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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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기점으로 불같던 사랑이 식어지는 아이러니는 인류사 최대의 미스터리다. 이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만들고 말았다. 식장에서 영화속의 주인공인양 행세하던 두 남녀는 단 하루밖에 그 호사가 허용되는지도 모른체, 행복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는 착각 속에 첫발을 내딛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 그남자는 사라지고 없고, 곁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들이 있음을 서로 깨닫게 된다. 이제 남자인간과 여자인간만 남았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불륜이란 자극적인 소재로 글을 엮었다. 그렇다고 말초적인 신경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브랜드 가치는 하락되고 말았을 것이다. '용의자 X의 헌신'만큼은 아니어도 항시 일정 수준은 담보하기에 그의 이름을 믿고 읽어나갔다.

 

'불륜을 저지르는 놈만큼 멍청이는 없다고 생각했다.'라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한다. 40대에 들어선 주인공 와타나베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으로 삶에 대해 대단한 기대가 있지도, 부인에 대해 불만족스런 마음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러던 그에게 비정규직 사원인 나카니시 아키하가 나타난다. 서른이 넘었다는 그녀는 계란형의 자그마한 얼굴에 콧날이 반듯한 고전적인 미인형의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극적인 만남도 없었건만 어찌 된 일인지 둘은 불륜의 사이가 되고 만다. 자신이 불장난을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아내는 낌새를 못챈 것 같고 그는 아내도, 아키하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아키하는 15년 전 자신이 고등학생일 때 집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와타나베에게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비서로 있던 혼조 레이코라는 여성이 아키하의 집 거실에서 칼에 찔린 채 발견되었고,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다름 아닌 아키하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와타나베는 자신을 좇아온 형사와 혼조 레이코의 여동생에 의해 아키하가 그 살인 사건의 용의자이며 사건의 공소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출판사 리뷰


 

자신을 귀찮게 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아키하에게, 와다나베는 아내와 헤어지겠다는 지키기 힘든 말을 덥석 꺼내고 만다. 그 때부터 아키하의 태도가 서서히 달라진다. 이제 대놓고 자신과 시간을 함께 하자는 말을 하며 간간이 공소 시효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녀가 범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와다나베는 마음이 복잡하다. 살인자일지도 모르는 그녀와 생의 나머지를 과연 함께 할 수 있을지 그는 잠이 안온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놓고 암시하며 끝까지 밀어부친다. 공소 시효가 가까워질수록 아키하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갈수록 긴장은 고조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정말 아키하가 맞을까? 공소 시효는 지나도 마음의 시효는 지날 수 없음을 죽은 혼조 레이코의 동생은 말했다. 드디어 그 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시간은 경악을 금치 못할 지난 날을 비웃듯 비춘다.

 

과연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그가 이리 단순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진즉에 알아채야 했다. 표면과 이면이 중첩되며, 누구도 예상못할 진범이 등장한다. 죄는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앗아갔고, 그로 인해 15년의 시간은 의미를 잃은 듯 방황한다. 한번 드러나기 시작한 진실은 봇몰이 터지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다. 이야기는 마지막을 향해 무섭게 달린다. 그런데 갑자기 웬 사람 하나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고백은 와다나베의 오늘과 그의 오늘을 대비시킨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과연 몇 개의 동심원을 준비한 것인가. '새벽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허명이 아니었음을, 또한 될 수도 없음을 알게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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