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서울, 삼풍 - 사회적 기억을 위한 삼풍백화점 참사 기록
서울문화재단 기획,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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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종종 텔레비전에서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를 보았을 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와르르, 몇 초 만에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땐, ‘건물은 이렇게 무섭게 무너지는구나’ 했고, 매몰되었지만 기적같이 살아난 생존자를 볼 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희생자들을 생각하는 건 그냥, 너무 큰 고통이었다. 조금 나이가 들어 되새기는 삼풍 백화점 사고에는 더 많은 생각들이 달라붙었다. 젊었던 엄마도, 대학생이었던 나도 백화점 건물 안에서 일했다. 만약 당시였다면 업무 도중 빠릿빠릿한 눈치로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을 감지한 뒤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1995년 서울, 삼풍>은 지은이 이름에 적힌 ‘기억 수집가’라는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다양한 방면에서 사고를 접했던 이들의 기억을 꼼꼼하게 재조립한 책이다. 생존자, 희생자의 유족, 지인,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구조 작업을 담당했던 소방관, 민간 구조자, 건축업자, 기자, 의사, 봉사자……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힘썼던 사람들과, 지금까지도 슬픔을 견디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술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현재까지 이어오는 고통에 대하여 상세하게 전한다. 구술자의 심리와 행동을 괄호 안의 지문으로 강조함으로써 더욱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고의 정황 속에는 몰랐던 사실도 정말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함’을 감지했으나 갖가지 이유로 피하지 못했고, 역시나 주변 건물의 사람들과 민간 봉사자들은 직접적으로 수색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절도를 목적으로 봉사에 합류한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고). 당시 응급 의학 자체가 미비한 상태여서 체계적인 제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일이 많았으나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불과 몇 초 만에 무너진 건물 때문에 시신을 찾을 수 없는 유족들이 있었고 난지도에 버려진 건물 잔해 속 부분 시신까지도 간절하게 바라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었다.

“건축은 의사, 변호사처럼 사회정의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건축가나 건축계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면 그런 결과들이 초래됩니다. 고객이 이렇게 해달라 요구할 때 건축가가 이런 이유로 안된다 했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았겠죠. 그런데, 네, 알아서 하세요. 도장 찍어줍니다.” 건축에 대한 이 한 마디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은 건축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무언가를 만들 때는 마땅히 지켜야 할 일들이 때때로 무시된다. 수많은 안타까운 사고의 시작이 작은 한 마디라고 생각하면 순간 섬뜩해진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기억’의 슬로건이 대두된 이후로, 2년 뒤 이 책이 출간되었다 (종종 구술자의 발언에서 세월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기도 한다). 세월호 유족들에 관련한 비방이 거세질 때, 지겹다는 말이 지나치게 많이 들려올 때, 세월호가 지겹다는 이들에게 삼풍 생존자가 쓴다는 글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링크).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며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인간의 예의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이다. 매번 기억하며 우울 속에서 살아갈 리 만무하지만, 감시의 역할로도 기억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기억을 이렇듯 온전히, 한숨과 말줄임표 하나까지 꼼꼼히 담아준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이 친구가 무너지기 30분 전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백화점이 너무 덥다. 옥상에 균열이 생겼는데 그것 때문에 에어컨이 멈췄다더라. 그런데 이상하다, 분위기가.’ 이 친구가 1층 로비 바로 앞에서 근무하니까 사람들이 나가는 게 보이잖아요. 윗사람들, 경영진들이 굉장히 급박하고 왠지 모르게 긴장된 모습으로 빠져나간다는 거예요. "이상해." 계속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잖아요, 백화점이 무너질 거라는 걸. 저도 좀 이상한 느낌에 "너도 매장 두고 퇴근하는 건 어때?" 그랬어요. 그랬더니 "저 물건들 비싸잖아. 누가 훔쳐 가면 어떡해. 내 책임이 될 텐데" 하더라고요.

평생 잊혀지지 않는 분이 계셨는데 아주 작고 왜소한 체구에 도배, 페인트 일하는 분이에요. 저희가 엄청난 먼지와 악취 속에서 숨쉬기도 힘들어하면서 작업하는 걸 보고 안타까웠는지 커다란 널빤지를 가지고 오셨어요. 합판 부스러기인데 저희가 굴을 파고 안에 들어가 작업을 할 때 바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기를 불어넣어주셨어요. 작업이 끝날 때까지. 뒤에서 공기를 넣어주면요, 작업 환경이 정말 좋아져요. 작업하다가 뒤돌아보면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안경 고쳐 쓰고 닦아가면서 저희에게 계속 부채질을 해주시는 거예요. 저는 그 분이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구조 대원들 모두 입 모아 말했어요. ‘저 아저씨는 상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활이 안 된다, 이 정도는 아닌데 무너질 걸 항상 대비하죠. 어디로 튈까, 그런 생각을 해요. 위에서 뭐만 떨어져도 무서워요. 이게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뭐가 흔들리기만 해도 겁나고 바람이 불어서 문 같은 게 꽝 닫혀서 아래층이나 위층이 울리면 ‘아, 문 좀 잠가놓지’ 이런 생각 하죠. 고층도 싫어 못 살겠어요. 어쩌다 한번 누구네 집에 놀러가면 몰라도 고층에서는 못 살아요.



죽은 자와 산 자의 짐은 다릅니다. 죽은 자는 자신의 짐을 산 자한테 떠넘기고 가요. 살아 있는 자는 그 짐을 평생 지고 가는 거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짐의 무게는 똑같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뭐냐, 내가 달라져요. 건장한 스무 살 짜리 애가 들던 짐의 무게와 지금 드는 짐의 무게가 똑같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옛날 생각하실 적에 더 아파하고 슬퍼하잖아요. 제가 남기고 싶은 말은요, ‘내년이면 괜찮아질 거다, 몇십 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가 아닙니다. ‘몇십 년 후에는 더 힘들어질 거다. (죽은 자가 남긴 짐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입니다. 그러나 꼭 남기고 싶어요 ‘그러나’라는 단어를요. 또 아직 끝난 게 아니고 진행 중이라는 ‘ing’라는 단어를요. 견디고 또 참아내면 저희 세대로 끝나겠죠. 하지만 제 자식 세대가 그 짐을 들고 가게된다면 못 견딜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우리는 필사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도시는, 특히 우리의 일상이 이뤄지는 한국의 도시들은, 망각을 근본 원리로 하고 있다. 재난에 의하여 먼저 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의 상흔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의하여 자연 치유되도록 방치되고 있다. 일종의 무책임한 운명론이 그 상흔들을 압도해버린다. 누군가가 기억을 하고자 하면, 왜 기억하는가, 무슨 의도로 기억을 하려고 하는가, 라고 윽박지른다. 우연적인 사고로 축소하여 도시 일상의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다. 대책은 고사하고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밝히지 않으려는 힘들이 모든 상처 입은 자들과 고인들을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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