이들의 책에서 교육적 측면과 재미의 양립은 도달해야할 목표지만 병립하기 쉽지 않은 요소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균형을 잘 갖추고 있다. 곤충들의 특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중간 중간에 삽화를 넣어 재미를 더했고, 한 챕터가 끝난 후 소개되는 곤충의 그림은 세밀화처럼 명확하고 섬세했다. 또한 그림에 더해진 설명은 생물학적 지식을 제공하는 책으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만개한 봄이 기울고 있다. 며칠만 지나면 초여름이 성큼 다가올 것 같다. 여름을 위해 나무 위의 매미는 기지개를 켜고 있고, 한 철이지만 자기 세상을 맞이하기 위한 곤충들의 분주함은 천지를 조용히 진동할 것이다. 날개를 활짝 핀 채 춤을 추는 나비와,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꿀을 걷어들이는 벌들의 행진, 푸른 가을 하늘을 나는 잠자리의 군무는 오직 곤충만이 보여주는 신비한 아름다움이다. 그것이 소중한 선물임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 나는 다른 시각으로 곤충을 보려 노력한다. 그 시각만큼 내 삶은 여유롭고 풍성해질 것이다. 곤충이 친구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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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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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기점으로 불같던 사랑이 식어지는 아이러니는 인류사 최대의 미스터리다. 이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만들고 말았다. 식장에서 영화속의 주인공인양 행세하던 두 남녀는 단 하루밖에 그 호사가 허용되는지도 모른체, 행복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는 착각 속에 첫발을 내딛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 그남자는 사라지고 없고, 곁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들이 있음을 서로 깨닫게 된다. 이제 남자인간과 여자인간만 남았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불륜이란 자극적인 소재로 글을 엮었다. 그렇다고 말초적인 신경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브랜드 가치는 하락되고 말았을 것이다. '용의자 X의 헌신'만큼은 아니어도 항시 일정 수준은 담보하기에 그의 이름을 믿고 읽어나갔다.

 

'불륜을 저지르는 놈만큼 멍청이는 없다고 생각했다.'라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한다. 40대에 들어선 주인공 와타나베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으로 삶에 대해 대단한 기대가 있지도, 부인에 대해 불만족스런 마음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러던 그에게 비정규직 사원인 나카니시 아키하가 나타난다. 서른이 넘었다는 그녀는 계란형의 자그마한 얼굴에 콧날이 반듯한 고전적인 미인형의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극적인 만남도 없었건만 어찌 된 일인지 둘은 불륜의 사이가 되고 만다. 자신이 불장난을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아내는 낌새를 못챈 것 같고 그는 아내도, 아키하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아키하는 15년 전 자신이 고등학생일 때 집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와타나베에게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비서로 있던 혼조 레이코라는 여성이 아키하의 집 거실에서 칼에 찔린 채 발견되었고,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다름 아닌 아키하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와타나베는 자신을 좇아온 형사와 혼조 레이코의 여동생에 의해 아키하가 그 살인 사건의 용의자이며 사건의 공소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출판사 리뷰


 

자신을 귀찮게 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아키하에게, 와다나베는 아내와 헤어지겠다는 지키기 힘든 말을 덥석 꺼내고 만다. 그 때부터 아키하의 태도가 서서히 달라진다. 이제 대놓고 자신과 시간을 함께 하자는 말을 하며 간간이 공소 시효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녀가 범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와다나베는 마음이 복잡하다. 살인자일지도 모르는 그녀와 생의 나머지를 과연 함께 할 수 있을지 그는 잠이 안온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놓고 암시하며 끝까지 밀어부친다. 공소 시효가 가까워질수록 아키하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갈수록 긴장은 고조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정말 아키하가 맞을까? 공소 시효는 지나도 마음의 시효는 지날 수 없음을 죽은 혼조 레이코의 동생은 말했다. 드디어 그 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시간은 경악을 금치 못할 지난 날을 비웃듯 비춘다.

 

과연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그가 이리 단순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진즉에 알아채야 했다. 표면과 이면이 중첩되며, 누구도 예상못할 진범이 등장한다. 죄는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앗아갔고, 그로 인해 15년의 시간은 의미를 잃은 듯 방황한다. 한번 드러나기 시작한 진실은 봇몰이 터지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다. 이야기는 마지막을 향해 무섭게 달린다. 그런데 갑자기 웬 사람 하나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고백은 와다나베의 오늘과 그의 오늘을 대비시킨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과연 몇 개의 동심원을 준비한 것인가. '새벽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허명이 아니었음을, 또한 될 수도 없음을 알게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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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의 서비스에 사람들이 몰릴까? - 전 세계 일등 서비스 리더들의 고객 모시기 전략
레오나르도 인길레리 & 마이카 솔로몬 지음, 임준영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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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성능의 제품이라면 좀 더 지불하더라도 고객 서비스가 잘 되는 곳의 제품을 고른다. 새로 샀다고 고장 안나라는 법 없으며, 사용하다보면 언젠가는 서비스를 받아야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고객의 불만을 발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 시스템의 확보는 오늘날 기업의 생존까지도 좌우한다. 기업의 이미지는 제품으로도 결정되지만 때론 개별적이고 감정적인 상황에 의해서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제 서비스 전략은 고객 만족을 넘고 고객 감동을 지나, 충성고객의 확보에까지 이르렀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음을 누구나 안다. 그런데 고객 스스로 나팔수가 돼서 회사를 소개하고 자랑하는 충성고객이 된다는 것이 가능할까? 크건 작건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충성고객의 확보야말로 넘어야 할 산이자 풀어야 할 숙제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왜 그들의 서비스에 사람들이 몰릴까?'는 서비스 분야의 탁월한 두 전문가인 레오나르도 인길레리와 마이카 솔로몬이 힘을 합해 만든 책이다. 레오나르도 인길레리는 '고객의 필요를 예측하고 준비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만이 특별한 이익을 창출한다'는 혁신적인 서비스 개념을 기업 경영에 도입해 '말콤 볼드리지 상'을 수상했고, 마이카 솔로몬은 놀라운 서비스 테크닉으로 소형 제조업체를 엔터테인먼트와 테그놀로지 업계의 선도적인 회사로 키워냈다. 이 두 전문가가 의기투합해 펴냈으니 기대해볼 만 하겠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고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대고객 서비스의 기본은 서비스가 아닌 완벽한 제품으로 제품이 좋지 않고서 고객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서비스맨의 마인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위기로만 볼 게 아니라 고객에게 진심을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단다.

 

2장은 고객을 사로잡는 언어적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언어는 고객만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직원들의 언어스타일에 신경을 쓰라 한다. 말의 중요성은 동서양을 불문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는 단순한 말이 아닌 내재된 마음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3장은 실패한 서비스를 성공으로 되돌리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준다. 서비스 실패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라 권유한다. 그러기 위해선 구체적인 행동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땐 진지하게 해야 하는데, 고객은 거짓사과와 사과하는 척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란다. 만약에 고객을 잃게 되면 이는 수익 상실로 직결되므로, 고객 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반드시 피해야 할 비극으로 생각하란다.

 

4장은 등 돌린 고객을 다시 고객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다. 아무리 서비스를 잘한다 해도 모든 고객을 만족시킬 수는 없으므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맞춤형 서비스가 필요하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성공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스템은 단순해야 하며 고객에게 중요한 일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단다. 또한 고객 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는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므로 정보를 요청한다면 정중해야하며, 고객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방식으로는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5장은 고객의 기대를 서비스에 담기 위한 방법을 소개한다. 서비스는 회사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이며, 이는 고객의 기대를 얼마나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단다. 따라서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객을 불편하고 짜증나게 하는 문제는 냉정하게 조사해서 없애버려야 한단다. 그러기 위해선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재량권을 위임하여 일관성 있는 멋진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란다. 그래야 책임자에게까지 가느라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고객의 불만 사항을 빠른 시간내에 해소할 수 있단다. 결국 단골고객을 충성고객으로 바꾸는 것은 고객을 대하는 기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6장은 이런 서비스를 현장에서 담당할 직원을 뽑는 방법에 대해서이다. 업무능력은 훈련 받을 수 있지만 공감하는 마음, 따뜻함,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태도, 팀워크 능력, 성실함등은 훈련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이런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다해도 서비스를 제때에 적합하게 제공하려면 훈련이 필요한데, 이런 훈련의 틀을 짜고 전문성있게 제공하려면 조직의 리더십이 탁월해야 한단다. 따라서 직원들 스스로를 리더가 되게 하는 좋은 리더가 조직내에 있어야 한단다. 결국 좋은 서비스 제공자는 좋은 조직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7장은 인터넷과 관련된 사항을 다루고 있다. 공저자는 인터넷을 양날의 칼로 비유하며, 온라인의 장 단점을 언급한다. 특히 온라인 상거래에 있어서 새로운 모형을 제시한 아마존닷컴의 신속함, 거대함, 엄청난 자본력을 열거한다. 그러나 작은 기업에선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차라리 고객들과 인간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신경을 쓰라 제시한다.

 

8장은 총정리에 가까운 장으로 고객과의 관계를 결정짓는 두 순간을 알려준다. 두 저자는 고객서비스에도 지름길이 있다며, 고객과의 중요한 감정적인 순간에 집중하면 경쟁업체와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귀뜸한다. 환영인사와 작별 인사가 그것인데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인다면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선물할 수 있다한다.

 

세상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을 터이다. 가변적인 감정과 각자마다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유지한 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개인 뿐 아니라 조직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 단골고객을 충성고객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방법들 중에서도 나는 저자가 소개해 준 세스 고딘의 말에 가장 공감한다.

 

'사람들을 존중하며 대우하는 것이 그들의 관심을 얻어내는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는 고객의 관심을 하나의 중요한 자산으로 생각해야하며, 그것은 존중하고 가치있게 여겨야 할 것이지 헛되이 허비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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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게 디자인하기
임나리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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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은 어디를 들어가도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다. 그 곳의 업종이 무엇이든지 간에 인테리어에 신경 쓰지 않고 개점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인테리어가 잘 된 곳에 들어가면 마치 근사한 대접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인테리어는 심미적 효과나 기능적인 공간의 활용 뿐 아니라 사업의 성패까지도 가늠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2006년 초여름, 대치동에 예전부터 꿈꾸었던 조그마한 공간을 가진 적이 있다. 당시 내가 하려던 건 글과 관련된 일이었는데, 컨셉을 명확하게 잡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벌렸다. 장소도 처음엔 목동을 생각했다 대치동으로 가게 됐고, 개원했던 곳도 원래 가려던 곳은 아니었다. 처음 제의가 들어왔던 장소는 내스스로 자신이 없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곳이 가장 적합한 곳이었는데, 그 때는 감당하기 어렵게만 느껴졌다. 분명한 목표도 없이 그간의 이런 저런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 잘 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나는 일을 진행했다.  

 

나만의 철학이 없다보니 오로지 '어떻게 하면 예쁘게 꾸밀까'라는 생각만 했다. 앞선 감각을 보여주고자 일본에 가서 소품도 사오고, 명함과 인쇄물을 제작하기 위해서 공항문구점을 뒤져 귀여운 디자인이 들어간 문구류도 골라왔다. 그래도 뭔가 모자라는 것 같아 백화점을 들르고, 고속버스 터미널 지하 상가도 수시로 갔다. 디자인에 대한 내 방향성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당시 나는 가시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진짜 드러내고 부각시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선택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신경써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일이라 여유 자금도 넉넉치 않았고, 마음도 편치 않았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이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원래 계획도 사람들의 말에 끌려다니면서 내부 공간의 컨셉이 변형되고 말았다. 아기자기하게 꿈을 주는 공간으로 꾸미려했던 내부 공간은 모던한 사무실 분위기가 나게 됐고, 전체적으로 깔끔은 했으나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오픈은 했지만 몇 달 못가 접어야 했다. 그래야 더 이상의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 뒷처리 또한 만만치 않았다. 집기와 물품을 정리하려고 보니 이미 중고가 되어있었다. 헐값에 파느니 차라리 좋은 일 하는 곳에 기증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기증을 했다. 몇 번 써보지도 못한 기기와 각종 집기는 이미 내 손에 없었지만 할부는 계속해서 물어야 했다. 또한 임차인이 들어오지 않아 월세도 계속해서 나갔다. 물론 보증금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대치동의 임대료는 만만치 않았다. 마무리가 될 때까지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세상 물정도 모른채 꿈에만 젖어 경솔했던 나는 내 선택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뤄야 했다.  

 

그 이후 나는 인테리어와 장소라는 공간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야 다음 번에 같은 실수를 하지 리라 여기고는 꾸준히 돌아다녔다. 나중에 내가 다시 하려는 일을 위해서 내 감각을 높여야 했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은 아주 쉽게 읽혔고 재미도 있었다. 또한 작은 가게라는 제목이 부담을 덜어주었다. 나는 큰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우선 큰 것을 잘 꾸려갈 자신이 없고, 그릇도 안될 뿐 아니라, 무엇보다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작다는 말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마치 내 일을 하는 양 마음을 다해 읽었다. 

 

카페 잇

 

이 책은 서울에 있는 디자인이 톡특한 11 곳의 가게를 소개하고 있다. 업종의 종류와 점포의 크기, 컨셉이 다른 다양한 가게들을 보는 맛이 꽤 쏠쏠하다. 맨 앞장에 소개된 '카페 잇'은 13평짜리 점포로, 가정식 밥과 커피를 엮어서 밥을 파는 카페다. 점포가 좁으니만큼 주인장은 동선의 활용에 신경을 썼고,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한의 효율성과 절제미를 살리는 데 주력했단다.

 

카페 잇

 

이 뿐 아니다. '창고 치과'라는 컨셉의 안산에 있는 '이해박는 집'은, 치과가 쇼룸화되는 추세에 반기를 들어 디자인의 기름기를 쏙 뺀 후, 디자인의 기본만 내실있게 살려 개원한 곳이다. 인테리어에 들어가는 경비를 과감하게 줄이고 날 것 그대로의 건물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디자인의 가치가 드러나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단다. 이 곳의 대표 원장인 김영환씨는 '단지 비용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도 마지막까지 소중하게 쓰는 옛 사람들의 지혜를 되새기려한다' 며 자신의 철학을 말한다.

 

이해박는 집

 

이 밖에도 섹시하고 즐거운 안경점을 모토로 하는 '홀릭스'와 4.5평의 초절정 미니 점포인 수제 초콜릿 가게 '비터스윗 나인', 낡은 적산 가옥 2층에 자리한 카페 '데미타스'는 보는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천편 일률적인 안경점에 진보적이고 펑키함과 섹시함까지 가미한 '홀릭스'는 브랜드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비터스윗 나인

 

또한 '비터스윗 나인'은 작은 공간을 기능적으로 활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혁명적으로 알려준다. 이어 '데미타스'는 가게가 꼭 새것들의 행진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강하게 드러내준다. 사용하던 그릇의 편안함과 북유럽풍의 그릇이나 소품이 주는 느낌은 마치 제 집에 있는 듯한 안정감까지 불러온다.

 

데미타스

 

이 외에도 58년된 떡집에 현대적 디자인과 품격을 넣어 새롭게 재탄생한 '호원당'과, 모든 디자인은 주방으로 통한다는 생각으로 점포 중심부에 주방을 두어 고객의 무한 신뢰를 얻어낸 '쿠치나에', 커피를 주인장인 직접 볶는 '전광수 커피 하우스'등은 운영자의 마인드와 철학이 디자인에 어떻게 반영되는 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몇 년전 나는 실패를 경험했고, 그 때 내가 절실히 느낀 것은 아이덴티티와 디자인 감각의 부재함이었다. 분명한 목적의식과 방향성이 결여된 채 벌인 일로 나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손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너무도 준비없이 나섰다는 자책이 견디기 힘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디자인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결국 자신의 표현이었고, 준비된 자에게서만 흘러나올 수 있는 내면의 시각적 이미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단순한 디자인 관련 서적으로 읽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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