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곤충 친구들 재미있는 곤충 학교 1
우샹민 지음, 샤지안 외 그림, 임국화 옮김, 최재천 외 감수 / 명진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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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어릴 적엔 흙이 친구였다. 밖에서 놀때 흙 만큼 만만하고 좋은 친구는 없었다. 흙 장난을 하다 지칠 즈음이면 나는 슬슬 땅을 파기 시작했다. 파다보면 그 속에 땅강아지가 들어있곤 했다. 그 녀석이 왜 그리 귀엽게 보이던지 땅강아지만 보면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커가며 흙 만질 일이 없게 되었고, 내가 땅강아지를 좋아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지냈다. 30년도 더 넘은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다 땅강아지를 보게 됐다. 잊혀졌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래, 저렇게 생겼었지. 걸음을 멈춘채 쪼그리고 앉아 땅강아지를 쳐다보는 내 마음이 어느새 촉촉해지고 있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곤충은 내게, 여름이 되면 찾아와 밤잠을 설치게 하고, 반찬 위를 날라다니고, 하루 종일 나무에 붙어 극성스럽게 울어대고, 게다가 병균까지 옮기는 동물에 불과했다. 모기와 똥파리, 바퀴벌레, 그리고 화초에 붙어있는 진딧물등은 없앨 수만 있다면 싹쓸이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곤충을 키우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예뻐할래야 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동물이 곤충이란다. 그러니까 나는 유해곤충을 곤충의 전부라 생각하고는 다른 곤충들까지 속으로 미워했던 거다. 그들이 있어야 결국 내 삶도 자연스럽게 운행되는 건데, 불편을 끼친다는 이기적인 생각 아래 없애려는 마음만 가득했던 거다.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 땅과 생명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적었다는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곤충생태 체험 학습장도 가보고, 곤충이 있으면 쭈그려 앉아 구경도 하며 살펴보았다. 가만히 보니 생명이란 그 자체로도 경이로운 것이었다. 곤충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무르익으려할 즈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큰 기대를 하고 보진 않았다. 재미있어봐야 얼마나 재미있겠나 하고는 별 관심 없이 책을 펼쳤다. 생각 이상이었다.

 

 

 

 

이 책은 곤충들을 등장 인물로 하여, 곤충들이 갖고 있는 생태적 특징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었다. 작가인 우샹민은 중국인 특유의 엉뚱함과 능청스러움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곤충 학교는 중구난방에 좌충우돌, 약육강식이 판치는 곳이었다. 도시락을 안 싸온 학생이 학급의 선생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곳의 책임자인 메뚜기 교장 선생은 그래서 늘 노심초사해야했다. 자신보다 강하고 사나운 학생들 때문에 근심 걱정이 가실 날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딱정벌레반은 가장 흉포스러웠다. 이미 금파리 선생이 먹히고 말았다.

 

 

 

 

새로운 담임으로 앞장다리풍뎅이 선생이 초빙됐다. 얼마나 갈 수 있으련지 메뚜기 교장 선생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엎친데 덮친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인가. 곤충도 아니면서 암늑대거미가 자신의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켜달라며 시위를 벌인다. 거미를 지금껏 곤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거미가 곤충이 아니란다. 좀 놀랬다. 음, 거미는 곤충이 아니구나.

 

 

딱정벌레반 학생들은 살아있는 곤충을 도시락으로 싸오는 친구들이다. 어느 날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도시락으로 싸온 후 맛있게 먹으려다, 늑대거미의 심술로 도시락이 뒤집히게 된다. 진딧물은 다 도망가버렸고 학교는 한바탕 난리가 난다. 그러나 싸움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와중에도 서로 도와가며 지내는 곤충들이 있다. 진딧물과 개미가 그러하다. 도란도란 도와가며 사이좋게 지내는 진딧물과 개미는 떼어놓을 수 없는 좋은 친구다.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사람이 아니, 곤충이 많으면 바람 잘 날이 없다더니, 딱정벌레반의 반장인 무당벌레 빨강점박이가 학교에 오다 새의 습격을 받았다. 늑대거미가 유일한 목격자라는데 아무래도 수상쩍다. 이 기회를 틈타 늑대거미는 반장의 자리에 오른다. 할말은 많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딱정벌레반에는 힘좋은 친구들이 많다. 힘겨루기는 서열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오늘 사슴벌레보다 힘이 세 보이는 장수풍뎅이가 전학을 왔다. 장수풍뎅이를 본 사슴벌레의 눈이 궹하다. 학급의 곤충들과 사슴벌레는 앞으로의 패권이 누구에게 갈지 동시에 짐작한다. 그러나 사슴벌레는 여전히 학교에서 폭력을 행사해 학내 분위기를 어둡게 한다. 교사 회의에서는 제제를 가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사슴벌레는 아무도 없는 교실에 외로이 있다. 그 때 또다른 장수풍뎅이가 다가와 엄청난 소식을 전한다. 자신이 딱정벌레반 친구들을 배고픈 김에 먹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충격으로 사슴벌레는 슬픔에 빠지고 친구의 소중함을 깨달은 후,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학생으로 변하게 된다. 참, 기특한 녀석이다.

 

 

 

 

아이들의 책에서 교육적 측면과 재미의 양립은 도달해야할 목표지만 병립하기 쉽지 않은 요소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균형을 잘 갖추고 있다. 곤충들의 특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중간 중간에 삽화를 넣어 재미를 더했고, 한 챕터가 끝난 후 소개되는 곤충의 그림은 세밀화처럼 명확하고 섬세했다. 또한 그림에 더해진 설명은 생물학적 지식을 제공하는 책으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만개한 봄이 기울고 있다. 며칠만 지나면 초여름이 성큼 다가올 것 같다. 여름을 위해 나무 위의 매미는 기지개를 켜고 있고, 한 철이지만 자기 세상을 맞이하기 위한 곤충들의 분주함은 천지를 조용히 진동할 것이다. 날개를 활짝 핀 채 춤을 추는 나비와,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꿀을 걷어들이는 벌들의 행진, 푸른 가을 하늘을 나는 잠자리의 군무는 오직 곤충만이 보여주는 신비한 아름다움이다. 그것이 소중한 선물임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 나는 다른 시각으로 곤충을 보려 노력한다. 그 시각만큼 내 삶은 여유롭고 풍성해질 것이다. 곤충이 친구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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