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터키의 역사와 그림을 둘러싼 살인에 관하여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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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원래 여러 권으로 나뉘어진 책 (1편, 2편 등..)을 싫어하는 편이다. 아무리 두꺼워도 한 권으로 되어있으면 좋겠는데. 1권을 읽다가 2권으로 넘어갈 때 그 쉬는 타이밍이 싫은건지, 아니면 여러 권을 읽어야만 끝나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싫은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로 긴 이야기는 머리 속에 안들어오니 그런 걸지도. 그래서 <내 이름은 빨강>을 잘 읽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쨌든 그 고민이 맞았다. <내 이름은 빨강>을 읽는 것은 나를 조금 괴롭게 했다. 소설의 굉장한 길이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들어있는 것도 많은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터키의 오스만 제국, 그리고 궁정의 세밀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저 그 자체의 얘기뿐만 아니라 동서양이 혼재된 터키의 역사, 그리고 진정한 그림에 대한 추구, 죽음에 대한 이야기 등 여러 차원에서 다뤄진다. 작가는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 실제로 터키의 전통적이고 권위적인 회화와 개성적이고 자유로운 회화의 대립에 대한 시각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신화와 옛날이야기등을 차용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들이 나올때마다 범인의 정체를 파악하는 원래의 목적은 뒤로한 채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한편으론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친절했던 점은 이야기의 소주제를 통해 화자를 지정해주었던 점이다. '나는 누구다'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죽은 자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법칙을 깨고 죽은 자가 떠올리는 생각과 느낌을 펼쳐놓았다는 것이다. 이 부분 정말로 재밌었다.

 

   이 소설은 첫 부분에서부터 일어나는 살인과 이야기의 끝에서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추리소설이며, 동서양의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흐르고 있는 옛날 이야기와 술탄, 궁정화가들에 초점을 맞춘다면 역사소설일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세큐레와 관련된 사랑을 중점으로 본다면 연애소설, 그림에 대한 세밀화가들의 자세와 진정한 회화에 대해 묻고 싶어진다면 미술소설일 것이다. 작가의 풍부한 지식과 이 소설에 많은 것을 담고자 했던 의욕이 나에게는 집중력, 이해력 부족으로 다 와닿지는 않았으나 (범인의 정체를 찾는데만 몰두하고 있었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의 그 느낌은 어쨌든 대단했다. 혼란스러웠던 모든 것이 한번에 정리되어 덮여졌다. 마지막에야 알 수 있었다. 매력적인 터키의 이야기에 마치 홀린 것처럼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는 것을.

 

 

Underline

 

 

 

  - 삽화 예술 이전에도 어둠은 있었고, 삽화 예술 이후에도 어둠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색채와 그림, 예술과 사랑을 통해, 우리는 신께서 우리에게 '보라!'하고 명령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한다.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림을 사랑하고, 색채와 시각이 어둠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식한 위대한 화가들은 색을 통해 신의 어둠 속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기억할 줄 모르는 화가는 신도, 신의 어둠도 기억하지 못한다. 모든 위대한 장인들의 작품은 색채 안에서 시간 너머에 있는 깊은 어둠을 찾는다. (1권, 140p)

 

  - "본질은 이야기니라. 멋진 그림은 이야기를 우아하게 완성시켜 주는 게야. 이야기를 보완하지 못하는 그림은 결국 우상이 될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는 우리가 믿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은 그림 자체를 믿게 되지 않겠느냐. 이것은 우리의 예언자가 오시기 전 사람들이 캬베에 있는 우상들을 숭배한 것과 다름없느니라.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면, 예를 들어 이 카네이션이나 저 버릇없는 난쟁이를 어떻게 그림에 그려 넣겠느냐?" "카네이션의 아름다움과 유일함을 드러내면 됩니다." 그러자 술탄은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페이지의 구도를 정할 때, 그것을 세계의 중심에 배치하겠느냐?" "난 두려웠다. 술탄의 생각이 날 이끄는 곳이 어디인지를 보고 한순간 당황했지." (...) "나중에 그대는 난쟁이를 한가운데 그려넣은 그림을 벽에 걸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벽에 걸어선 안된다. 왜냐하면 그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든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벽에 건 그림을 숭배하기 시작할 테니까 말이다. 내가 이교도들처럼 예수가 신이라는 당치도 않은 소리를, 신이 이 세상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는 것을, 그것도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리란 것을 믿었다면, 인간의 그림을 그려 거리낌 없이 벽에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벽에 걸린 모든 그림을 나도 모르게 숭배하게 되었겠지. 이러한 사실은 그대도 알고 있겠지. 그렇지 않나?" (1권, 199p)

 

  - "베네치아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를 본 후, 난 두려움 속에서 깨닫게 되었지. 이제 그림 속의 눈들은 하나같이 비슷비슷하게 생긴 동그랗고 단순한 구멍이 아니라, 빛을 거울처럼 반사하기도 하고 우물처럼 빨아들이기도 하는 우리의 눈과 똑같다는 것을 말이야. 입술은 얼굴 한가운데 있는 찢어진 부분이 아니라, 수축했다 이완하는, 우리의 모든 기쁨과 슬픔과 영혼을 나타내는 그 무엇이고 , 각기 다른 붉은 색을 띤 의미의 매듭이야. 코는 우리의 얼굴을 둘로 나누는 건조한 벽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형태를 지닌 생물이자 호기심 많은 기구지." (1권, 248p)

 

  - 이 멋진 승천 중에 보았던 색들을 무슨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모든 세계가 색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것이 색임을 나는 보았다. 나를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하는 힘이 색에서 나온 것이고 지금 나를 사랑으로 껴안고 세계와 연결해 주는 것도 색이란 걸 깨달았다. 오렌지색 하늘을 보았다. 나뭇잎 색의 아름다운 몸, 커피색 알, 하늘색의 전설적인 말도 보았다. 그 세계는 내가 지난 세월동안 즐겨보았던 그림들과 전설속에 나오는 것들과 똑같았다. 그런데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놀랍고 감탄스러웠다.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은 흡사 내 기억에서 끄집어낸 것 같았다. 기억은 세계의 일부이고, 우리 앞에 펼쳐진 끝없는 시간 때문에 세계는 미래에 나의 경험이 되며, 그런 다음 나의 기억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빛의 축제 속에 있으니 죽음의 순간에 어째서 꽉 끼는 윗옷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편해졌는지도 알았다. 이제부터 내게는 그 어떤 것도 금지되어 있지 않고, 모든 시간과 모든 장소에서 살 수 있는 영원의 시공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2권, 53p)

 

  - 색은 눈길의 스침, 귀머거리의 음악, 어둠 속의 한 개 단어다. 수천 년 동안 책에서 책으로, 물건에서 물건으로 바람처럼 옮겨 다니며 영혼의 말소리를 들은 나는, 내가 스쳐 지나간 모양이 천사들의 스침과 닮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여기에서 당신들의 눈에 말을 걸고 있다. 이것이 나의 신중함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동시에 나는 공중에서 당신의 시선을 통해 날아오른다. 이것이 나의 가벼움이다.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나는 숨기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섬세함은 나약함이나 무기력함이 아니라 단호함과 집념을 통해 실현된다. 나는 나 자신을 밖으로 그려낸다. 나는 다른 색깔이나 그림자, 붐빔 혹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를 기다리는 여백을 나의 의기양양한 불꽃으로 채우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1권, 3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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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 등장하는 오르한이 왜 오르한인지 마지막에 나온다 ㅋㅋ

이거 읽느라 한동안 서평을 쉬었더니, 잘 못쓰겠다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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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철학을 말하다 토트 아포리즘 Thoth Aphorism
강신주 엮음 / 토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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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고의 계기를 주는 한 마디를 모아 <철학자, 철학을 말하다 - 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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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이란 단어만 들어가면 일단 움찔- 하게 되는 게 나뿐만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그 '움찔'에 위안을 받기 위해서 나는 '철학은 삶의 방식이니 우리가 살아가는 일과도 같다'하고 광범위하게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나 철학은 접할 수록 더욱 어려워진다. 물으면 물을수록, 이론에 접근할 수록 더욱더 골치아파진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책'은 그 어려운 철학으로 자주 나를 이끈다. 생각 - 생각 - 또 생각 - 그리고 철학적 의미를 찾기 위한 생각으로. 아직도 철학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 어렵게 도달하는 생각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철학임을 나는 조금은 짐작하고 있다. 사소한 것에 의미를 강구하고 그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또다시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이 철학적 사고를 하게 되는 것임을 가끔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어떠한 계기로든간에 철학적 사고의 문앞까지 도달하는 것은 그나마 쉽다. 그 뒤가 어려울 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책이나 영화 등 많은 것들을 통해 그 쉬운 순간들을 겪는다. 책이나 영화를 제외한다면 아마 철학자들의 '명언'이 있을 것이다. 철학자들의 명언들은 인터넷에서 짧게도 떠돌아다니고, sns나 카카오톡 많은 곳에 자신의 좌우명처럼 쓰여지기도 한다. 이처럼 철학적 사고의 문앞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면 그 문 앞을 제대로 뚫을 수 있는 사람은 전문적으로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거나 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거나 공상을 많이 하는 사람일텐데, 그 중 유명한 작가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철학자 강신주가 자신에게 통증을 주며 사유의 시간으로 이끈 철학자의 책 구절들을 모았다. 그는 '책에도 도끼날처럼 날카로워 마음에 핏빛 상처를 만드는 핵심구절이 반드시 있다' 말한다. 나의 경우 그 구절들은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 곳곳 있었고, 강신주 철학자 또한 자신이 읽은 수많은 책들에서 그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을 흔들어논 그 구절들은 이 책에 한 페이지에 하나씩 소개되어 있다. 철학적인 이론이 숨겨져 있는, 철학자의 사유가 그대로 담겨있는, 철학적 사고로 이끄는 서슬퍼런 한 마디 말, 우리는 그것을 읽고 사유할 수 있고 별로 감흥이 없는 말들은 넘겨가며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그토록 어려운 철학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철학적 사고의 문 앞을 두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짧은 한마디에 감흥이 인다면 그 밑의 공백을 보면서 조금 더 한숨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이 책에 조금 아쉬운 점이 있는데, 유명한 철학자인 강신주가 엮은 만큼 철학자들의 그 구절을 고른 이유를 덧붙인다거나, 그 구절들이 의미하는 바를 주제로 묶거나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바람이다.

 

 

 

Underline

 

 

 

  - 소동에 의해서든 아니면 음악에 의해서든 또는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에 의해서든 진리는 화들짝, 돌연한 일격을 당한 듯 자기 침잠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진정한 작가의 내면에 갖춰져 있는 비상경보기를 헤아릴 수 있을까? '집필한다'는 것은 그런 비상경보기를 켠다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21p, 발터 벤야민)

 

 

  - 여러분이 깊이가 있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집중'과 '깊이', 이 두 상태는 동전의 양면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집중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깊이의 비밀을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깊게 파고드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세계의 무엇인가로 열려 있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었던 겁니다. (65p, 강신주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중에서)

 

 

  - 자네가 이 꽃을 보기 전에는 이 꽃은 자네와 함께 고요한 상태에 있었네. 자네가 와서 이 꽃을 보는 순간 이 꽃의 모습이 일시에 분명해졌네. 이로써 이 꽃은 자네의 의식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네. (66p, 왕수인)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만 한다. (77p, 비트겐슈타인)

 

  - 철학이 삶은 회고적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렇지만 그 순간 우리는 또다른 구절 하나를 망각한다. 삶은 미래를 향해 살아내야 한다는 것. (95p, 키에르케고르)

 

  - 세상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처럼 우리는 즐거워하고 즐긴다. 세상 사람들이 보고 판단하는 것처럼 우리도 문학과 예술을 읽고 보고 판단한다.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이 거대한 군중 앞에서 움츠러드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움츠러든다. 세상 사람들이 충격을 받는 것처럼 우리도 충격을 받는다. 확정적인 것은 아니고, 그리고 비록 단순히 총합은 아닐지라도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일상성의 존재가 무엇인지 그 종류를 미리 규정한다. (172p, 하이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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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한페이지에는 한글과 영어, 혹은 한글과 중국어로 함께 적혀있어서

그 언어로도 읽어본다면 좋을 것 같다. 영어로 읽었을 때 더 좋게 받아들여지는 의미도 있으니까. 

물론 난 귀찮아서 한글만 읽었다. (과연 귀찮아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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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정유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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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를 극복한 조지메이슨 대학의 최고 교수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 정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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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나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나의 먼 친척도 그랬고, 일하다가 본 단골 손님도 그랬다.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 그들을 볼땐 아무렇지 않으려해도 조금 흠칫-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무표정일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몸이 불편해보이면서도 항상 활짝 웃는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었다. 이 책의 주인공도, 신생아 황달로 인해 뇌성마비를 앓게 된 분이다. 조금 다르고 힘든 과정을 삶에서 겪었지만 마지막 페이지에 나온 저자의 사진들에는 항상 활짝 웃는 모습이 담겨있다.

 

  남들과 조금 달랐지만 저자는 그 다름을 뒤로한 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었던, 공부를 꾸준히 했다. 공부에선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던 그녀는 역시 당찬 포부로 유학을 택했다. 영어를 공부하고,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그의 삶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줄 보조공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결국 대학원을 졸업하고 조지 메이슨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최고 교수로도 선정이 되었다. 그런 특별한 삶을 일궈낼 수 있게 한 원동력은 그녀의 남다른 끈기와 주변인들의 사랑, 그리고 AAC라는 보조공학 기구 덕분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뭔가 달랐다. 조금 어렵지만 끝까지,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응원했다. 가족, 친구, 교수, 동료, 학생 등.. 물론 처음 만난 그녀의 모습에 당황해하거나 멈칫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당당한 그녀의 모습을 보곤 이해와 관심으로 응원해주었다. 또한 한국말도 매끄럽게 말하지 못하는 저자가 최고의 강의로 손꼽히는 수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AAC라는 것이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글을 음성으로 바꾸어 내보내주는 기계인 AAC, 그것을 통해 매끄럽게 강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하룻동안의 바쁜 준비가 필요할지라도.

 

  저자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현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녀의 아이들은 이제 엄마를 '조금 다른 사람'이 아닌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여긴다. 그녀는 장애인 주차장과 화장실을, 자신보다 더욱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 양보한다. AAC를 통한 강의를 하다가 기계의 고장이 있더라도 장난스럽게 넘어갈 유머를 가진 사람이고, 학생의 발표에는 Perpect라고 직접 이야기한다. 좌절하는 법은 있지만 절대 넘어진 채로 있지 않는다. 책을 통해 만나본 저자는 괜찮은 사람을 넘어서 참 멋진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녀는 장애가 있기 때문에 더욱더 긍정적이고 겸손한 삶을 살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당차고 멋진, 가슴벅찬 꿈을 일궈낸 특별한 여성이다.

 

 

 

Underline

 

 

 

 

 

 

 

  -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생이란, 상자에 담긴 모양과 색깔이 서로 다른 초콜릿과도 같아요. 어떤 초콜릿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죠." 어떤 초콜릿이 주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면, 하필 나에게 왜 '불량인생'이 왔을까 하며 울고 또 울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만일 내게 새 초콜릿을 고를 기회가 주어진대도 나는 여전히 똑같은 초콜릿을 고를 것 같다. 내 인생이 '장애가 없는 정유선'이라는 초콜릿이었다면 나는 그저 밋밋한 맛에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뇌성마비 장애인 정유선'이라는 초콜릿은 생각 외로 달다. 그 초콜릿이 내게 온 덕분에 나는 더욱 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고 겸손해질 수 있었다. (25p)

 

 

  - 나는 그날까지 얼마나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지 모른단다. 며칠을 두고 망설이다가 그날은 단단히 결심을 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무심한 너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또 마음이 흔들려서 마지막 순간에 그냥 지나갈 뻔했다. 그러나 이렇게 우유부단한 나 자신에 대한 분노에서 힘을 내어 너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네가 일어나서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읽어가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솟아 넘쳐 그걸 참느라고 애를 먹었다. 네가 혼자 힘으로 다 읽고 앉는 것을 보고 나는 칠판을 향해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단다. 지금도 책을 읽는 도중에 내가 도와주려는 것을 뿌리치고 혼자 해내려고 하던 네 집요한 표정을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나는구나. 유선아, 나는 다만 너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자신감과 기쁨을 주고 싶었다. (45p, 선생님의 편지)

 

 

  - 어떤 사람들은 내게 나보다 처지가 안 좋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운을 내라고 위로한다. 예를 들면, 평생 자리보존하고 누워 있어야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네 경우는 얼마나 다행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찾고 싶지 않다. 그들의 삶을 내 멋대로 끌어내려 내 처지보다 못하다고 단정 짓는 건 너무 건방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처지가 그렇다고 해서 나보다 더 불행하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내 우월함을 확인하기보다는 그냥 내가 가진 것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게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 (55p)

 

 

  - 드디어 연극의 막이 올랐다. 연극이 중반쯤으로 치달았을 무렵, 내가 무대 위에 오를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가 상체를 앞으로 구부리고는 몸을 'ㄱ'자 모양으로 만들엇다. 그러자 한 아이가 내 등 위에 빵이 놓인 도마를 올리고는 그걸 써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내가 맡은 배역은 바로 탁자였다. 그 모습을 보고는 객석의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어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의연하게 몸을 구부리고는 역할에 충실히 임했다. 물론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연습할 때는 다들 심각했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는데,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 역할이 참 우습고 바보 같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몇 초에 불과한 그 순간이 마치 1시간이라도 되는 듯 길게만 느껴졌다. (102p)

 

 

  - "장애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예쁜 사진도 있지만, 그걸 본 사람들이 장애인 같지 않다고 해서요. 그게 문제가 되어 어쩔 수가 없네요." 몇 해 전 한 매체에서 '장애를 극복한 정유선'이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했는데, 담당 기자님이 기사에 실을 사진을 정한 후 보여주며 한 말이다. '장애인 같다'는 것은 과연 어떤 뜻일까? 왜 나는 사람들에게 그냥 정유선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장애인 정유선'으로 보여야 하는가? (...) 인터뷰 당시 사진을 찍을 때 옆에 엄마가 계셔서 마음이 편한 상태였고, 사진 기자님도 순간순간 웃음을 주시며 셔터를 열심히 눌러주시기에 그렇게 찍은 수십컷 중 그래도 괜찮은 사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담당 기자님이 보낸 사진은 내 특유의 활짝 웃는 표정이 아니라,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을 어정쩡하게 일그러트린 것이었다. 그 사진 속 일그러진 모습도 나 정유선이다.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평소의 내 모습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대표하는 모습은 아니지 싶다. (2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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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들 덕분에, 더욱더 열심히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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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과 유토피아 - 니체의 철학으로 비춰본 한국인, 한국 사회
장석주 지음 / 푸르메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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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크로스 인문학 <동물원과 유토피아 -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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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장석주는 독서광이라 불릴만한 풍부한 지식과 시인이라 불릴만한 멋진 문장을 쓰는 사람이다. 나는 <마흔의 서재>를 통해 그의 몇십년 묵은 책장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고 역시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의 글들을 보고 감탄했다. 그렇다면 니체는, 수없이 많이 불리우는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이며 역시 수없이 많이 인용되고 재탄생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장석주 작가는 40여년동안 되풀이하며 읽어온 니체의 책들 속에서 그의 사유를 발견하고, 비록 같은 시대가 아닐지라도 현재에도 통용되는 그의 철학을 통하여 한국 사회의 이면들을 관찰해보고자 했다.

 

  아쉽게도 나는 아직 <차라투스트라..>를 읽어보지 못하였으나 이 책에는 여러 동물들이 등장한다고 한다. 낙타, 사자, 원숭이, 뱀, 독파리, 거머리 등의 동물들.. 그 동물들은 우리가 흔히 오락적으로 보는 동물들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들은 마치 인간의 부조리하고 부끄러운 모습과도 닮아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하고도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장석주는 한국 사회가 동물원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의 내부에 위험과 불안이 비등점을 향해 치솟고, 도덕과 정의, 원칙과 규범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힘과 힘이 으르렁거리며 맞서는 정글'과도 같은 사회가 바로 그가 말하는 동물원 사회다. (장석주 작가 이외에도 인간의 동물에의 비유는 니체와 라작에 의해서도 이야기되어 왔다.)

 

  작가는 책 속에서 니체에 의한 동물의 상징성에 대응되는 우리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본질적으로 파악해나간다. 이를테면 반값등록금은 학벌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며 학벌주의 타파 운동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 (약해진 아버지의 권위로 인해) 아버지의 사랑없이 자란 아이들이 남성성에서 부성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들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중간쯤에 나오는 '이타주의'에 관한 단상은 우리가 동물보다 더 발달된 본성을 확인시켜줌으로서 보다 나은 사회로 갈 수 있는 힌트를 주기도 한다.

 

  다소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본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 끝에 '한국인의 정서(진정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한국인의 '한'과 고통, 가난, 전쟁, 빠른 성장과 같은 역경 속에서 견뎌낼 수 있었던 우리 고유의 힘은 문학 속에서, 노래 속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 월드컵의 붉은 함성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삭막한 사회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역동적인 힘이 한국인에게 내재되있다. 그 힘이 과잉되어 부정적으로 작용하느냐, 긍정적으로 작용하느냐의 길은 똑똑한 사유와 깨끗한 얼굴을 가진 미래의 우리 모습에 달려있다. 많은 것에 대한 불안과 부조리함, 시시각각 행해지는 부도덕적인 일들. 이런 동물원 사회에서 벗어나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로 나아가기 위해서.

 

 

Underline

 

 

 

  - 사람은 모든 동물들을 다 합해놓은 것보다 더 동물적이다. 아울러 그 동물성을 도약대 삼아 더 높은 존재의 위상을 획득하는 게 사람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어떤 다른 동물보다 더 병들고, 불안정하며, 변덕스럽고, 불완전하다.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은 병든 동물이다. 이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틀림없이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들이 합쳐진 것보다 더 대담하고, 더 새로운 것들을 행하고, 더 과감하고, 더 운명에 도전해왔다. 그 자신에 대한 커다란 실험기구인 인간은 최후의 지배권을 위해서 동물, 자연, 신들과 투쟁하는 자, 불만을 터뜨리는 자,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자이다.(니체, 선악의 저편)" 자기 자신을 실험 기구로 쓴다는 점에서 사람과 동물의 차이가 나타난다. 사람은 예속이 아니라 자유를, 노예의 도덕이 아니라 주인의 도덕을, 그리고 마침내 자신에 대한 최후의 지배권을 찾기 위해 동물, 자연, 신들과 투쟁한다. 그 투쟁의 동력은 기꺼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즉 제 운명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 (40p)

 

 

  - 왜 우리가 불안한지 분명해지지 않는가? 파도들은 더욱 난폭해지고 그에 따라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타이타닉'호에 함께 타고 있다. 자크 아탈리는 '타이타닉'이 '우리 사회'라고 말한다. 그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이 예측되지만, 예측의 수단만큼은 예측되지 않는 사회"다. 한국인들이 승선한 '한국호'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바다를 항해한다. 미래는 불확실한데, 그것은 우리 삶이 예측불가능한 위험들 속에 있다는 반증이다. 그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들이 우리의 삶을 집어삼킬지도 모른다. 이 불확실성이 우리 마음에 불안을 키운다. (124p)

 

 

  - 목구멍을 물어뜯는 무거운 뱀을 물리친 젊은 양치기도 웃고, 차라투스트라도 웃는다. 웃는 자가 되려면 먼저 마음에 있는 근심과 걱정을 털어버려야 한다. 젊은 양치기는 그의 목구멍을 물고 몸에 매달렸던 묵직한 뱀의 대가리를 끊고 멀리 내던졌다. 그리고 웃었다. 웃음은 하나의 출구다. 웃는 자는 억압과 불행에서 단숨에 벗어난다. 무거운 것 모두가 가볍게 되고, 신체 모두가 춤추는 자가 되며, 정신 모두가 새가 되는 것, 그것이 내게 알파이자 오메가라면. 진정, 그것이야말로 내게는 알파이자 오메가렷다! (니체, 일곱개의 봉인) 웃는 자는 더 바라지 않는다. 웃음이 바로 궁극의 그것이기에. (137p)

 

 

  - 말 속에도 침묵이 깃든다. 말들은 그 내부에 긴 침묵과 짧은 침묵을 갖고 있다. 건성으로 듣는 사람들은 소리만 듣지만, 깊이 경청하는 사람들은 말 속에 숨은 침묵에 귀를 기울인다. 책은 타인의 말과 세계를, 저 멀리서부터 오는 의미들을 겸허하게 경청하려는 자의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집중하면 할수록 주변 소음을 잠재우는 힘은 강력해진다. 소음이 잦아들고 침묵의 오의에 더 가깝게 다가간다. "생략법의 글쓰기, 불명확한 재현, 단속적인 대화체, 그리고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말없음표(마르크 드 세메트, 침묵예찬)"등은 가장 흔한 침묵의 양태들이다. 말줄임표는 통사적 망설임, 판단유보의 기화다.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는 그 침묵들은 독자를 책 속으로 끌어들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읽히는 침묵. 그것은 음향적 현실에 겹쳐지는 하나의 부주제, 자아에 대한 성찰과 세계 인식의 장소다." (250p)

 

 

Add...

차라투스트라 책은 당분간 읽어볼 엄두가 안난다. 아마 뭔 소린지 이해하지 못할듯.

그러고 보면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이끌어주고, 또 그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이끌어주는 게, 참 독서의 묘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참 어려웠어 니체철학 ㅠㅠㅠㅠㅠㅠ 나중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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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시간은 기억의 '정착제'가 아닌 '용해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After Reading 

 

 

  사람의 머리속에 새겨지는 기억들은 무엇보다도 주관적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

  장기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의 경우엔,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는다는 기분나쁜 기억들과 오래도록 머릿속에 지니고 싶은 행복한 기억이 거의 비슷한 저장기간을 갖는다. 그렇지만 정말 간혹가다가 그 기억들을 왜곡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과연 드물지 또 모르지만) 분명히 있다. 생각하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쪽팔린 짓을 해놓고서 '아, 그정도는 아니었어. 정상적이었어. 보통 사람들도 그럴껄.'하는 경우 혹은 가족이든 친구이든 독한 말을 퍼붓고서 '내가 언제 그랬지.'하는 경우. 그리고 가끔 그렇게 비슷하게 행동하는 주변 사람을 볼 때, 참 사람의 마음이란 의도치않게 제일 간사하고 무서운거라고 느낀다. (나는 정말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와 약속시간에 늦을 때. 그때의 합리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아니다. 사람들은 정말 많은 것을 예감하고 (흔히들 여자들의 감이나 촉이나..) 운좋게 그것을 맞추기는 하지만 예감이 정확하게 맞는 경우는 당연히 드물다. 어쩌다 그 우연이 맞춰진 것을 예감이 정확했다 하고 여긴다면, 인생은 그렇게 복잡한 미로같이 어려운게 아니라 퍼즐처럼 어떠한 사건들이 맞춰져 있는 그런 스릴없고 재미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주인공인 토니의 경우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인 그 말이 정확한 예감이 된 것처럼 그렇게 인생에서 뒤통수를 맞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우연히 누군가의 큰 사건의 불씨를 (후에 돌이켜봤을때) 피운 것처럼 보여지지만, 그는 예감하지 못했다. 멍청한 그는 추측조차 하지 못했다.

 

  이 책의 반전은 기대했던 것보다 충격적이어서 그리고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갑자기 다가와서 나는 반전의 의미를 파악하느라 잠깐 멍해졌다. 책 속의 주인공은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가 그 책을 읽으면서 아무런 단서도 파악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렇게 갈팡질팡하고 답답하게 시간을 보낸다. 시간은 기억의 정착제가 아닌, 용해제다. 우리의 기억은 시간 속에서 이기적이고, 주인공인 토니의 기억도 모질고 모질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너무나 이기적이었다.

지금 아직 인생의 반도 살지 않은 지금, 인생의 끝자락에 갈 때 세상과 나의 마음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또다시 무섭고 겁나기 시작했다.

 

 


 Underline  

 

 

   -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우리를 붙들어, 우리에게 형태를 부여한다. 그러나 시간을 정말로 잘 안다고 느꼈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지금 나는 시간이 구부러지고 접힌다거나, 평행우주 같은 다른 형태로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론적인 얘길 하는 게 아니다. 그럴 리가, 나는 일상적인, 매일매일의, 우리가 탁상시계와 손목시계를 보며 째깍째깍 찰칵찰칵 규칙적으로 흘러감을 확인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초침만큼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 게 또 있을까. 하지만 굳이 시간의 유연성을 깨닫고 싶다면, 약간의 여흥이나 고통만으로 충분하다.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가끔, 시간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로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12p)

 

  - "(...) 우린 그가 죽었다는 것,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것, 그녀가 현재 임신했다는 것, 아니면 과거에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 우리가 뭘 알고 있을까요? 단 한장의 문서, '엄마, 미안해'라고 쓴 한 장의 유서가 있습니다. 최소한 브라운이 한 말은 그렇습니다. 그 유서가 아직도 존재하나요? 폐기되었나요? 누구나 아는 동기나 이유를 넘어서, 롭슨에게 다른 동기나 이유가 있었나요? 그의 마음 상태는 어땠을까요? 뱃속의 아이가 그의 자식이 분명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 사건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선생님. 그러니까 오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롭슨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의 여자친구도 사라져버리고, 어쨌거나 누구도 그를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을 때에, 어느 누가 롭슨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을까요? 문제점이 보이시나요, 선생님?" (35p)

 

  - 누구나 그렇게 간단히 짐작하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예를 들면, 기억이란 사건과 시간을 합친 것도 동등하다고. 그러나 그것은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다. 기억은 우리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또한 시간이 정착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백히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렇게 믿는다 한들 뭔가가 편리해지지도 않고, 뭔가에 소용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을 순탄하게 살아가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실을 무시해버린다. (112p)

 

  - 이십대에는 자신의 목표와 목적이 혼란스럽고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해도, 인생 자체와, 또 인생에서의 자신의 실존과 장차 가능한 바를 강하게 의식한다. 그후로...... 그후로 기억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하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테이프는 자체적으로 기록을 지운다. 사고가 생기면 사고가 일어난 원인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사고가 없으면 인생의 운행일지는 더욱더 불투명해진다. (183p)

 

  - 나 자신이 아둔하고 굴욕적으로 느껴졌던 가장 큰 이유는 - 불과 이삼일 전에 나 혼자 명명했던 대로- '인간의 마음에 영구히 존재하는 기대심리' 때문이었다. 또한 그 이전에, '타인의 경멸을 극복한다는 것의 묘미' 때문이기도 했다. 평소 자만심 때문에 큰코 다칠 일은 없다고 생각해온 편인데, 사실은 스스로 생각한 것 이상으로 혼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유증을 통해 내 소유물이 된 걸 찾겠다고 결심을 하면서 시작된 것이 변이를 거쳐서 뭔가 더 거대한 것, 뭔가 평생에 달하는 내 삶과 시간과 기억, 그리고 욕망과 연관된 것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나는 - 나라는 사람의 어떤 층위에서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 처음으로 돌아가서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피를 역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223p)

 


 Add...  

 

 

  충격적인 반전이라 끝에가서 멍했다. 부커상 수상작이 너무 짧지 않냐는 사람들의 말에

작가는 '독자들은 200페이지나 되는 이 책을 끝에가서 다시한번 또 읽게 될 거라고' 했다.

 역시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도 다시 읽으면 더욱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했던 것보다 책이 조금 어려워서 빨간책방의 힘을 빌렸다. 이동진, 김중혁 두 임자님의 해설은 정말 최고다 :)

 

 

* 네이버 오늘의 탑에 소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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