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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터키의 역사와 그림을 둘러싼 살인에 관하여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After Reading
나는 원래 여러 권으로 나뉘어진 책 (1편, 2편 등..)을 싫어하는 편이다. 아무리 두꺼워도 한 권으로 되어있으면 좋겠는데. 1권을 읽다가 2권으로 넘어갈 때 그 쉬는 타이밍이 싫은건지, 아니면 여러 권을 읽어야만 끝나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싫은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로 긴 이야기는 머리 속에 안들어오니 그런 걸지도. 그래서 <내 이름은 빨강>을 잘 읽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쨌든 그 고민이 맞았다. <내 이름은 빨강>을 읽는 것은 나를 조금 괴롭게 했다. 소설의 굉장한 길이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들어있는 것도 많은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터키의 오스만 제국, 그리고 궁정의 세밀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저 그 자체의 얘기뿐만 아니라 동서양이 혼재된 터키의 역사, 그리고 진정한 그림에 대한 추구, 죽음에 대한 이야기 등 여러 차원에서 다뤄진다. 작가는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 실제로 터키의 전통적이고 권위적인 회화와 개성적이고 자유로운 회화의 대립에 대한 시각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신화와 옛날이야기등을 차용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들이 나올때마다 범인의 정체를 파악하는 원래의 목적은 뒤로한 채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한편으론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친절했던 점은 이야기의 소주제를 통해 화자를 지정해주었던 점이다. '나는 누구다'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죽은 자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법칙을 깨고 죽은 자가 떠올리는 생각과 느낌을 펼쳐놓았다는 것이다. 이 부분 정말로 재밌었다.
이 소설은 첫 부분에서부터 일어나는 살인과 이야기의 끝에서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추리소설이며, 동서양의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흐르고 있는 옛날 이야기와 술탄, 궁정화가들에 초점을 맞춘다면 역사소설일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세큐레와 관련된 사랑을 중점으로 본다면 연애소설, 그림에 대한 세밀화가들의 자세와 진정한 회화에 대해 묻고 싶어진다면 미술소설일 것이다. 작가의 풍부한 지식과 이 소설에 많은 것을 담고자 했던 의욕이 나에게는 집중력, 이해력 부족으로 다 와닿지는 않았으나 (범인의 정체를 찾는데만 몰두하고 있었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의 그 느낌은 어쨌든 대단했다. 혼란스러웠던 모든 것이 한번에 정리되어 덮여졌다. 마지막에야 알 수 있었다. 매력적인 터키의 이야기에 마치 홀린 것처럼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는 것을.
Underline
- 삽화 예술 이전에도 어둠은 있었고, 삽화 예술 이후에도 어둠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색채와 그림, 예술과 사랑을 통해, 우리는 신께서 우리에게 '보라!'하고 명령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한다.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림을 사랑하고, 색채와 시각이 어둠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식한 위대한 화가들은 색을 통해 신의 어둠 속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기억할 줄 모르는 화가는 신도, 신의 어둠도 기억하지 못한다. 모든 위대한 장인들의 작품은 색채 안에서 시간 너머에 있는 깊은 어둠을 찾는다. (1권, 140p)
- "본질은 이야기니라. 멋진 그림은 이야기를 우아하게 완성시켜 주는 게야. 이야기를 보완하지 못하는 그림은 결국 우상이 될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는 우리가 믿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은 그림 자체를 믿게 되지 않겠느냐. 이것은 우리의 예언자가 오시기 전 사람들이 캬베에 있는 우상들을 숭배한 것과 다름없느니라.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면, 예를 들어 이 카네이션이나 저 버릇없는 난쟁이를 어떻게 그림에 그려 넣겠느냐?" "카네이션의 아름다움과 유일함을 드러내면 됩니다." 그러자 술탄은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페이지의 구도를 정할 때, 그것을 세계의 중심에 배치하겠느냐?" "난 두려웠다. 술탄의 생각이 날 이끄는 곳이 어디인지를 보고 한순간 당황했지." (...) "나중에 그대는 난쟁이를 한가운데 그려넣은 그림을 벽에 걸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벽에 걸어선 안된다. 왜냐하면 그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든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벽에 건 그림을 숭배하기 시작할 테니까 말이다. 내가 이교도들처럼 예수가 신이라는 당치도 않은 소리를, 신이 이 세상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는 것을, 그것도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리란 것을 믿었다면, 인간의 그림을 그려 거리낌 없이 벽에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벽에 걸린 모든 그림을 나도 모르게 숭배하게 되었겠지. 이러한 사실은 그대도 알고 있겠지. 그렇지 않나?" (1권, 199p)
- "베네치아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를 본 후, 난 두려움 속에서 깨닫게 되었지. 이제 그림 속의 눈들은 하나같이 비슷비슷하게 생긴 동그랗고 단순한 구멍이 아니라, 빛을 거울처럼 반사하기도 하고 우물처럼 빨아들이기도 하는 우리의 눈과 똑같다는 것을 말이야. 입술은 얼굴 한가운데 있는 찢어진 부분이 아니라, 수축했다 이완하는, 우리의 모든 기쁨과 슬픔과 영혼을 나타내는 그 무엇이고 , 각기 다른 붉은 색을 띤 의미의 매듭이야. 코는 우리의 얼굴을 둘로 나누는 건조한 벽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형태를 지닌 생물이자 호기심 많은 기구지." (1권, 248p)
- 이 멋진 승천 중에 보았던 색들을 무슨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모든 세계가 색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것이 색임을 나는 보았다. 나를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하는 힘이 색에서 나온 것이고 지금 나를 사랑으로 껴안고 세계와 연결해 주는 것도 색이란 걸 깨달았다. 오렌지색 하늘을 보았다. 나뭇잎 색의 아름다운 몸, 커피색 알, 하늘색의 전설적인 말도 보았다. 그 세계는 내가 지난 세월동안 즐겨보았던 그림들과 전설속에 나오는 것들과 똑같았다. 그런데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놀랍고 감탄스러웠다.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은 흡사 내 기억에서 끄집어낸 것 같았다. 기억은 세계의 일부이고, 우리 앞에 펼쳐진 끝없는 시간 때문에 세계는 미래에 나의 경험이 되며, 그런 다음 나의 기억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빛의 축제 속에 있으니 죽음의 순간에 어째서 꽉 끼는 윗옷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편해졌는지도 알았다. 이제부터 내게는 그 어떤 것도 금지되어 있지 않고, 모든 시간과 모든 장소에서 살 수 있는 영원의 시공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2권, 53p)
- 색은 눈길의 스침, 귀머거리의 음악, 어둠 속의 한 개 단어다. 수천 년 동안 책에서 책으로, 물건에서 물건으로 바람처럼 옮겨 다니며 영혼의 말소리를 들은 나는, 내가 스쳐 지나간 모양이 천사들의 스침과 닮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여기에서 당신들의 눈에 말을 걸고 있다. 이것이 나의 신중함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동시에 나는 공중에서 당신의 시선을 통해 날아오른다. 이것이 나의 가벼움이다.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나는 숨기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섬세함은 나약함이나 무기력함이 아니라 단호함과 집념을 통해 실현된다. 나는 나 자신을 밖으로 그려낸다. 나는 다른 색깔이나 그림자, 붐빔 혹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를 기다리는 여백을 나의 의기양양한 불꽃으로 채우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1권, 3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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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등장하는 오르한이 왜 오르한인지 마지막에 나온다 ㅋㅋ
이거 읽느라 한동안 서평을 쉬었더니, 잘 못쓰겠다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