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드롭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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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더 드롭』 데니스 루헤인 / 황금가지

 전형적인 느와르 소설을 만나다

 

 

 

  '데니스 루헤인'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생소한 듯, 들어본 듯 애매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던 것 같은데, 출간작들을 살펴보니 『셔터 아일랜드』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살인자들의 섬』과 표지가 익숙한『리브 바이 나이트』가 눈에 띕니다. 아마도 추리와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웃님들의 블로그에서 가끔 보았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번에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났습니다. 원래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라는 단편소설이었는데, 개작해서 나온 작품입니다. 아마도 영화화를 목적으로 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이미 다 제작이 되었고, 이번 (2014)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하기도 했더군요.

 

  이야기는 전형적인 느와르입니다. 주인공인 '밥'은 사촌과 함께 술집을 대리 운영하고 있는데, 그 술집 - 드롭 바라고 일컫는 - 은 지역 갱단에게 돈을 전달하는 경로로 사용되는 범죄의 공간이지요. 그러다가 뜬금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개를 발견합니다. 학대를 당한 듯 온몸이 피투성이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밥'의 앞에 우연히 본 나디아라는 여자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 개를 치료하고, 개와 함께 살게 되면서 소설 속 '밥'의 다정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여기까지, 언뜻 불안한 낌새는 없는 것 같지만, 갑자기 자신이 개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나타납니다. 자신이 때렸지만, 자신이 키웠고, 나디아라는 여자의 이름도 들먹거리면서 개를 돌려달라고 하는 거죠. 그 이후에 에릭의 정체와 그와 관련된 사건들을 알아가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밥'의 드롭바에 강도사건이 일어나 그는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됩니다.

 

  범죄가 난무하는 암흑가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그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절망적인 마음은 독백과 행동으로 드러나고 있죠. 범죄 조직과 관련된 삶을 어쩔 수 없이 이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과 갑자기 찾아온 개에게 애정을 붙이는 모습이 묘하게 겹쳐져서 연민의 감정이 들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이상하게, 어렵게 쓰인 작품이 아닌데도 굉장히 몰입하기 힘들었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건조하고, 대화 자체도 남성적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쎄, 뭔가 소설도 앞이 캄캄한 어둠을 걷는 느낌이랄까요. 아예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어서 그런지, 장면 전환이 굉장히 빠르고, 어떠한 행동이나 이유 등이 생략되어 있는 듯, 그런 것들을 집어내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조금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왠지 예전에 읽었던 코맥 매카시의 시나리오 소설 『카운슬러』의 막막함이 떠올랐습니다.

 

 

   

- 그래도 데니스 루헤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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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걸어서 기도처들을 돌았다. 비아 크루시스(Via Crusis), 십자가의 길. 그는 네 번째에 멈췄다. 예수가 어머니를 만났다.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쓴 채 언덕 위로 십자가를 끌고 가던 중, 백부장 둘이 채찍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언제든 채찍을 휘둘러 예수와 성모를 떼어 놓을 심산이다. 이제 예수를 언덕 위로 몰고 가 못 박을 것이다. 그것도 예수 자신이 지고 온 바로 그 십자가에. 저 백부장들은 죽기 전에 참회했을까? 참회가 가능하기는 했을까?

아니면 어떤 죄는 너무 커서 참회조차 불가능할까?

교회는 아니라고 했다. 참회가 진실하다면 하느님께서 용서하신단다. 하지만 교회는 말씀을 전하는 매개에 불과하다. 교회도 종종 오역을 한다. 이 경우, 교회가 틀렸다면, 어떤 자들은 죄악의 무저갱에서 꺼내지 않아야 한다면? 천국이 가치 있는 목표라면, 지옥은 그 두 배의 영혼을 가두어야 한다. (86p)

"누구나 상대한테 얘기하고 싶어 해요. 뭐든 자기 얘기를 하고 또 하고, 하는 거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정체를 보여 줄 때가 되면, 찔끔 움츠리고 말아요. 나디아.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더 많이 떠들어 위장하는 겁니다. 해명이 불가능한 일을 해명하려는 거예요. 그다음엔 다른 사람에 대해 심하게 떠들어 대죠. 도대체 말이 됩니까?" 나디아의 미소가 작아졌다. 호기심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내면으로 숨어든 것이다.

"잘 모르겠어요." 밥은 자신도 모르게 윗입술을 핥았다. 초조할 때의 습관. 나디아를 이해시키고 싶었다. 이해하게 만들어야 했다. 지금껏 뭔가를 이렇게 바랐던 적이 없었건만. (140p)

암울했던 시절, 신념과 희망을 잃고, 밤이면 침대에서 절망과 춤을 추고 씨름을 했다. 그때는 소행성을 스치고 지날 때의 우주선 열차단막처럼 마음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영혼의 조각들이 공중제비를 돌며 우주 저 멀리 날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왔다. 정신도 대부분 옛날로 돌아왔다. 그는 로코와 함께 계단을 오르며 마지막으로 기름 탱크를 돌아보았다. 나를 축복하소서....... 불을 끄자 어둠 속에서 개의 숨소리가 들렸다...... 죄를 지었나이다. (202p)

로코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킁킁거렸다. 좋을 때군, 마브도 없으니...... 하고많은 날 중 하필 오늘, 온 세상이 모래 늪 같았다. 단단한 땅이 하나도 없는, 두 발을 디딜 만큼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자업자득이야 바비. 누군가가 속삭였는데 목소리가 끔찍할 만큼이나 어머니를 닮았다. 네놈이 죄 많은 세상을 끌어들인거야. 저 껍데기 아래는 온통 어둠 뿐이란다.

하지만 어머니?

그래, 말해라.

인생이 그렇게 생겨먹은걸요. 그저 다른 세상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에요. 지금이야 여기 사는 수밖에요.

타락한 자들이 다 그렇게 말하지. 세상이 생긴 이후로 내내 그렇게 말했어. (2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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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경 - 우리는 통일을 이룬 적이 있었다
손정미 지음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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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경』 손정미 / 샘터

 통일을 이루었던 신라의 수도, 그 곳에서 벌어졌던 이야기

 

 

   연표로 되어 있는 기록과 정부의 제도 따위를 달달 외우던 기억이 나는 역사 공부, 특히나 삼국시대에 대한 관심은 정말 적었다. 범위가 참 광범위하다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뭔가 아득히 먼일 같기도 해서 참 와 닿지 않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비어있는 지식의 공백을 조금 채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왕경』의 시작은, "삼국 중 가장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대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다. 단 한 번도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못했던 질문이지만, 현재의 우리가 존재함에 굉장히 큰 작용을 했을지도 모르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청춘들을 등장시켜 풀어내는 그 당시의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롭다. 고구려에서 가장 강한 자를 뽑는 시합 이후 음모를 통해 신라의 포로로 가게 된 고구려 소년 '진수', 숙부와 함께 신라에 잠입한 백제의 소녀 '정', 그리고 신라의 화랑 '김유'가 신라의 수도인 '왕경'에 모여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삼국의 젊은이들이 한곳에 모여 각자의 사정과 야망에 대해 꿈을 품고 있다는 상황이 극적이지만, '혹시나' 이런 상황이 정말 있지는 않았을까 하고 상상하게 된다. 젊은 나이에 큰 짐을 짊어져야 했고, 그렇게 우연히 적으로 만난 그들의 인연이 조금은 안타까웠지만, 정말 이렇게 다양한 국가에 섞여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적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도 해본다.

  역사도 있고, 사랑도 있고, 시대의 고민도 있고, 반전도 있었다. 그저 역사적인 사실로만 여겼던 놀라운 '통일'에 대하여 파고들어 궁금증을 주었다. 통일 직전의 상황을 굉장히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 꼼꼼하기 그지없는 책이었고, 신라 화랑의 일상과 세계의 상업을 연결하던 실크로드, 당시 왕정의 상황, 지식의 욕심으로 파고들던 서책들까지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특히나 서역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방대한 산업의 발전이 놀랍게 느껴졌다.

  ​그러나 너무나 판을 많이 벌인 느낌이랄까. 탄탄한 역사적 사실과 신라의 수도 '왕경'의 매력이 거하게 다뤄진 책의 내용이 한 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주인공들의 상황을 완벽하게 해결할 시간과 분량이 조금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 뚝 끊기는 느낌에 조금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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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는 술잔에 뜬 달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한 곡조 들어보자."

바람이 물결을 깨우는 경포호에 피리 소리가 감아들 듯 울려 퍼졌다. 달빛을 튕기듯 피리 소리가 청아하게 울리자 김유의 가슴이 에이는 듯했다.

얼굴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계집이 겁도 없이. 달빛 아래 구름처럼 흐르던 하얀 가슴이 떠올랐다.

김유가 두 손으로 어깨를 내리누르며 눈을 쏘아보았지만 계집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눈빛으로 받아쳤다.

그 순간 정과 김유의 사이에는 번개 같은 강한 전율이 순식간에 관통했다. 이 세상의 모든 기운이 응축돼 창처럼 날카롭고 강하게 두 사람을 꿰뚫고 지나갔다. 순간 김유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우주의 어느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주 공간으로 퍼져 나간 듯했다. 밤하늘의 모든 별들이 쏟아져 내린 뒤 온통 휘감는 체험이었다.

눈앞의 경포호가 흔들리고 있었다. 달빛 아래 연주는 멈추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100p)


고구려, 백제군이 언제 쳐들어올지 몰랐고 그땐 언제든지 말을 몰아 전장에 나가야 했다. 백제 의자왕이 왕위에 오른 뒤로는 계림을 위협하는 일이 많아졌고 전투가 벌어지면 귀공자들이 앞장서야 했다. 아버지를 잃고 형을 잃은 자가 한둘이 아니었고 언제 자신의 차례가 될지 몰랐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포로를 노비로 받고 녹읍을 하사받지만 패장이 되면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비겁하게 굴복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왕경의 싸늘한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부모는 그런 자식을 보지 않았고 철저하게 따돌림을 당했다. 시종들마저 우습게 보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전장에 나가선 죽기 살기로 싸워 이겨야 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귀공자들에겐 오늘 하루 이 밤이 소중했다. (143p)

곡강의 바람이 김유에게 속삭였다. `저 아이가 몰래 요초 (먹으면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노란 꽃)를 먹인 게 틀림없어.`

진수는 정을 쳐다보는 김유의 눈길을 느끼자 무엇에 찔린 듯했다.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 왕경에서 죽일 듯 달려들던 김유의 얼굴과 표정이 아니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진수는 혼자 술병을 거의 다 비우고 있었다. 꽤 독하다는 술이었는데도 취하지 않았다.

`견당사나 숙위를 처단하면 평양에 돌아가서도 공을 치하받을 거야. 허물이 있다면 용서받을 거고.`

정은 갑자기 말할 수 없이 목이 타 남은 술을 마셔버렸다. 울적한 마음을 술에 태우고 싶었다. 술기운에 머리가 무거웠지만 나쁘지 않았다.

뭇 계집의 눈길을 받은 진수가 눈앞에 있다. 진수가 갑자기 냉랭해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무슨일일까?

`곡강이 눈앞에 있는데 무슨 잡생각이야. 시인들이 읊었던 곡강이라구. 지금은 즐길 때야.`

세 사람의 눈빛은 각기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 위로 곡강의 물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2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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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4.12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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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샘터』 2014년 12월호 : 벌써, 한 해를 맺는 달입니다.

  

 

  역시나, 각 달에 붙는 예쁜 이름을 얘기하지 않고는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12월은 맺음달. 12월에는 경건하고 행복감을 듬뿍 담는 크리스마스가 있기도 하지만, 제가 태어난 달이기도 하여 왠지 모르게 기분이 싱숭생숭한 달입니다. 언제부턴가 생일이란 것에 대해 별 감흥이 없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니 탄생, 시작이라는 의미의 생일이 12월에 있다는 건 참 재밌는 일인 것 같다고도 생각됩니다. 한 해를 맺는 끝, 12월이, 삶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요. 한해의 쳇바퀴가 돈다면 1월을 처음 디딤으로 할지, 12월을 처음 디딤으로 할지 묘하게 고민되기도 하겠다고 문득, 떠올리게 되네요.

 

 

   이번 달엔, 맺음달이라는 12월과의 일치인지, '끝'과 '소멸', '부존재'와 관련한 글들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책들을 낭독하는 팟캐스트의 <네시이십분>. 팟캐스트를 들어볼까 해서 휴대폰 앱으로, 역시 책에 관한 팟캐스트를 검색해본 적이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참 책을 안 읽는다'는 통계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코너들이 많던지요. 아무래도 유명 출판사나 인물의 이름이 붙은 것들은 눈에 딱 보이는데, 쭉쭉 내려 지나쳐간 곳에 <네시이십분>이라는 코너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책을 말하는 팟캐스트라니, 정말 멋지지요.

  두 번째로 <흔적 찾는 여자 흔적 지우는 남자> 코너의 '그래도 죽음 곁을 지키리라'는 글. 범죄현장, 고독사, 자살 등의 특수 현장 전문 청소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김석훈 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남아있는 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남들이 꺼리는 일을 나서는 이 분의 삶이 참 존경스러움을 넘어서 경외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현장을 갔다 오면 우울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계속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에 자신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일본의 미술가인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이전에 잠깐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는데, 이 사진을 보고선 조금 달라졌습니다. <소멸의 방>이라고 이름 붙은 이 작품은 원래 전체가 백색인 방이었는데, 관객들이 하나씩 붙인 스티커로 이런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이 방은 원래 고요한 백색의 세상이었을 것이다. 새해 첫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처럼 말이다. (...) 일상의 모든 것이 어떤 기대와 예감 속에 희게 빛났을 것이다. 하지만 스티커가 하나둘 붙여지는 동안 방은 원래의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나쁘지만은 않다."며 시간의 캔버스를 채우고 있다는 우리 삶을 표현하는 나희덕 시인의 글이 참 공감이 갑니다.

 

 

 

   면사무소에 작은 목욕탕이 딸려있다는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공공건축의 대가인, 정기용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라고 하는데, 이 작고 협소한 목욕탕 때문에 다른 마을에서 원정대가 생길 정도라고 하네요. "건축이란 누가 지었나 보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그의 신념"을 가득 품은 장소에 마음 한편이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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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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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겠다』 김탁환 / 다산책방

읽었었고, 읽고 있고, 역시나 읽어가겠죠

 

 

  '읽어가겠다'라는 제목이 참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고,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소개하고 있으면서도, '읽어가겠다'하는 미래적 포부를 강조하는 제목을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마치 과거에 책과 함께 했고, 지금도 책을 읽고 있으며, 언제까지나 좋은 책을 만나리라는 생각을 비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특이하고도 공감이 팍팍 가는 이 책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혹은 너무나 많이) 만나봤을 법한 책 에세이입니다. 이런 책들을 읽는 데에 장점과 단점이 혼재하고 있지요. 먼저, 장점은 제목만 들어봤거나 관심도 안 가던 책에 갑자기 확-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겠고, 단점은 책 위시리스트가 늘어나 지갑이 온통 털리는 것이지요!

 

  특히나 작가가 읽는 책이라면, 작가의 젊음을 지배하고 있었던 책이라면, 더욱더 관심이 가기 마련입니다. 책을 읽는 누구나 오래전에 읽었던 책들은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김탁환 작가에게도 이런 책들이 역시 있었겠죠. "세월과 함께 몇 개의 장면과 몇 토막의 문장만 남았지요. (...) 이토록 멋진 소설을 왜 까맣게 잊었던 걸까?"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이 갑니다. 인간의 기억력은 너무나 한정적이어서, 너무나 멋진 책을 읽어도, 책을 읽고 서평을 남겨도 전체적으로보다는 부분적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게 되잖아요. 나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토록 멋진 소설을 왜 까맣게 잊었던 걸까?"라는 말에, 오래전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읽어가겠다』를 읽다 보면 마치 라디오를 듣는 듯한 다정한 말투가 눈에 띄는데, 역시나 이 책은 김탁환 작가가 《책하고 놀자》라는 라디오 코너에서 소개되었던 작품들을 골라 엮어놓은 책이었습니다. 150권이 넘는 책들 중에서 작가의 사심으로 뽑은 책들이기에, 어떤 책들이 걸렸을까 참으로 궁금해졌는데요. 역시나 세계문학 고전들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제가 너무나도 사랑해 마지않는 헤르만 헤세의 책 『크눌프』가 처음으로 등장해 소리 없는 환호를 질렀고, 너무나 유명한『자기 앞의 생』을 다른 식으로 읽어낼 수 있음에 놀랐고, 간단하게 설명한『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소설에 완전히 압도되어 위시리스트에 넣어두었고, 아직 읽지 않았지만 제목 그 자체에 매력을 느껴 책장에 고이 꽂아둔 『아름다운 애너벨 리 ...』가 나와서 조만간 꼭 읽어보리라는 작은 다짐을 했답니다.

 

 

 이미 넘쳐나는 책 위시리스트에 또 한 번 넘치게 담아버렸지만, 작가가 읽은 책들에서 받은 감동이 전해지고 그 감동이 새로운 책에 대한 큰 기대로 바뀌니, 이런 책 에세이는 보고 또 봐도 너무나 만족스럽습니다. 책 설명, 느낌으로 구성되는 공통적인 형식이지만, 항상 좋은 책들을 채워주고 그보다 높은 가치를 선물해주니 계속해서 책 에세이를 읽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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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습니다. 먼저 그는 계속 비행 이야기만 합니다. 『어린 왕자』든 『사람들의 땅』이든 『야간비행』이든 비행하는 이야기만 줄기차게 반복하는 것이죠. 언젠가 사석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불문학 전공자인 성균관대 정지용 교수는 이렇게 설명을 덧붙이더군요.

대부분의 작가들은 차이를 계속 만들고자 하지만 비슷한 작품 세계를 반복하는데, 생텍쥐페리는 반복을 계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차이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작가다. 맞는 것 같은가요? 이런 경향 때문에 생텍쥐페리의 작품들에서는 늘 비행기가 나오고 사막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땅이 나오고 별이 나오고 조종사가 나옵니다. (51p, 남방우편기)

아니 에르노는 학교에서 할 법한 것들을 어머니와 공모하여 즐겼으며 아버지는 이 즐김에서 제외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과 너무 다른 아버지, 자신과 닮으려고 노력하는 어머니를 보며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이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니 에르노의 삶과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한 여자』에는 두 가지 시공간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어머니가 살아온 삶의 시공간, 또 하나는 죽은 어머니를 추억하며 작가가 보내는 시공간이겠지요. 작가가 일부러 알리지 않는 이상, 독자들은 그 작가가 출간 전에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104p, 한 여자)

수용소에선 가스실로 가는 죄수의 마지막 저녁엔 죽을 두 그릇 줍니다. 배 불리 먹고 죽으러 가란 뜻이겠죠. 그런데 배급하는 죄수가 한 그릇만 줬고, 치글러는 이것 때문에 심하게 싸웁니다. 그리고 끝내 두 그릇을 받아내지요. 그렇게 치글러를 비롯한 내일 죽을 죄수들이 마지막 죽을 먹는데 쿤이라는 늙은이는 자신의 서류가 오른쪽으로 던져진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내일 죽을 죄수 옆에서 어떻게 자신이 살아난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신에게 올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할 짓일까요.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신이라면 쿤의 기도를 땅에 내동댕이쳤을 것이다." (168p, 이것이 인간인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소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칼 같은 소설입니다. 갈등을 계속 증폭시켜 어느 순간 폭발하는 소설이지요. 쿤데라의 소설은 김밥 같은 소설입니다. 끊임없이 인물과 사건을 둘둘 말지요. 말다보면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불멸』도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지요. 시작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불멸』은 A로도 해석될 수 있고 B로도 해석될 수 있고 C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소설가들은 종종 방에 누워 빈둥거리면서 이런 구상을 하지만 정말 쓰는 건 어렵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마는 것 같지만, 소설가는 적어도 이렇게 말려들어가는 이야기의 효과와 의미를 알아야 하니까요. (216p, 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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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
필립 클로델 지음, 심하은 옮김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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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필립 클로델 / 샘터

 냄새로 추억과 순간을 회상하다

 

 

 

   누구에게나 후각으로 기억하는 장면들과 사물들이 있게 마련이다. 향기 (혹은 냄새)와 추억을 연결해 생각한다면, 아마도 각자 나름의 그림이 그려지겠지. 나는 엄마가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끓이던 날에 현관 앞에까지 고소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풍겨왔던 기억을, 무더운 여름에 먼지 풀풀 날리는 에어컨을 부모님이 청소하고 나서 전원을 켜면 바람이 나오는 그 앞에서 얼굴을 들이밀고 바람 냄새를 맡았던 기억을, 캠핑을 자주 가던 아주 어렸을 때에 산속의 계곡에서 끓여먹던 라면 냄새와 물 냄새가 섞여 후각을 북돋았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회상한다. 생각해보면 아주 사소하고 별것 아닌 장면들이지만, 그 냄새와 이미지가 무척이나 강렬하여 절대로 잊히진 않을 것만 같다.

 

  영화감독이자 많은 소설을 펴낸 프랑스의 작가 '필립 클로델'이 새롭게 선보인 이번 책, 『향기 자신이 기억하는 향기와 추억의 이미지를 듬뿍 담아낸 공감각적 산문집이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고, 후각으로만 기억하는 추억들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있는데, 자신이 선택한 '추억'과 '향기'의 키워드를 토대로 짧은 이야기들을 적어내고 있다. 조금 별난 점은, '향기'라고 언급했을 때의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깨뜨린다는 점이다. '향기'라고 한다면, 보통은 '특히 좋은 냄새'를 표방하고 있는데, 필립 클로델은 그러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 절대 '향기'라고 부를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물들과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사체, 집, 오토바이 엔진, 타르, 그리고 죽음까지, 다소 충격적이고 독특한 향연을 펼쳐내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추억을 상기시키도록 '향기'가 도와주고 있고, 어디에나 있을법한 공간들도 향기를 통해 그 틀을 만든다. '영화감독'이란 특별한 직업이 주는 이점일까, 『향기』를 표현하는 필립 클로델의 글은 마치 영상을 보는 듯 풍부하고 묘사적이다. 사용한 어휘들이나 구체적으로 표현해낸 사물들도 어찌나 다양한지. 향기로 기억하는 순간들을 이렇듯 멋지게 표현해냈다는 점에서는 정말 경탄할 만하다. 하지만 작가의 특성인지,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리는 듯한 서술 때문인지, 조금은 간단하고 건조하게 표현되는 글들에 특별히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소재들을 통하여 세상의 공기에 섞이고 있는 '향기'​들을 상상하면서 읽다가도, 그만의 넘치는 감성을 뒤따를 수 없었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다채로운 '향기'에 관한 이야기는 또한, 독자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는 특별한 '향기'들을 펼쳐놓게 만든다. "내가 좋아했던 향기는 뭐였지", "그때 풍겨 나오던 향기는 어떤 향기였지." 하고 말이다. 그리고 추억을 상기시키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이 책은 작가에게도 무척 의미가 깊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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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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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한 푸른 풀, 적갈색 대지, 노래하는 무수한 것들.

그리고 갑자기 죽음에 부딪힌다. 머리 아픈 죽음. 달콤한 죽음. 동물의 죽음. 끔찍한 죽음.

끔찍함, 아마도 실상은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실패한 죽음이랄까. 잘못 저어 냄비 바닥에 고기 한 점이 가라앉아 익힌 스튜 요리 같다. 종종 냄새로만 그친다. 짐승의 사체는 찾을 수가 없다. 냄새가 나는 건 환영일까, 아니면 우리의 두려움일까? (62p, 사체)

내가 들이마시는 것은 깨끗이 빤 천 냄새만이 아니다. 야생적이고 광대한, 대지와 바람의 지형도, 내가 읽고 보았던 이야기와 우화와 노래와 이미지의 무한한 연장의 냄새, 지붕 아래, 할머니들과 이모할머니들이 옛날에 참을성 있는 바느질로 꽃과 곡선과 아라베스크로 장식했던새 시트가 팽팽히 당겨져 씌워진 이 침대, 잠의 첫걸음 속에서 안심하고 쉬는 천상의 여행자. 적어도 한순간은 보호받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처받기 쉬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냄새다. (100p, 새 시트)

일용잡화점은 일종의 잔재다. 잡화상은 그 시대의 생존자다. 그곳은 특히 피부, 나무, 철, 가죽, 놋쇠, 타일, 유리창 같이 더러워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씻어낼 도구 혹은 수도 배관, 하수구, 화장실같이 막힐 수 있는 모든 것을 뚫을 도구를 찾을 수 있는 안성맞춤의 장소다. 분말, 페인트, 용매, 용제, 연마제, 비누나 액체 비누, 독극물, 비료, 제초제, 고엽제, 쥐약, 질산염, 황산염, 염소산염, 가성소다, 생석회, 니스, 유약, 타르, 유향등 여기 있는 건 그 무엇도 먹을 수 없다. 게임을 뜨고자 하는 절망한 노름꾼들을 제외하고는. (103p, 잡화점)

현재의 우리 또는 과거의 우리에 대해, 깊이 잠든 어린아이의 살냄새만큼 더 잘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침대 속에서 입을 반쯤 벌린 채 두려움도 공포도 전율도 없이 쉬고 있는 어린아이는 우리가 늘 가까이 붙어 어둠을 쫓고, 흩뜨리고 필요하다면 그 어둠을 부정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08p, 잠든 아이)

글자 하나가 하나의 냄새를, 동사 하나가 하나의 향기를 품고 있다. 단어 하나가 기억 속에 어떤 장소와 그곳의 향기를 퍼뜨린다. 그리고 알파벳과 추억이 우연히 결합하여 조금씩 직조되는 텍스트는, 꿈꾸는 삶과 지나온 삶과 다가올 삼으로 우리를 차례로 안내하는 경이로운 강물이 되어 흘러간다. 수천 갈래로 갈라지며 향기를 뿜으며. (271p,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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