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 -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기 위하여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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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한 리듬으로 살다가 온몸으로 편안하게 늘어질 수 있는 시간이 오면 마침내 긴 호흡을 들이쉴 수 있다.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함 없이 어딘가로 정처 없이 걸을 수 있는 건, 온종일 시간이 비워진 주말의 특권이다. 계산적으로 짧게 쪼개진 일상의 호흡이 조금 느려진다. 시야 또한 넓어져 미처 보지 못했던 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잿빛 안개가 씌워져 있던 산과 건물은 어제보다 오늘 더 또렷해졌다. 재빠르게 날지 않고 종종거리며 걷는 참새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천의 흐르는 물속에서 물고기를 낚아채는 새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2019년 1월, 시인의 타계 소식을 듣고 책장 속에 꽂혀 있던 두 권의 책을 다시금 꺼내 보았다. 국내에 출간된 책은 단 두 권 뿐이라 아쉬워하다가, 연말이 돼서야 출간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기 위하여’라는 담백한 부제는 작가의 이름에 퍽 잘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그가 말하는 ‘시’는 조금 다른 면모로 다가오는 듯 느껴진다. 세상의 수많은 시인들에게 ‘삶=시’라는 명제는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메리 올리버의 삶엔 다른 하나가 더해진다. 삶과 시, 그리고 자연.

때로는 광각렌즈에 투영된 장면처럼 넓은 우주를 바라보면서도, 때로는 작고 작은, 좁디좁은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다시금 뚫어지게 바라보며 사랑을 느끼니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무한대로 넓어진다. 시인은 자연을 위대한 조언자로 칭하며 구름과 바다, 돌고래, 지렁이의 움직임, 나방의 날개와 같은 것들을 본다. 수많은 종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자연의 생물들이 사냥을 하고 굶주리고 잡아먹히는, 그렇게 만들어진 생태계를 관찰한다. 어쩌면 소박하지만 어쩌면 너무나도 위대한 것들을 보며 생각한다. “그리하여 처음에 세상이 온다. 그다음엔 문학, 다음으로 연필이 천 마일의 종이 위를 움직여 해낼 수 있는(어쩌면, 가끔) 것은 무엇인가.(52쪽)” 누군가에겐 외면을 당하고 짓밟히거나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시와 자연은 그에게 같은 의미인 것 같다.

“인간과 호랑이, 호랑이와 참나리가 다르면서도 얼마나 흡사한지 보라! 우리 모두 몇 번의 여름, 여기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가 끌어모을 수 있는 육체적, 지적 능란함으로 우리 상태를 개선시키고 그런 뒤에 조용히 풀밭으로, 죽음의 초록 구름으로 물러나지 않는가? 그 무엇이 솟아나면서, 사라져가면서 귀엽거나 매력적일 수 있는가? 삶은 나이아가라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풀잎 한 줄기의 지배자도 되지 않을 것이며 그 자매가 될 것이다. 나는 풀 위로 머리를 내민 백합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내 심장의 줄기로부터 즐거운 인사를 보낸다. 우리는 한 나라, 한 가정에 살고 있으며 한 램프에서 불타오른다. 모두가 야성적이고, 용감하고, 경이롭다. 우리는 아무도 귀엽지 않다.” (118쪽)

귀엽다는 말은 오락거리로 대체되거나 위엄을 잃고 누군가에 의해 소유될 수 있다는 시인의 우려 섞인 말을 들으며, 세상을 편리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짓밟힌 것들을 생각한다. 오랜 세월을 굳건히 지켜낸 강인한 모든 존재들을, 우리는 너무 손쉽게 망가뜨리고 있진 않은지.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금세 바쁜 일상 속에 흐려지곤 한다. 이렇듯 모순된 모습을 보이는 인간들 속에 “나는 풀잎 한 줄기의 지배자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는 시인과 같은 사람이 존재하고 존재했다는 것은 또한 너무나 경이로운 일이 아닌가. 시인처럼 살지 못해서, 나는 가끔씩 그의 책을 넘기며 마음을 조금씩 가다듬는다. 작은 하나라도 지켜보자는 다짐으로 심란해진 마음을 달래본다.

삶은 더 이상 기쁨과 용맹 속에서 발현되지 않고, 오직 세속적 재물 축적의 도구로만 이용된다. 시가 그런 사람들에게 의미를 지니려면, 그들이 먼저 발걸음을 떼어야 한다. 물질에 구속된 사리추구적 삶에서 벗어나 나무들을 향해, 폭포들을 향해 걸어야 한다. 시를 읽는 사람들이 너무 적은 것은, 이 겁에 질리고 돈을 사랑하는 세상에서 시의 영향력이 너무도 미미한 것은, 시의 잘못이 아니다. 결국 시는 기적이 아니다. 개인적 순간들을 형식화(의식화)하여 그 순간들의 초월적 효과를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시는 우리 종의 노래다. "세상의 종말은 영원히 오고 있지 않는가?" - P42

첫 번째 축복인 자연계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자연은 아름다움과 흥미로움, 신비로 가득했고 행운과 불운을 있었지만 남용은 없었다. 두 번재 축복인 문학의 세계는 형식의 즐거움을 준 것 외에도 감정이입(키츠가 부정적 능력이라고 부른 것의 첫 단계)이라는 자양분을 제공했고, 나는 그걸 향해 달려갔다. 나는 그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기꺼이, 기쁘게 모든 것―다른 사람들, 나무들, 구름들―의 대역을 맡았다. 그로 인해 다름 속에 서게 되면서, 세상의 다름은 혼란의 해독제임을 깨달았다. 바깥의 들판이나 책 속 깊은 곳에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신비가, 최악의 아픔을 겪은 마음에 고귀함을 되찾아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 P45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을 그리는 것과도 같다. 어떤 별들이 누락되거나, 잘못된 자리에 놓이거나, 잘못 해석되거나,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나는 밀레이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반 바구니쯤 되는 양일까? 누구든 타인의 삶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을가? 우리는 그러기를 희망해야 한다. 하지만 위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무서운 일이다. 밤이 어둡다. 나는 가공할 힘을 지닌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한밤중의 전화벨 소리, 이해되거나 오해될 열정적인 말들을 듣는다. 나는 심장이 몸의 문간에서 긴 돌계단을 내려가 홀로 이 세상에서 나가는 걸 느낀다. - P115

‘귀엽다’ ‘매력적이다’ ‘사랑스럽다’ 같은 말들은 잘못됐다. 그런 식으로 지각되는 것들은 위엄과 권위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귀여운 것은 오락거리로 대체 가능하다. 말들은 우리를 이끌고 우리는 따라간다. 귀여운 것은 조그마하고, 무력하고, 포획할 수 있고, 길들일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다. 그 모든 게 실수다. 우리 발치에는 양치식물들이 있다. 그것들은 인간 종족이 어디에도 없고 전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던 때에 최초의 이름 없는,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바다의 무시무시한 여울 속에서 거칠고 결연하게 자라났다. 우리는 그것들을 예쁘고, 섬세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우리의 정원으로 가져온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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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냄새
박윤선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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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할머니 댁에 다녀오는 길이면 어릴 적 살던 동네가 보였다. 마을버스를 타고 지나치던 고가 밑 도로, 동생을 데리러 가던 어린이집, 초등학교로 가는 표지판들을 깊숙이 살펴보지 않고 늘 스쳐가곤 했다. 몇 미터만 가면 그때를 추억할 수 있는 풍경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애써 발길 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분명히 느껴지는 노스탤지어와 웃음 지을 수 있는 추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 오랜 시간 동안 직접 가까이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내가 옛날 동네에 들어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어, 저기다. 한번 가볼까? 오랜 추억을 함께 갖고 있는 언니와 즉흥적으로 핸들을 돌렸던 것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에 걷던 골목을 자동차의 속도로 스쳐갔다. 너무나 많이 변했고, 너무나 그대로였다. 셀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을 정리하기엔 버거웠다. 감정뿐일까. 그곳의 냄새도 기억한다. 바람도, 공기도. 그러나 완전히 행복한 기억만 떠오르지 않는다. 좋고 나쁜 분위기가 언뜻언뜻 떠오른다.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머뭇거리게 되는 어린 시절의 냄새는 시원하면서도 비릿한 수영장의 냄새와 닮았다. 시퍼런 책표지에 마음이 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민선의 하루를 그린 만화. 책은 ‘수영장’의 차갑고 비릿한 냄새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의 맞벌이, 늘 자신보다 뛰어났던 친언니, 친구들의 은근한 놀림과 조소,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을 보내는 민선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불가능할 듯한 익사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39쪽)
“분명히 다들 나처럼 불편해하면서 모두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127쪽)

조금 불쾌한 일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듯하지만 주인공 민선이 툭 던지는 말속에는 뼈가 숨어 있다. 어린이였다면 알지 못했을 뼈의 존재도, 어른이 된 내겐 분명하게 보인다.


민선의 하루는 책의 마지막, 세월을 건너뛴다. 동네의 작은 수영장은 어느새 큰 공간으로 확대된다. ‘가능한 손끝으로 입수하고, 가능한 오래, 물 안에서 머무른다.’ 차가운 물은 금세 적응된다. 물에서 빠져나오기까지 그 차가움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간다. 차가워지고 식기를 반복하고, 그렇게 수많은 민선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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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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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책을 시작할 땐 마음이 편안하다. 부담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집중력,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온다. 추리력, 사실을 검증하고 정체를 밝히려는 호기심 또한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런 것은 팩트고 저런 것은 거짓이다,라는 명제는 던져두자. 왜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고 따지지도 말자. 오로지 필요한 것을 하나만 정하라면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 아는 사랑의 감정,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될 것이다.

아, 그런데 이쯤에서 약간의 실수를 한 것 같다.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에서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야 한다. 조금이 아니라 우주적으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 아니면 무언가쯤으로 말해야 할까. 등장인물은 자그마치 외계인이다. 게다가 권태기가 와 떠나버린 전남친의 몸을 빌려 변신했다. 여러 의미로 괴상망측한 존재인 외계인은 주인공 ‘한아’를 이용하거나 농락하러 온 것이 아니다. 단지 지구 저편에서 바라본 한아의 모습이 놀랍도록 사랑스러웠을 뿐. 세계를 파괴하기를 넘어 서로를 파괴하기까지 하는 인간들의 모습 속에서, 함께 공존하는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며 살아가던 한아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띄었던 모양이다. 한아의 삶의 방식은 그의 직업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환생’이라는 빈티지 샵을 운영하며, 누군가의 삶이 맞닿은 옷들을 섬세하게 살펴 추억을 보존한 채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소설 속에는 주인공 한아를 비롯해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등장한다. 지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사람들 속에서 지구를 살리려 노력해보는 사람, 더 넓은 세상이 궁금해 마땅히 도전을 감행하는 사람, 나만의 영원한 우상을 위해 평생을 사는 사람, 지구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면 유별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누구도 그들을 나무랄 권리는 없으니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소설 속에 가득 담겨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 왜 경민이 얼굴로 왔어? 물론 처음에 널 봤으면 꽤 놀랐겠지만…… 정우성 얼굴로 올 수도 있었잖아!”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력도 물론이지만, 정세랑 식 유머는 작가의 책을 계속해서 읽게 되는 데 한몫을 한다. 현실에서 전혀 일어날 수 없을 법한 일들을 재치 있게 펼쳐나가는 뻔뻔함에 되려 기분이 좋아진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소설. 요즘 이런 소설은 정말 많지 않다. 비슷한 온도와 가득 힘을 준 문장들로 개성을 찾기 힘든 한국 문학 속에서 일관성 있게 자신만의 문학을 밀고 나가는 정세랑 작가는 한아의 모습과 닮아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왜 너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 끝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전한 절대 명제,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역사상 가장 오래 되풀이된 거짓말 중 하나일 거라고 주영은 생각했다. 세계를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어찌되었건 내가 본 너는 엄청나게 일관된 사람으로, 혼자 엔트로피와 싸우고 있는 거 같았어. 파괴적인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 너는 비오는 날 보도블록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래를 형제자매로 생각했어. 땅 위의 작은 생물과 물속의 커다란 생물까지 너와 이어지지 않은 개체는 없다는 걸, 넌 우주를 모르고 지구 위에서도 아주 좁은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이해하고 있었어. 나는 너의 그 선험적 이해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나 때문이 아니었어. 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던 거야. 다만 오로지 그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거지. 질량과 질감이 다른 다양한 관계들을 혼자 다 대신할 수는 없었어. 역부족도 그런 역부족이 없었던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다들 날아가서 부딪치면 좋겠다. 한아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경민이 와준 건, 왠지 대놓고 인정하긴 싫었지만 행운이었다. 우주적 행운. 한 반광물 생명체의 획기적 진화. 대단한 희생을 기반으로 한 기적. 뭐라고 이름 붙이든 간에 한아는 망원경 앞의 저녁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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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서울, 삼풍 - 사회적 기억을 위한 삼풍백화점 참사 기록
서울문화재단 기획,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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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종종 텔레비전에서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를 보았을 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와르르, 몇 초 만에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땐, ‘건물은 이렇게 무섭게 무너지는구나’ 했고, 매몰되었지만 기적같이 살아난 생존자를 볼 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희생자들을 생각하는 건 그냥, 너무 큰 고통이었다. 조금 나이가 들어 되새기는 삼풍 백화점 사고에는 더 많은 생각들이 달라붙었다. 젊었던 엄마도, 대학생이었던 나도 백화점 건물 안에서 일했다. 만약 당시였다면 업무 도중 빠릿빠릿한 눈치로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을 감지한 뒤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1995년 서울, 삼풍>은 지은이 이름에 적힌 ‘기억 수집가’라는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다양한 방면에서 사고를 접했던 이들의 기억을 꼼꼼하게 재조립한 책이다. 생존자, 희생자의 유족, 지인,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구조 작업을 담당했던 소방관, 민간 구조자, 건축업자, 기자, 의사, 봉사자……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힘썼던 사람들과, 지금까지도 슬픔을 견디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술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현재까지 이어오는 고통에 대하여 상세하게 전한다. 구술자의 심리와 행동을 괄호 안의 지문으로 강조함으로써 더욱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고의 정황 속에는 몰랐던 사실도 정말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함’을 감지했으나 갖가지 이유로 피하지 못했고, 역시나 주변 건물의 사람들과 민간 봉사자들은 직접적으로 수색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절도를 목적으로 봉사에 합류한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고). 당시 응급 의학 자체가 미비한 상태여서 체계적인 제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일이 많았으나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불과 몇 초 만에 무너진 건물 때문에 시신을 찾을 수 없는 유족들이 있었고 난지도에 버려진 건물 잔해 속 부분 시신까지도 간절하게 바라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었다.

“건축은 의사, 변호사처럼 사회정의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건축가나 건축계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면 그런 결과들이 초래됩니다. 고객이 이렇게 해달라 요구할 때 건축가가 이런 이유로 안된다 했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았겠죠. 그런데, 네, 알아서 하세요. 도장 찍어줍니다.” 건축에 대한 이 한 마디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은 건축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무언가를 만들 때는 마땅히 지켜야 할 일들이 때때로 무시된다. 수많은 안타까운 사고의 시작이 작은 한 마디라고 생각하면 순간 섬뜩해진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기억’의 슬로건이 대두된 이후로, 2년 뒤 이 책이 출간되었다 (종종 구술자의 발언에서 세월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기도 한다). 세월호 유족들에 관련한 비방이 거세질 때, 지겹다는 말이 지나치게 많이 들려올 때, 세월호가 지겹다는 이들에게 삼풍 생존자가 쓴다는 글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링크).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며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인간의 예의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이다. 매번 기억하며 우울 속에서 살아갈 리 만무하지만, 감시의 역할로도 기억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기억을 이렇듯 온전히, 한숨과 말줄임표 하나까지 꼼꼼히 담아준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이 친구가 무너지기 30분 전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백화점이 너무 덥다. 옥상에 균열이 생겼는데 그것 때문에 에어컨이 멈췄다더라. 그런데 이상하다, 분위기가.’ 이 친구가 1층 로비 바로 앞에서 근무하니까 사람들이 나가는 게 보이잖아요. 윗사람들, 경영진들이 굉장히 급박하고 왠지 모르게 긴장된 모습으로 빠져나간다는 거예요. "이상해." 계속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잖아요, 백화점이 무너질 거라는 걸. 저도 좀 이상한 느낌에 "너도 매장 두고 퇴근하는 건 어때?" 그랬어요. 그랬더니 "저 물건들 비싸잖아. 누가 훔쳐 가면 어떡해. 내 책임이 될 텐데" 하더라고요.

평생 잊혀지지 않는 분이 계셨는데 아주 작고 왜소한 체구에 도배, 페인트 일하는 분이에요. 저희가 엄청난 먼지와 악취 속에서 숨쉬기도 힘들어하면서 작업하는 걸 보고 안타까웠는지 커다란 널빤지를 가지고 오셨어요. 합판 부스러기인데 저희가 굴을 파고 안에 들어가 작업을 할 때 바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기를 불어넣어주셨어요. 작업이 끝날 때까지. 뒤에서 공기를 넣어주면요, 작업 환경이 정말 좋아져요. 작업하다가 뒤돌아보면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안경 고쳐 쓰고 닦아가면서 저희에게 계속 부채질을 해주시는 거예요. 저는 그 분이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구조 대원들 모두 입 모아 말했어요. ‘저 아저씨는 상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활이 안 된다, 이 정도는 아닌데 무너질 걸 항상 대비하죠. 어디로 튈까, 그런 생각을 해요. 위에서 뭐만 떨어져도 무서워요. 이게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뭐가 흔들리기만 해도 겁나고 바람이 불어서 문 같은 게 꽝 닫혀서 아래층이나 위층이 울리면 ‘아, 문 좀 잠가놓지’ 이런 생각 하죠. 고층도 싫어 못 살겠어요. 어쩌다 한번 누구네 집에 놀러가면 몰라도 고층에서는 못 살아요.



죽은 자와 산 자의 짐은 다릅니다. 죽은 자는 자신의 짐을 산 자한테 떠넘기고 가요. 살아 있는 자는 그 짐을 평생 지고 가는 거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짐의 무게는 똑같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뭐냐, 내가 달라져요. 건장한 스무 살 짜리 애가 들던 짐의 무게와 지금 드는 짐의 무게가 똑같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옛날 생각하실 적에 더 아파하고 슬퍼하잖아요. 제가 남기고 싶은 말은요, ‘내년이면 괜찮아질 거다, 몇십 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가 아닙니다. ‘몇십 년 후에는 더 힘들어질 거다. (죽은 자가 남긴 짐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입니다. 그러나 꼭 남기고 싶어요 ‘그러나’라는 단어를요. 또 아직 끝난 게 아니고 진행 중이라는 ‘ing’라는 단어를요. 견디고 또 참아내면 저희 세대로 끝나겠죠. 하지만 제 자식 세대가 그 짐을 들고 가게된다면 못 견딜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우리는 필사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도시는, 특히 우리의 일상이 이뤄지는 한국의 도시들은, 망각을 근본 원리로 하고 있다. 재난에 의하여 먼저 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의 상흔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의하여 자연 치유되도록 방치되고 있다. 일종의 무책임한 운명론이 그 상흔들을 압도해버린다. 누군가가 기억을 하고자 하면, 왜 기억하는가, 무슨 의도로 기억을 하려고 하는가, 라고 윽박지른다. 우연적인 사고로 축소하여 도시 일상의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다. 대책은 고사하고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밝히지 않으려는 힘들이 모든 상처 입은 자들과 고인들을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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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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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좋아”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고작 몇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좋아하는 작가’라 말하기는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 든다. 김애란은 내게 이런 기분으로 다가오는 작가였다. 연이어 단편집을 읽었고, 단편의 한 글귀를 입에서 오물오물 되뇌기도 했으나, 완전히 다 알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스무 살 즈음에 『침이 고인다』를 만났고, 중반 즈음에 『비행운』을 읽었다. 이후 『바깥은 여름』을 읽으면서 감동했다. 우연히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만나게 된 김애란의 소설은 함께 연결되어 나이 드는 동질감을 느끼게 했지만, 그의 ‘처음’을 알지 못해 허전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2005년에 첫 출간된 소설집이 십여 년을 지나 새 옷을 입고 나왔다. 순서가 바뀌고 작가의 말도 새롭게 적어 넣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반가운 기회로 김애란의 풋풋한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만나게 되었다. 작가의 초기작을 만나는 것은 늘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지만, 이번에는 빠져 있던 퍼즐 조각을 찾은 듯 유독 즐거운 기분이다.

이십 대에 들어서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나는 전혀 어른이 된 것 같진 않지만 그때와 현저히 달라진 존재를 느낀다. 그때는 내 생애 가장 우습고도 밝은 시기였다. 마음은 조금 부풀어 있고 살짝 열려 있었다. 겁이 나도, 살짝 열린 틈으로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기회, 내가 하고 싶은 상상 속에 잠깐이라도 발을 담가볼 수 있었다. 지금의 나이가 돼서야 볼 수 있는 것이 있는 것처럼, 그때의 나이에만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풋풋한 스물,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다시 또 한 번 나의 시간을 생각한다.

만나지 못했지만 늘 가슴 한편에 있는 동경의 대상을 생각한다.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 그리고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사랑의 인사>라는 단편들은 부재하는 누군가를 궁금해하고 그리워하는 면에서 비슷한 결을 가진 소설이었다. 그 누군가는 종종 아버지의 존재로 비춰졌다. 어머니와 아버지, 가족을 이야기할 때 면 조절하기 힘든 감정을 적당한 온도로 전하고 있었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탁월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단편들이었다. 건조하면서도 섬짓한 분위기의 이 소설들이 유독 좋았다. 글을 쓰는 존재로서의 고뇌가 느껴졌던 <영원한 화자>, <종이 물고기>도 기억에 남는다.

소설 속에는 작가의 책을 좋아한 이유이기도 했던, 문장의 신선한 표현력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초기작의 산뜻하고 가벼운 느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첫’ 소설의 무거운 고뇌 또한 들어 있는 듯했다. 마치 뼈 있는 농담을 듣는 기분이라 할까. 물론 조금 더 매만져진 지금의 김애란이 나는 더 좋긴 하지만, 첫 소설의 매력을 느끼는 것도 재미난 경험이었다.

 

어머니는 발가벗은 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내 얼굴을 큰 손으로 몇번이나 쓸어주었다. 나는 어머니가 좋았지만 그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자꾸만 인상을 썼다. 나는 내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P39

어쩌면 ‘나는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식으로도 나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당신보다 당신의 절망을 경청하고 있는 나의 예의바름을 더 사랑한다는 점에서 무레한 사람이다. 나는 오만한 사람을 미워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의심하는 사람이다.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내가 그동안 그것을 ‘그다지’ 좋아한 것은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이다. 나는 자신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모르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아도 끄덕이는 사람, 나는 불안한 수다쟁이, 나는 나의 이야기,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 나는 나의 각주들이다. - P127

"죄송합니다." 나는 그가 건네는 포장 만두를 받아들었다. 볼일이 끝난 뒤에도 내가 계속 꼼짝 않자, 청년은 나를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뭔가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그런데 도통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한참 망설이다 어물쩍 한마디 내뱉고는 큐마트를 나왔다. "문자 왔어요." - P237

바람이 들고 날 때마다 모든 벽면이 바깥을 향해 천천히 부풀어올랐다 다시 원상태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럴 때면 다섯개의 벽면에 붙은 포스트잇이 일제히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자 더욱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방 전체가 하나의 종이 비늘이 달린 물고기가 되어 부드럽게 세상을 헤엄쳐 다니는 상상을 했다. 마치 자신이 물고기 지느러미 옆에 붙어 있는 것 같았고, 반대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기분도 느꼈다. 대체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 알 수 없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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