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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냄새
박윤선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평점 :
차를 타고 할머니 댁에 다녀오는 길이면 어릴 적 살던 동네가 보였다. 마을버스를 타고 지나치던 고가 밑 도로, 동생을 데리러 가던 어린이집, 초등학교로 가는 표지판들을 깊숙이 살펴보지 않고 늘 스쳐가곤 했다. 몇 미터만 가면 그때를 추억할 수 있는 풍경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애써 발길 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분명히 느껴지는 노스탤지어와 웃음 지을 수 있는 추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 오랜 시간 동안 직접 가까이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내가 옛날 동네에 들어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어, 저기다. 한번 가볼까? 오랜 추억을 함께 갖고 있는 언니와 즉흥적으로 핸들을 돌렸던 것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에 걷던 골목을 자동차의 속도로 스쳐갔다. 너무나 많이 변했고, 너무나 그대로였다. 셀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을 정리하기엔 버거웠다. 감정뿐일까. 그곳의 냄새도 기억한다. 바람도, 공기도. 그러나 완전히 행복한 기억만 떠오르지 않는다. 좋고 나쁜 분위기가 언뜻언뜻 떠오른다.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머뭇거리게 되는 어린 시절의 냄새는 시원하면서도 비릿한 수영장의 냄새와 닮았다. 시퍼런 책표지에 마음이 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민선의 하루를 그린 만화. 책은 ‘수영장’의 차갑고 비릿한 냄새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의 맞벌이, 늘 자신보다 뛰어났던 친언니, 친구들의 은근한 놀림과 조소,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을 보내는 민선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불가능할 듯한 익사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39쪽)
“분명히 다들 나처럼 불편해하면서 모두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127쪽)
조금 불쾌한 일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듯하지만 주인공 민선이 툭 던지는 말속에는 뼈가 숨어 있다. 어린이였다면 알지 못했을 뼈의 존재도, 어른이 된 내겐 분명하게 보인다.
민선의 하루는 책의 마지막, 세월을 건너뛴다. 동네의 작은 수영장은 어느새 큰 공간으로 확대된다. ‘가능한 손끝으로 입수하고, 가능한 오래, 물 안에서 머무른다.’ 차가운 물은 금세 적응된다. 물에서 빠져나오기까지 그 차가움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간다. 차가워지고 식기를 반복하고, 그렇게 수많은 민선이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