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 -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기 위하여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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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한 리듬으로 살다가 온몸으로 편안하게 늘어질 수 있는 시간이 오면 마침내 긴 호흡을 들이쉴 수 있다.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함 없이 어딘가로 정처 없이 걸을 수 있는 건, 온종일 시간이 비워진 주말의 특권이다. 계산적으로 짧게 쪼개진 일상의 호흡이 조금 느려진다. 시야 또한 넓어져 미처 보지 못했던 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잿빛 안개가 씌워져 있던 산과 건물은 어제보다 오늘 더 또렷해졌다. 재빠르게 날지 않고 종종거리며 걷는 참새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천의 흐르는 물속에서 물고기를 낚아채는 새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2019년 1월, 시인의 타계 소식을 듣고 책장 속에 꽂혀 있던 두 권의 책을 다시금 꺼내 보았다. 국내에 출간된 책은 단 두 권 뿐이라 아쉬워하다가, 연말이 돼서야 출간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기 위하여’라는 담백한 부제는 작가의 이름에 퍽 잘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그가 말하는 ‘시’는 조금 다른 면모로 다가오는 듯 느껴진다. 세상의 수많은 시인들에게 ‘삶=시’라는 명제는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메리 올리버의 삶엔 다른 하나가 더해진다. 삶과 시, 그리고 자연.

때로는 광각렌즈에 투영된 장면처럼 넓은 우주를 바라보면서도, 때로는 작고 작은, 좁디좁은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다시금 뚫어지게 바라보며 사랑을 느끼니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무한대로 넓어진다. 시인은 자연을 위대한 조언자로 칭하며 구름과 바다, 돌고래, 지렁이의 움직임, 나방의 날개와 같은 것들을 본다. 수많은 종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자연의 생물들이 사냥을 하고 굶주리고 잡아먹히는, 그렇게 만들어진 생태계를 관찰한다. 어쩌면 소박하지만 어쩌면 너무나도 위대한 것들을 보며 생각한다. “그리하여 처음에 세상이 온다. 그다음엔 문학, 다음으로 연필이 천 마일의 종이 위를 움직여 해낼 수 있는(어쩌면, 가끔) 것은 무엇인가.(52쪽)” 누군가에겐 외면을 당하고 짓밟히거나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시와 자연은 그에게 같은 의미인 것 같다.

“인간과 호랑이, 호랑이와 참나리가 다르면서도 얼마나 흡사한지 보라! 우리 모두 몇 번의 여름, 여기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가 끌어모을 수 있는 육체적, 지적 능란함으로 우리 상태를 개선시키고 그런 뒤에 조용히 풀밭으로, 죽음의 초록 구름으로 물러나지 않는가? 그 무엇이 솟아나면서, 사라져가면서 귀엽거나 매력적일 수 있는가? 삶은 나이아가라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풀잎 한 줄기의 지배자도 되지 않을 것이며 그 자매가 될 것이다. 나는 풀 위로 머리를 내민 백합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내 심장의 줄기로부터 즐거운 인사를 보낸다. 우리는 한 나라, 한 가정에 살고 있으며 한 램프에서 불타오른다. 모두가 야성적이고, 용감하고, 경이롭다. 우리는 아무도 귀엽지 않다.” (118쪽)

귀엽다는 말은 오락거리로 대체되거나 위엄을 잃고 누군가에 의해 소유될 수 있다는 시인의 우려 섞인 말을 들으며, 세상을 편리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짓밟힌 것들을 생각한다. 오랜 세월을 굳건히 지켜낸 강인한 모든 존재들을, 우리는 너무 손쉽게 망가뜨리고 있진 않은지.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금세 바쁜 일상 속에 흐려지곤 한다. 이렇듯 모순된 모습을 보이는 인간들 속에 “나는 풀잎 한 줄기의 지배자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는 시인과 같은 사람이 존재하고 존재했다는 것은 또한 너무나 경이로운 일이 아닌가. 시인처럼 살지 못해서, 나는 가끔씩 그의 책을 넘기며 마음을 조금씩 가다듬는다. 작은 하나라도 지켜보자는 다짐으로 심란해진 마음을 달래본다.

삶은 더 이상 기쁨과 용맹 속에서 발현되지 않고, 오직 세속적 재물 축적의 도구로만 이용된다. 시가 그런 사람들에게 의미를 지니려면, 그들이 먼저 발걸음을 떼어야 한다. 물질에 구속된 사리추구적 삶에서 벗어나 나무들을 향해, 폭포들을 향해 걸어야 한다. 시를 읽는 사람들이 너무 적은 것은, 이 겁에 질리고 돈을 사랑하는 세상에서 시의 영향력이 너무도 미미한 것은, 시의 잘못이 아니다. 결국 시는 기적이 아니다. 개인적 순간들을 형식화(의식화)하여 그 순간들의 초월적 효과를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시는 우리 종의 노래다. "세상의 종말은 영원히 오고 있지 않는가?" - P42

첫 번째 축복인 자연계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자연은 아름다움과 흥미로움, 신비로 가득했고 행운과 불운을 있었지만 남용은 없었다. 두 번재 축복인 문학의 세계는 형식의 즐거움을 준 것 외에도 감정이입(키츠가 부정적 능력이라고 부른 것의 첫 단계)이라는 자양분을 제공했고, 나는 그걸 향해 달려갔다. 나는 그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기꺼이, 기쁘게 모든 것―다른 사람들, 나무들, 구름들―의 대역을 맡았다. 그로 인해 다름 속에 서게 되면서, 세상의 다름은 혼란의 해독제임을 깨달았다. 바깥의 들판이나 책 속 깊은 곳에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신비가, 최악의 아픔을 겪은 마음에 고귀함을 되찾아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 P45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을 그리는 것과도 같다. 어떤 별들이 누락되거나, 잘못된 자리에 놓이거나, 잘못 해석되거나,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나는 밀레이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반 바구니쯤 되는 양일까? 누구든 타인의 삶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을가? 우리는 그러기를 희망해야 한다. 하지만 위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무서운 일이다. 밤이 어둡다. 나는 가공할 힘을 지닌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한밤중의 전화벨 소리, 이해되거나 오해될 열정적인 말들을 듣는다. 나는 심장이 몸의 문간에서 긴 돌계단을 내려가 홀로 이 세상에서 나가는 걸 느낀다. - P115

‘귀엽다’ ‘매력적이다’ ‘사랑스럽다’ 같은 말들은 잘못됐다. 그런 식으로 지각되는 것들은 위엄과 권위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귀여운 것은 오락거리로 대체 가능하다. 말들은 우리를 이끌고 우리는 따라간다. 귀여운 것은 조그마하고, 무력하고, 포획할 수 있고, 길들일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다. 그 모든 게 실수다. 우리 발치에는 양치식물들이 있다. 그것들은 인간 종족이 어디에도 없고 전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던 때에 최초의 이름 없는,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바다의 무시무시한 여울 속에서 거칠고 결연하게 자라났다. 우리는 그것들을 예쁘고, 섬세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우리의 정원으로 가져온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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