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K, 교회를 나가다 - 한국 개신교의 성공과 실패, 그 욕망의 사회학
김진호 지음 / 현암사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아프고도 불편한 책을 읽었다. 근현대 한국사와 맞물린 한국 교회사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었다. 그 아픔의 근간은 내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한국 개신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이 책은 읽는 내내 아픔과 부끄러움의 상반된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기독교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격한 감정을 비추며 야유나 조롱의 방식으로 다루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겁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저자가 타 종교의 신자나 무종교주의자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신학자이면서 목사였다. 나는 준엄한 심판대에 선 자의 심정으로 이 책을 읽어내려갔다.

 

 

 

언젠가부터 한국 교회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믿건, 믿지 않건간에 말이다. 그래서 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러이러한 행동과 사고를 할 것이라는 최소한도의 기대치가 있었다. 게다가 나라의 대통령이 두 분이나 교회 장로였다. 그러나 좀 다르려나 하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위정자 뿐 아니라 사회 각계에 크리스천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태나, 열심히 교회를 다닌다는 교인들의 삶의 양식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회의 병폐는 교회에서도 볼 수 있었고, 세상의 마인드와 가치관은 교회에서도 통용되고 있었다

 

이런 시급하고도 중대한 문제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김진호가 시도했다. 김진호는 개신교가 근대 한국 사회의 형성에 중차대한 역할을 했다며, 개신교를 묻는 일은 한국 사회를 묻는 일과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와 개신교가 서로 어떻게 맞물리며 형성되었는지, 그 얽힘의 과정과 방식에 대한 해석을 김진호는 찬찬히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는 한국 개신교의 지난 역사를, 2부는 작금의 상황을, 3부는 한국 개신교의 미래에 대해 언급한다.

 

김진호는 한국 개신교의 특징으로 '배타성과 성공지상주의, 극우반공과 친미성'을 들고 있다. 이런 특징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개신교가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추적하면 금세 알 수 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파송된 선교사는 90%가 미국인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졌다는 북장로회 소속이었다. 선교사들은 수많은 교육기관을 세우고 운영했으며, 자신들이 속한 교단의 교리를 신자들에게 확고히 주입시켰다. 한편 선교사들이 머무는 교회는 한국인들이 일본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피신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즉 교회가 일종의 치외법권적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1907년에 있었던 평양의 대부흥운동은 조선 기독교의 원체험이 되었고, 배타주의적 신앙관을 제도화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를 선교사들에게 제공했다.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 신사참배로 인해 좌절감과 수치심을 맛보야 했던 기독교인에게 공산주의는 아픔과 증오를 떠넘길 수 있는 안전한 대상이 되었다. 이북에서 월남한 목사들과 신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영락교회는 극우반공의 산실 역할을 하며 한국 교회를 이끌었다. 그러나 불안전한 정국으로 인한 혼란에 채 적응도 못한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이 다가왔고, 전쟁의 상처는 너무도 깊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황폐화 되었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심적 고통 못지않게 먹지 못하는 고통도 컸다. 교회는 이런 빈민들에게 위로를 주었고, 사람들은 신앙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되찾아갔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경제 개발이 되면서 교회는 도시 빈민을 교회 안으로 깊숙이 들이게 된다. 1970년대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이들을 수용하면서 교세를 확장하게 되고, 미국의 대형 교회인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 목사의 번영신학을 받아들이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다. 당시 대형교회와 한국 정세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의 출현은 한국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형 교회에도 나타났다. 그 후 오랜 시간을 대형 교회는 권위주의적인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목사 1인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었고, 199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역인 시민들이 교회로 대거 유입됐음에도 이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대형 교회는 시대의 변화를 이끌거나 개혁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교인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데만 신경을 썼다. 해외단기 선교 프로그램의 도입과 미국에서 들여온 번영신학의 정착화, 나아가 자신들의 힘을 정치세력화하는 길에만 관심을 둔채 안주하는데 급급한 실정이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인한 물신주의의 팽배 및 전지구적인 자연 재앙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도 감당못할 두려움 속에 빠져 다시 신을 찾고 있다. 이제 신의 귀환은 필수적이고도 중대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의 신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지 못하는 부자의 신으로 전도돼 버렸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 교회는 웰빙교회로 전환되어 웰빙신앙문화까지도 형성하고 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貧者는 교회에서도 설 자리가 없게 돼 버렸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과 비슷한 궤도를 달리고 있고, 존립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받는 시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웠던 것은 한국 교회가 받는 지탄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만큼 추락한 교회의 위상 때문만도 아니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눈을 감고 외면하는 듯한 한국 교회의 둔감함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오게 된 자리의 의미를 성찰과 반성의 자리로 인식하지 않고 속히 탈피해야만 하는 자리로 한국 교회가 받아들이는 점 때문이었다. 번영신학이란 이름의 외피를 입은 성공지상주의와, 소비사회에서의 여유를 호혜 형식으로 지출하는 작금의 기독교적 삶이 조만간 어떤 모양의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나는 염려스럽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에 미래는 없는가? 김진호는 현재 자신이 행하고 있는 교회적 양식과 삶의 방식을 통해 대안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작은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개별적 만남과 교제의 장을 통해 진짜 기독교적 삶을 몸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소망을 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회개라는 진지한 자기 반성이 아직 한국 교회내에 없었기 때문에 그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와 나약함, 그리고 지독하리만큼 뿌리 깊은 이기적 속성을 도려내는 교회적 방법인 회개, 즉 신앙안에서의 개혁적 태도야말로 출발점이자 궁극적 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신자의 아픔이 세상과 화해하며 소통할 수 있는 다리임을 깨닫게 한, 보이지 않는 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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