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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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가 아닌 모든 사람의 편이었다 <생의 이면 - 이승우> 

 

 

 

 

 

  이승우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1년전 북콘서트에서, 그때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이름이었지만 객석에 앉아있는 두터운 매니아층을 실감했었다. 그 만남을 위해서 그의 가장 최근 책이었던 <지상의 노래>를 읽었었는데, 장황한 이야기에 그 독특한 문체가 너무 놀라웠던 나는 2시간 거리의 홍대 소극장까지 혼자 발걸음을 옮겼었다. (물론 기사를 써야하는 의무도 있었지만...) 그때의 놀라움을 안고 읽은 <생의 이면>은 놀라움을 넘어서 거의 쇼크였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높지않은 나에게도 이 소설은 탄탄하고 깊이있게 느껴졌다.

 

  소설의 첫 부분은 '작가탐구'의 필자가 작가 박부길을 관찰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박부길이라는 인물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존재, 그리고 사랑의 결핍으로 인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끈을 잡을 수 없었던 인물인데, 그는 우연처럼 혹은 운명처럼 만나게된 신앙과 글과 단 하나의 여자를 통해 구원의 손길을 느낀다. <생의 이면>의 독특한 점은 박부길의 삶을 그가 직접 쓴 허구의 구절로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 박부길의 문학은 그의 삶으로 온통 지배되어 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독특한 서술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박부길'이라는 사람의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감춰진 죄의식과 욕망을 책의 초반 화자가 이야기 한 것처럼 '소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을 통해 일반적으로 보이는 박부길의 인생의 한 쪽 면만이 아니라 '생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는 '모든 소설은 허구이다. 그러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허구이다. 혼돈의 삶에 형태를 부여하기 위한 인공의 혼돈... 그러나 모든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글쓴이의 자전적인 기록'이라고 말한다. 독자인 우리는 '가짜의 인물을 통해 비밀스러운 기쁨을 가지고 작가의 삶을 들여다본다.' 소설 속 박부길의 모습 중 몇몇의 요소와 작가와 닮아있다고 여긴것도 나의 독자로서의 야릇한 엿봄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박부길이라는 인물이 작가의 모습에 허구의 삶이 여러번 입혀진 모습이라고 믿고 있다. 작가 자신의 혼이 온통 담겨있다는 이 책은 세계문학에 버금가는 우리고유의 고전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또한 믿고 있다.

 

   


  사람들은 삥 둘러서서 그가 행동하기만을 주시하고 있었다.그 야릇한 눈길들 속에서 그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자신이, 적어도 그 순간, 거기 모인 사람들에 의해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구별되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들과 달랐다. 그들은 그와 달랐다. 적어도 그들의 표정은 그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너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네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그가 종종 경험하곤 했던, 세계로부터 이탈되어 나가는듯한 걷잡을 길 없는 소외감이 그때 처음으로 그를 찾아왔다. (74p)

 

사람은 현실에 대해 절망하면 신화에 기대고 싶어한다. 신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의 부드러운 왜곡이다. 반영이라면 왜곡의 반영이다. 개별적인 무의식의 꿈을 공식화함으로써 현실을 넘어가려는 욕망, 그것이 신화를 탄생시키고, 신화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84p)

 

모든 예감에 비극의 냄새가 묻어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숙명의 울림 때문이다. 예감은 열람이 금지된 숙명의 세계를 부지불식간에 엿보고만 자의 머리 위에 그 부정에 대한 징벌로 떨어지는 벼락, 그 벼락 같은 천재지변의 떨림이다. 그래서 숙명은 예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모든 숙명은 비극의 광배(光背)를 두르고 있게 마련이다. 숙명적이라는 말이 비극적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11p)

 

왜곡된 진실이라 하더라도 진실일 수 있을까? 물속에 비친 찌그러진 달, 색안경을 쓰고 보는 푸른 달, 그리고 암스트롱이 찍어 보낸 필름 속의 달, 그것들을 달이 아니면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것들은 달이 아니지만 달이다.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 진실이 아니지만 진실인 것, 우리의 검열받은 기억 속의 과거가 그러하다. 그것들은 한낱 인상에 불과하지만, 그 인상을 조작된 것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자, 그러면 어떤 길이 있는가. 나는 망설이고 있다. 길을 못 찾아서? 그건 아니다. 나는 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서로 대립하는 층들의 싸움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115p)

 

나는 기억한다. 세상은 나를 힘들어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그런 것처럼. 그것은 내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 속에 들어와야한다고 세상은 내게 말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자기 품으로 들어오지 않은 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사전에 이해를 확보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119p)

  

 

나타나엘이여,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나타나엘이여, 주위가 그대와 흡사하게 되거나 또는 그대가 주위와 흡사하게 되면 거기에는 이미 그대에게 이로울 만한 것이란 없다.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너의' 집 안, '너의'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 앙드레 지드

 

또 하나의 탐독대상이 늘어났다.... ㄷㄷㄷㄷ 이승우 작가의 전집 다 읽고 싶어짐 ㅠㅠㅠ

이동진 님은 전집 거의 다있던데 역시 멋짐 b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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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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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남은 말, 평생 지고 가야 할 <십자가 - 시게마츠 기요시>

 

 

 

 

 

  학교를 배경으로 왕따문제를 그려낸 책들은 참 많다. 마치 사회의 골치아픈 문제들이 점점 부풀어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흔히들 왕따에 대해서 생각할 때 대부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기 마련인데, '가해자는 왜 왕따라는 문제를 만들어냈으며 피해자는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대충 이런 식으로 이야기 되곤 하는 게 보통 일이다. 그러나 <십자가>에서는 거기서 지나칠 수 있는 방관자에게 더욱 무게를 두고 이야기를 꺼낸다. 방관자, 아무 짓도 하지 않았기에 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숨어버릴 수 있는 존재. 그렇기에 더욱더 찝찝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그들.

 

  책의 초반은 '후지슌'이라는 아이의 자살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유서에 적힌 네 명은 가해자 둘과 '유', '후지슌'이 사랑했던 소녀 '사유'이다. '후지슌'과 같은 반이었지만 다른 동급생들 처럼 왕따에 관여하지 않고 무시하며 생활해왔던 주인공 '유'는 왜 자신의 이름이 그곳에 쓰였는지 답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십자가를 지게 된다.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품은 채 20년을 지나보내고 딱 그때와 같은 나이의 아들을 갖게 된 주인공이 절친의 의미와 부모의 의미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그토록 잊으려고 애썼지만 잊지못한 그 십자가가 단지 고통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 생각해보았다. 그가 십자가를 메고 온 것일까, 십자가에 그가 지탱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중간에 완전히 내려놓으려 애썼다면 그 십자가의 무게는 더욱더 무거워졌을 지도 모른다. 그가 길을 걸어 언덕을 올라올 수 있었던 것, 그것은 함께하고 있는 십자가의 모습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유'가 바라본 십자가를 지고 올라선 언덕, 그리고 후지슌이 꿈꾸던 여행의 종착점인 '숲의 묘지'. 아마도 그들은 그곳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응어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독자들, 혹시나 같은 경험을 보고·듣고·행한 독자들 또한 아픈 기억을 삼키고 자신이 십자가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실제로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때? 너도 알고 있지?"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학급 회의나 도덕 시간에 일방적으로 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지?"라고 물었다면 우리는 모두 "예,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으리라. 그 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겠는가. 신호등의 색깔은 파랑이 전진이고 빨강이 멈춤이다. 모두 알고 있는데도 신호를 무시한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30p)

 

  - "나이프의 말에서 가장 아플 때는 찔린 순간이야." 그러나 십자가의 말은 다르다고 했다.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어느 쪽이 더 낫냐고 묻지는 않았다. 물었다고 해도 대답할 수 없었으리라.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 대신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어느 쪽이야? 넌 나이프로 찔렸어? 아니면 십자가를 등에 졌어?" (75p)

 

 - 그 애의 죽음도, 우리가 그 애에게 한 일도 마음의 한쪽 구석에는 계속 남아 있었다. 다만 그곳에 뚜껑이 생겼다. 처음에는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억지로 닫았지만, 어느새 뚜껑이 딱 맞아서 그냥 내버려두어도 열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정말로 열리지 않는지 살며시 뚜껑을 들어올리는 게 인간의 본성이었다. (138p)

 

  - 어느 날, TV에서 범죄 드라마를 보고 깨달았다. 그 드라마에 우리를 닮은 2인조가 나온 것이다. 공범자. 그렇다, 우리는 공범자였는지도 모른다. 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는 2인조처럼 우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쫓아오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150p)

 

  - 책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도쿄에 와서 또 새로운 페이지를 펼친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몇 페이지를 읽는 사이에 가끔 주인공을 잃어버렸다. 앞으로 넘길 페이지에 주인공이 제대로 나올지 불안해지기도 했다. 애당초 우리가 보고 있던 책은 정말로 같은 책이었을까? (283p)

 

  - 사람의 기억은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의 사건이나 한 사람에 얽힌 추억이 강물에 떠내려가듯 조금씩 멀어지고 잊힌다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충분히 멀어졌다고 여겼던 추억이 갑자기 등골이 오싹할 만큼 생생하게 다가오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이 파도에 씻기듯 한꺼번에 먼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바다는 잔잔할 때도 있고 거칠어질 때도 있다. 밀물일 때도 있고 썰물일 때도 있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추억은 조금씩 바다로 떠내려가서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그 때 우리는 겨우 하나의 추억을 잊어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284p)

 

    잊혀지지 않는 마지막 페이지.

  자신도 모르게 십자가를 지게 되었을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힐링의 책, 굳굳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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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서툰 사람들
박광수 지음 / 갤리온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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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생각을 추억하다 <참 서툰 사람들 - 박광수>

 

 

 

 

 

 

  어렸을 때 읽었던 광수생각 시리즈를 기억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읽었을 정도로 열풍이었던 시리즈, 그리고 너무나 개성있었던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져버린) 글씨체가 매력있었던 만화 광수생각. 사랑에 대한, 살아가며 소소한 것들에 대해 광수 캐릭터의 모습으로 들려주던 광수생각은 정확하진 않지만 희미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참 서툰 사람들>은 동네에 있는 중고 서점에서 만났다. 어린 아이가 쓱쓱 끄적이고 그린 것 같은 표지 때문에 내 손에 잡히게 되었던 이 책. 처음엔 광수생각 처럼 만화로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만화보다는 그림, 포토 에세이 같은 느낌이다. 그 이유가 책 속 어딘가 빼꼼하게 언급되어있는데, 박광수 작가가 이젠 그림보다 글이 더 좋단다. 그래서 그런지 시, 에세이, 포토 에세이 등 이 책에는 많은 글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사실 그 글 중에선 좋은 글도 있지만 가끔은 보기 민망했던 글도 있다. 하긴, 그래서 서툴다는 표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왠지 계속해서 넘기고 있었던 건, 옛날 광수생각 시리즈의 추억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모습들이 조금씩 지워져가는 듯 해서 아쉬운 마음이 많았던 이 책. 좋아하는 광수체도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너무 많이 쓰여서일지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참 예쁜 책이긴 했지만 광수생각의 추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겐 왠지 쬐끔.. 아쉬울 것이다. 이 아쉬운 책이 작가의 새로운 도전과 함께 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긴 하지만..

  

 

 

   -  어떤 경기나 승부에서 이기려면 능숙함이 필요한 법인데, 내게는 그런 능숙함이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만일 오늘이 어제와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라면, 이렇게든 저렇게든 다르게 해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내게 오늘이라는 하루는 늘 생경한 새로운 출발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제의 나도 서툴렀고, 어제의 나도 서툴렀고, 불행히도 오늘의 나도 서툴다. (프롤로그)

 

  -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힘들 때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하지만 나는 그 생각에,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 (친구이거나 타인이거나)이 울 때 같이 울어 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누군가를 걱정해 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진짜 힘든 일은, 진짜 친구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친구가 잘 되었을 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주는 일이다. (51p)

 

  - 우정이라는 그릇, 사랑이라는 그릇, 믿음이라는 그릇, 신의라는 그릇. 그 그릇들은 언제나 소중히 다루고, 잘 닦아야 하며 깨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각각의 그릇들은 품 안에 있을 때는 모두 아름답고 견고해 보이지만, 행여 잘못 다뤄 깨지기라도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깨지기 전의 그릇은 아름답고 소중하지만, 깨진 그릇은 여지없이 칼날이 되어 내게 향하기 마련이다. 뒤늦게 후회하며 깨진 그릇을 어떻게든 붙여 보려고 애쓰다 손을 베이면 그제야 비로소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은 품 안에 있을 때 소중히 여길 것. 깨진 그릇에 손을 베이고 나서야 배운다. (서툰 이야기 5)

 

  - 당신과 헤어진 날 마치 군대에서 나눠 준 건빵 두 봉지를 먹은 것처럼 목이 메었다. 목이 메어 어느샌가 내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고개를 드니 밤하늘에 내가 그동안 흘린 눈물만큼이나 많은 별이 총총히 박혀 있다. 당신과 헤어진 날, 건빵 두 봉지를 먹은 것처럼 목이 메어 온 날, 밤하늘에 걸려 있는 별사탕을 세 개 따 먹는다. 아무도 모르게. (201p 별사탕)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며 체념을 배우는 일이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내가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을 인생에서 쓸쓸히 지워 나가며 스스로에게 체념을 가르치는 일이다. 해를 거듭하며 나이를 먹으며 깨달아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기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지극히 간소한 삶의 정답. 생의 끝까지 가지고 가면 결국 제 스스로 힘들고야마는 지극히 간소한 삶의 정답. (207p 너의 결혼식장에서) 

 

 

 

아마도 이런 모습을, 광수생각 독자들은 기다리고 있었겠지?

그런 독자들을 위해 2012년에 광수생각 시리즈가 또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가가 하고 싶은 '글'과 독자가 바라는 '만화'가 함께한

광수생각 : 오늘, 나에게 감사해. 이 책은 조금 더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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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부터의 혁명 - 우리 시대의 청춘과 사랑, 죽음을 엮어가는 인문학 지도
정지우.이우정 지음 / 이경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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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탄탄한 지도를 갖기 위한 <삶으로부터의 혁명 - 정지우, 이우정> 

 

 

 

  청춘, 가장 파란만장한 꿈을 꿀 수 있고 '청춘을 지나보낸 이들이 그리워 하며 바라보는' 계절이다. 요즘에 나오는, 흔히 청춘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청춘 조언서'들은 집채만한 파도같은 현실에 휩쓸리는 청춘들에게 감정적인 위로를 던지고 부드러운 손길로 다독인다. 한번쯤은 그런 위로도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혼동되는 청춘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하지만 넘쳐나듯 쏟아져나오는 그런 류의 책들. 그리고 그 책들을 비판하는 책들.. 청춘은 어떤 말을 들어야할지 갈 수록 갈팡질팡하다.

 

  <삶으로부터의 혁명>은 책과 영화, 많은 사상가들의 말과 함께 '삶을 중심에 두고 현실을 성취하는' 일에 대한 중요함을 강조한다. 현실과 삶 그 둘을 둘 다 버리지 않고, 대신 삶에 무게를 조금 더 두어 살아가는 방법을 많은 예시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청춘의 문제적인 모습인 잉여, 허무, 스펙에서의 강박..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었던 현실의 많은 장애물들에 넘어지지 않을 힘을 깨우쳐준다. 저자들은 강조한다. 자아에 대한 세 가지 인식틀을 확실하게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 세가지 인식틀은 우리 내부의 현실에 반응하는 부분인 '주인자아'와 그가 내린 명령을 충실히 수행할 '노예자아', 그리고 그 관계속에 갇혀있는 우리에게 그것이 옳은 것인지 항상 묻고 있는 '제3의 자아' 분류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의 완성도는 그 셋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 그리고 마지막 '제3의 자아'가 얼마나 발전된 모습으로 함께하는지에 따라 높아진다. 그 중요한 '제3의 자아'의 결단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책, 영화, 위인들의 삶 등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다.

 

  우리의 삶은 결국 내 자신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삶을 향해 열려있는 우리 자신을 만들어나갈 때만이 우연처럼 행복한 삶이 만들어질 것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나'를 가장 먼저 바라보고 사는 것. 그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가장 큰 인생의 해결점이다. 가끔은 흔들리고 부정적이고 서투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자신을 바라보고 '매일을 인식하고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실한 지도를 가진다면' 우리의 인생의 마침표를 찍을 때 탄탄하게 그려진 과거의 길을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 청춘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찾아나가기를 바라는 열정 멘토들의 말들 속에서도, 청춘은 함정에 빠진다. 웬만해서는 청춘도 곧장 '맹목적인 자기계발'에만 매달리는 현실주의자나 세속주의자가 되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들은 대신 조금 다른 꿈을 꾸고 싶어 하고, 자기만의 열정을 가져보길 원한다. 그것이 설령 현실에 의해 녹초가 될지라도, 갈기갈기 찢어질지라도 한번 뿐인 청춘 속에서 무언가 남다른 것에 자기를 바쳐보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렇게 청춘 안에 머물게 되는 '꿈'이나 '열정'과 같은 단어는 멘토들의 응원 속에서 변질된다. (31p)

 

  - 우리가 흔히 '현실의 압박을 느낀다'라고 할 때 현실은 우리의 바깥 보다는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즉, 현실은 우리를 바깥에서 억압하고, 공격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나 혹은 우리가 거기 참여하는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 안에서 우리를 채우고 있는 어떤 것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 언제든 우리 안에서부터 우리를 향해 오는 것, 우리를 삼키며 내부로부터 분출하는 것에 가깝다. 실제로 현실이 정말로 우리의 밖에서 우리를 압박해 들어노는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54p)

 

  - 길을 걸으며 언제나 의식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타자'의 시선이다. 그 타자는 진짜 사람이 아니며, '우리 안'에서 만들어진 어떤 집단적 형상의 시선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 시선에 시달린다. (150p)

 

  - 서구는 언제나 활동성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해왔는데 20세기에 이르러 동양을 발견하면서 동양적인 것이란 오로지 정적이고, 고요하고, 활동하지 않는 초월적 차원을 지향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노자만 하더라도, 과연 정말 교외에 물러서서 바라만 보는 삶을 숭상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오히려 노자가 주장했던 것은 '현실의 활동성'이 아닌 다른 활동성, 즉 '삶의 활동성'은 아닌가? 노자의 무위(無爲)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세상의 자연성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노자는 무위에만 빠져있는 게 아니라, '무위를 통해 행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는 오히려 그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흐름을 타는' 어떤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 새로운 활동의 가능성에 대한 추구라는 여지를 더 강하게 품고 있진 않을까? (203p)

 

  - 여행은 많은 이들에게 '삶에 대한 새운 기대'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여행은 그 자체로 '삶을 향한' 작은 시도이며, 거기에서 우연히 만날지 모르는 타인은 기적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우연'이라는 게 단순히 '우연 그 자체'이기만 한 게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내부로부터 촉발되는 어떤 것임을 알게 한다. 즉, 우연은 우리가 여행에서처럼 '삶을 향해' 열려있을 때, 그리고 삶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향해갈 때, 어느 순간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244p)

 

 

 사실, 읽는데 순탄치는 않았던 책, <삶으로부터의 혁명>

 거창한 제목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져올지는 모르고 읽었지만 지금 고민하고 있는 20대들이 이 책을 정독하고 가슴에 담아둔다면, 

 자신이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하는지만큼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청춘들에게 필요한 건, 해답이 그대로 제시되 있는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 아니라 그 해결책을 직접 찾아나갈만한 용기를 주는 이런 인문학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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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나라
가쿠타 미츠요 지음, 임희선 옮김, 마츠오 다이코 그림 / 시드페이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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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꺼내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잃어버린 것들의 나라 - 가쿠타 미츠요> 

 

 

 

 

언제 어디서 없어졌는지도 모를, 그런 것들을 도통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내 경우에는 양말 한쪽, 머리에 꼽는 실핀, 고무로 된 머리끈들이 그런 것들이다. 도대체 그런 것들이 어디에 있는 거야 .. 하고 생각했을 때, 천계영의 만화책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모여사는 공간이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심어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을 보니 그 만화의 온갖 잃어버린 소품들이 둥둥 떠다니던 장면이 떠오른다.

 제목을 보고 상상하는 것처럼 책에는 다소 판타지스러운 요소들도 함께한다. 주인공 나리코가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다던지, 지독한 사랑때문에 생령이 된다든지 혹은 '진짜'세상에 있는 것과는 다른 분실물 창고 같은 것들이다.

 

 잃어버린 것들.. 주인공 나리코에게 그 잃어버린 것들의 모습은 단순히 사물이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세하고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들도 포함된다. 그것을 찾는 여정을 보면서 왠지 모를 공감이 들었고 가끔은 아련하고 찡한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토록 담담하게 써내려가던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조금씩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분출하는 것 같았다.

 

 세상을 살다가 우리가 가끔은 잃어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두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가슴 속 작은 방에 살고 있고, 언젠가 꺼내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것들의 자리에 지금, 내가 있다는 것이다.'

 

 

- '응? 난 어디서 여기까지 멀리 온 걸까?' 아주 멀리서 여기 온 기억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니까 어디 먼 곳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여기까지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사랑을 하게 되면, 아아 그렇구나, 바로 이것 때문에 내가......." (40p)

  - 쓰레기 버리는 곳에 버려져 있는 곰 인형도, 나뭇잎들도, 야채가게 앞에 진열된 형형색색의 야채도, 새들도, 고양이도, 밥그릇도, 문고리도, 이제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가끔씩 나는 가다가 서서 "저기......" 하고 작게 말을 걸어보았다. 무언가 나에게 대답을 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흔들릴 뿐이었고, 처마 밑에 달린 풍경은 산들바람에 맞춰 '딸랑'하고 울릴 뿐이었다. (51p)

  - "어, 안 보이네, 어디 갔지? 했던 것들이 실은 모두 사라져버린 게 아니라 거기로 옮겨져 있는 거야. 거기 가면 틀림없이 내 카메라도, 네 왕관도, 그리고 어쩌면 유키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지. " (76p)

  - 언젠가 이게 그리운 추억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간이 오래오래 흘러서 내가 생령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내가 빙의했던 사람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게 되어버린다 해도 말이다. 그래도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한밤중 육교에서,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중요할 수도 있고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알사탕처럼 아름다운 달을 다 같이 올려다보았던 일, 바로 이 순간을 틀림없이 그리운 추억으로 떠올릴 것이다. (145p)

 

 

책의 일러스트가 굉장히 예쁘고 몽환적이라고 느꼈는데, 알고보니 그림을 먼저 그리고 거기에 글을 덧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과 글의 분위기가 너무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이 책도 읽어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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