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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책 읽기 - 그 시절 만난 책 한 권이 내 인생의 시계를 바꿔놓았다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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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진심어린, 가벼운 책 길잡이 <젊은 날의 책읽기 - 김경민>

 

 

 

 

 

 

  요즘 들어 '책 목록이 가득 들어있는 책'들을 여러 권 읽게 된다. 이런 책들은 좋은 책 목록과 더불어 그 사람의 책에 대한 생각마저 엿볼 수 있으니 유익하기도 하고 얻을 것이 많다. 대충 그러한 책들에는 어려운 고전들의 목록들이 페이지마다 한 켠에 자리하고 있고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을 인용하여 삶의 대한 자세와 같은 것들을 일깨워준다.  

 

 

    처음에, 내게는 그닥 특별할 것 같지도 않고, 내가 봐왔던 책을 소개하는 책들에게서 특별히 벗어나지도 않을 것 같았던 이 책의 목록을 보고 나니 '왠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피어올라오기 시작했다. 일단 책들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했다는 사실이 좋았다. 어려운 고전부터 교양서, 에세이, 영화, 소설, 글쓰기, 연애 소설.. 이런 장르들을 갖고 있는 책들은 나에게 익숙한 제목도 많았지만 평소엔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아니면 몰라봤던 책들이어서 놀라움을 더했다. 뭐, 여기까지는 그닥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번째, 저자의 솔직하고 당당한 성격이 드러나는 '글'은 왠지 묘하게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그녀는 책 목록을 통해 뭔가를 가르치거나 교훈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좋았던 책들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이끄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서 어려운 책이 나와도, '정말 좋은가?'하고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책에도 위화감을 느낄 새 없이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젊은 날의 책 읽기>는 정말로 '젊은이'들이 읽는다면 좋을 책이다. 물론 나이에 대한 표현뿐만이 아니다. 청춘을 걷고 있는, 삶의 가르침을 얻을 젊은이 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연륜이 깊지 않은, 말 그대로 독서초보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책 목록또한 그리 부담되거나 어려운 것들이 많지 않으니 (단순히 많지 않다는 것. 있기는 있다. 예를 들어 명상록, 오이디푸스 왕 등....) 이 책을 독서 길잡이로 잡아 시작해나간다면 언젠가 독서향기에 물씬 빠져있는 길목에 서있지 않을까. 

 


 

   -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신경숙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간혹 심수봉의 노래를 듣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심수봉 특유의 목소리가 그러하듯 나에게 신경숙 특유의 문장은 살짝 '퇴행'의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것이 적당한 선에서 알맞게 표현되어 감미롭고 따뜻하다. 또한 심수봉 노래가 트로트라기보다는 그냥 '심수봉'노래로 느껴지는 것처럼 신경숙 소설 또한 하나의 독립된 장르 같다. 그냥 '신경숙 소설'이라는 장르로 말이다. (59p)

 

  - 간혹 글깨나 읽고 쓴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녀 (한비야) 특유의 문체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있지만 난 그녀의 글에서 숨 쉬고 있는 건강함이 좋다. 일단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술술 읽힌다. 그녀의 글을 읽노라면 '읽기에 쉬운 글이 쓰기엔 어렵다'는 헤밍웨이의 말이 떠오른다. 글을 쉽게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써본 사람은 안다. 안타깝게도 자신이 쓴 글이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독성이 있는지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지만. (85p)

 

  - 살다보면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 못지않게 그 사람을 '언제' 만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거엔 별 느낌이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언제 읽었느냐가 그 책이 어떤 책이냐 못지 않게 독서의 질을 결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45p)

 

  - 당시 대학 2학년이었던 나는 학교 도서관 서고를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눈에 띈 <풍경과 상처>라는 책을 다른 책 몇 권과 함께 대출해 집에 가져왔고, 늘 하던 대로 자기 전에 누워서 읽을 요량으로 첫 장을 열었다. 그런데 몇 페이지 읽다 말고 나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을 수밖에 없었다. 낱낱의 문장들에는 온통 고압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고, 난 그 자리에서 감전된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김훈)의 문체는 그만의 개성과 자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래서 독자들에게는 절대 친절하지 않아보였지만 난 그때 예감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난 그의 충성스러운 독자가 되리라는 것을. (249p)  

 

 

 

책을 소개하는 에피소드마다 이렇게 책 소개와 함께하고 있어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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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한국사를 조작하고 은폐한 주류 역사학자를 고발한다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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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실적인, 고쳐묻는 역사해석을 위하여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이주한> 

 

 

 

 

   '이 책은 발칙하다.' 아마도 국사학계를 주름잡고 있는 사람들에는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제목부터 그렇듯이 아예 '대놓고 까는'식으로 논지를 편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의 이름들도 대놓고 이야기한다. 가려져있는 것들에 속 알맹이를 보지 못했던 독자들은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남에 통쾌하다.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역사서이기는 하지만 얘기하려는 것은 '한국 주류 역사학자들 = 식민사학'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왜 작가는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표지부터 엄포를 놓은 것일까. 사실과 역사적 맥락에서 정확한 인식을 추구하는 역사 비평가인 작가는 오늘날의 한국사를 '죽어있다'고 본다. 일본과 중국에 의해서 조작되어지고 은폐된 역사, 그 식민사관이 교묘하게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스승들을 극진히 따르던 이병도와 그의 수많은 제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사실적인 역사를 탐구하고 그대로 발표할 수도 없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라는 장소에서. 잘못된 역사는 답습되고, 답습되면서 서서히 죽어간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식민사관에 기초한 한국사가 주류 한국사로 자리잡히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주 성실하게 우리의 역사가 신화에 의거한 매우 길고 위대한 역사라는 것을 가리고 또 가려버린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막고 폭력을 휘두르니 결국 '역사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해를 돕고자 책 속의 식민사관의 전제와 핵심 명제를 열거하자면

1. 한국 역사는 짧았고, 영역은 좁았다. 2. 한국은 고대부터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3. 한국 민족은 주체성이 없어 타민족의 영향과 지배를 받아야 발전했다. 4. 한국은 천여 년간 사회적, 경제적으로 정체된 사회였다. 5. 한국 민족은 열등하고, 사대성과 당파성이 심하다. 6.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필연이고 당연하다. 7. 한국은 일본 통치에 감사해야 한다.

  진보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작가의 비평이 다소 자극적인 감은 있지만,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열이 오르는 비밀들이 가득한 책이다. 자신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철저히 식민사관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주류 역사학자는 은밀히 숨어있다가 특히 반복되는 독재와 군사정권에서야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나 권력에 의해 모든 것이 장악된다는 것이 안타깝고 슬프다. 언제나 그래왔듯, 작가는 다시한번 민중에게 말한다. 또다시 '희망을 사실로 만들고, 우리가 바꿔나가보자고. 민중이 주역인 역사로 변화시켜보자고'. 가능할까? 일단 중요한 건 사실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 믿는다.  

 

 

   자신을 향한 일본 학자들의 사랑이 이병도는 너무 자랑스럽다. 그들이 왜 식민지 청년을 그렇게 사랑했을지 의문을 갖지도 않았다. 자신같은 인물을 사랑해줘서 그저 감격해 눈물이 날 지경이었을 것이다. 이병도는 자신의 말대로 당시 일본 학계의 최첨단을 걷는 두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그들에게서 역사를 배웠다. "당시 일본 학계의 최첨단"은 무엇을 의미할까? 현재에도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은 일왕을 학문적으로 다루거나 거론하는 것을 피한다. 목숨의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천황제국주의에 입각해 침략 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활국사관에 충성하지 않는 이가 일본 학계의 최첨단을 걸을 수는 없다. (37p)

 

  우리는 어떤 텍스트도 글자 그대로 읽어서는 안 된다. 각자 나름대로 문장의 맥락을 해석해야 한다. 위에서 보듯 한국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편찬한 사전에서도 김원룡을 극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식민사학이 사학사 무대로 넘어가기는커녕 아직도 한국 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데 있다. (61p)

 

  "요컨대, 조선 교육은 이치를 캐는 자를 되도록 줄여야 한다." 이것이 조선총독부의 교육방침이었다. 한마디로 천황에 대한 노예 의식을 가슴 깊이 새기는 교육이었다. (63p)

 

  상상력이야말로 신화를 푸는 핵심적인 열쇠다. 신화가 형성된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조건, 고대인의 관념과 정서, 그들의 논리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발동해야만, 거기에 응축된 고도의 상징들을 이해할 수 있다. 단군조선의 역사는 신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의 반영이자 사화 史話다. 신화와 역사는 상반된 개념이 아니다. 신화를 허구로 보는 폐쇄적 사고와 단정적인 태도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일제가 의도한 것도 이런 역사 인식이었고, 이런 가치체계를 주류 식민사학계는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다. (120p)

 

 하나의 정설만 있어야 하는 한국사는 이미 역사도 아니고 학문도 아니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으니 연구할 필요가 없다. 아니, 연구해서는 절대 안 되는 역사가 한국사다. 역사는 늘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또한 학문은 "물어서 배운다"는 뜻인데, 어쩌다보니 한국사는 따지지 말고 외워야하는 비학문이 되었다. (258p) 

 

 

역사는 인내심이 깊다. 진실이 가려져도 역사는 자신을 지킨다. 누군가 진실한 역사를 발견하길 끈질기게 기다린다.

소설 <큰바위 얼굴>에서 주인공 어니스트는 결국 마지막에 자신이 큰 바위 얼굴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큰바위 얼굴이다. 우리는 진실을 왜곡할 이유가 없는 어니스트Honest들이다. 우리는 남을 지배하기 위해 거짓을 만들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고, 정직한 역사를 갈망한다. 러시아 속담처럼 "우리가 기다린 것은 우리였다." (354 저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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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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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삶에 대한 총정리, 그리고 비체험의 위성

 

 

 

  

  가벼움 속의 무거움, 이 책을 알게 되고서 계속 했던 생각이었다. 도대체 이것의 구분을 통해 작가는 뭘 말하려는 것일까. 무작정 읽고 싶은 책으로 분류해놓긴 했지만 언제쯤 읽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첫번째 독서 후 감상을 남기려 했지만 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다룬 이동진의 빨간책방 13회를 듣고 어느정도 생각이 자리잡힌 것 같다. 그리고 두번째 독서를 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때쯤에야 조금 더 보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쨌든 이 다음은 '한번' 읽고 들은 뒤의 정리다.

 

  닳고 닳도록 읽혀지는 고전이자, 쿤데라라는 이름하나로 대표되는 이 책은 언뜻 보면 네명의 사랑이야기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대단한 여성편력의 소유자인 토마시와 그를 운명이라고 믿는 테레자, 그리고 토마시의 연인인 사비나, 그리고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프란츠. 그들의 관계, 그리고 가벼움과 무거움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줄타기 속에서 삶과 사랑의 변화, 역사 (프라하의 봄이라는 배경), 존재, 권태와 허무, 욕망 등 소설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소재를 이야기 속에 품어두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책에서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계산하는 단위는 '질량이 아닌 무게'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에 작용하는 관계와 함께 소설 속 주제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에 대한 해답은 아마도 그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우연들을 필연으로 바꾸기 위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쿤데라가 소설 속에서 직접 언급하기도 했던 '키치'라는 표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에 대해 처음에는 유머와 가벼운 시선등으로 생각했지만, 빨간책방의 임자 둘의 해석에 의하면 '키치'는 세상에 대한 풍부한 다의성을 배제하고 '이것은 이것이다'하고 굳게 믿는 통념이나 편견을 말한다.

 

  쿤데라 전집 중 <소설의 기술>에 의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첫 제목은 '비체험의 위성' 이었다고 나와있다. 비체험의 위성. 우연을 반복하는 이 비체험의 위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인 지구를 가리킨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이면 영원히 끝인 우리의 삶,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비체험의 위성에 우리가 살고 있는 까닭이다.

 

 

  

   -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여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덥수룩한 머리가 끔찍한, 침울한 베토벤도 몸소 그의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을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 (58p)

 

  -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 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80p)

 

  - 사비나의 삶이 음악이었다면, 중산모자는 그 악보의 모티프였다. 이 모티프는 영원히 되풀이되었으며 매번 다른 의미를 띠었다. 그 모든 의미는 마치 물이 강바닥을 스치고 지나가듯 중산모자를 거쳤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것은 헤라크레이토스의 강바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물에서 두 번 목욕하지 않는다!" 중산모자는 강바닥이었고, 사비나는 매번 다른 강물, 다른 의미론적 강물을 보았던 것이다. 같은 대상이 매번 다른 의미를 야기했지만 그 의미는 이전의 다른 모든 의미와 공명을 일으켰다. (마치 하나의 메아리, 꼬리를 무는 메아리들처럼) 새로운 체험은 보다 풍부한 화음으로 공명을 일으켰다. (143p)

 

  -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191p)

 

  -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보헤미아 역사와 유럽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체험 부재가 그려 낸 두 밑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344p)

 

  - 키치는 인간들의 기억 속에 깊이 뿌리내린 핵심 이미지에 호소한다. 배은망덕한 딸, 버림받은 아버지, 잔디밭 위를 뛰어가는 어린아이, 배신당한 조국, 첫사랑의 추억. 키치는 백발백중 감동의 눈물 두 방울을 흐르게 한다... 모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은 오로지 이 키치 위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388p)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위대한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소설들이 많은 것 같다. 그것들에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결국 하나로 모이는 건 한번의 인생 속 의미를 파악해서 살아가는 것인듯... 그나저나 쿤데라는 정말 노벨문학상을 언제 받을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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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다니엘 포르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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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 다니엘 포르> 유쾌한 블랙 코미디? 음...

 

 

 

 

 

  나는 항상 화제였던 소설을 뒤늦게 보곤 한다. 이 책도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여러개 보다가 제목만 보고 흥미가 생겼었는데, 우연히 이웃님께 받게 되었던 책이다.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언뜻 보면 별 다를 것 없는 소설일 것 같지만 형식상으로 굉장히 재미있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정말로, 책의 제목처럼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가 등장한다는 것. (비록 한글로 번역이 되면서 거의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를 볼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 번역가의 말) 참 새롭고 기발한 사실이다.

 

  책 속의 주인공이 애인에게 '겨드랑이 좀 닦아라!'는 말을 듣고 차인 후 길 위에서 사고를 목격함으로써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나서 자그마치 한 페이지에 거의 하나씩 죽음을 만나는 상황이 연출된다. 사실 말만 죽음이지, 실질적인 죽음 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죽음의 대상들이 등장 한다. 주위의 사람들, 유명인, 가족, 동물, 망가진 전화기.. 처럼. 그러던 어느날, 유명 소설가를 꿈꾸는 이 주인공이 이렇게 죽음의 소식들로 떠들썩한 생활 속에서 역시 또 다른 죽음의 소식인 연쇄살인 사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더군다나 그 사건에 말려들기까지, 도대체 이 사람 어떻게 되는 걸까?

 

  현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 소설은 죽음이란 단어로 가득차있지만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다. 죽음의 대상들 모두가 그리 무섭고 암울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재치를 이용해서 블랙 코미디적인 표현으로 분위기를 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한국 정서상 외국의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잘 이해하기 힘들긴 하다. 가끔가다 나오는 어이없는 말들에 피식하고 웃게 하는 이것들이 작가가 의도한 웃음이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간게 현실.. 독특하고 재밌는 문장이 가득차있는데도 가끔 흐름을 잃기도 했다는 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범인의 모습은 좀 웃겼다는 것에 위안을 받고 책장을 덮었다.

 

 

  내게 친구가 있던 시절, 한 친구가 습관처럼 하던 말이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난 내 주위에서 한동안 아무도 죽지 않으면 불안해."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운이 좋은 셈이었다. 최근에 나를 둘러싸고 연이어 일어나는 일들과 그에 수반된 감정의 기복에 비추어 볼 때 난 우울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머지않아 내 인생에 불운이 끼어들 틈은 더이상 없을 터였다. (41p)

 

  이제 나는 그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았다. 쿨함 그 자체였다.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곧 삶이고, 삶은 구속되거나 제어당하는 일 없이 우리 모두의 의지보다 더 강력한 논리가 뒷받침하는 흐름을 따라갈 뿐이다. 혼돈은 삶의 원천이며 질서는 습관을 형성할 뿐이다. 누가 이런 말을 했냐고? 인용문 사전을 참고하기를! (56p)

 

 "어쨌든 참 고마워!" 그녀는 수화기에 대고 역정을 냈다. 마치 나에게 일말의 기대라도 했던 것처럼. 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빠른 속도로 물이 차는 욕조를 보는 듯했다. 욕조는 나를, 물은 죄의식을 의미했다.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다(84p)

 

  내 삶은 한심하기 그지없는 해체 과정이었다. 이 나이에 현실을 외면한다는 건 아무 소용 없는 짓이다. 어린아이같은 순진함,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 대개들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 내가 규정지을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왜 "절망적으로"와 같은 진부한 문구가 슬픔을 나타내는 절대적인 표현으로 내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런 걸 정말로 느낀다면 끔찍할 것 같았다. 내게 속했던 그 무언가를 죽여버린 건 나일까? 혹은 내 일부분이 자살하듯 그 무엇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일까? 어느쪽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샴고양이 시체처럼 내가 끌고 다니던 내 안에 어떤 것이 죽어버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133p)

+ 이 책은 전통 추리물 (애드거 앨런 포)을 패러디한 소설이기도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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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로망스
김민관 지음 / 고려의학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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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약'이라는 상상, 즐거운 상상 <슈퍼맨 로망스 - 김민관>

 

 

  '만약 당신이 슈퍼맨을 동경한다면'이란 물음으로 시작하는 <슈퍼맨 로망스>. 요즘 슈퍼맨이나 히어로, 동화 속 누군가를 동경하는 사람이 있을까? 머리 속에는 스트레스와 해야할 일들이 가득차 있는 현대인들의 삶에 '만약'이란 가정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재밌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게 할 것만 같다.

 

  실제로 작가는 난처한 상황이 되면 '만약에'라는 공상을 하다가 공상가라는 별명까지 얻게 될 정도로 습관이 되버렸다고. 그래서 그런지 이 책 속에는 신기하고 터무니없는 상상들로 시작한 귀여운 이야기들이 많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존재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코를 자판기에서 뽑아서 붙일 수 있다면, 짝 없는 양말들이 모여있는 곳을 발견한다면,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장치가 존재한다면... 이런 이야기들은 따스하고 유쾌해서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야기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보면 '만약'이라는 상상이 얼마나 즐거운지 생각하게 된다. 친구랑 웃기는 상상을 이야기 하면서 픽 하고 웃을때처럼 말이다.

 

  마치 동화 속 이야기를 생각할 때 처럼, 우리 안에 숨겨져있던 동심을 슬쩍슬쩍 끄집어내는 책. 각각의 짧지만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들에 '어, 이런 상상도 할 수 있구나'하고 놀라게 하는 책. 한번은 생각해본 상상이 이야기로 펼쳐진 모습을 보고 흐뭇해지는 책, <슈퍼맨 로망스>. 이 책을 만들어낸 작가의 머릿속에 어떤 것들이 들어 있을지 더더욱 궁금해진다.


 

 

  

   나는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어떤 이유를 통해 할 일 없이 놀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어쩌면 그 사람이 무심코 지나쳐버린 기억들이 너무도 많아 이제는 자신들을 기억해달라며 그 주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마치 어머니의 애정을 바라는 투정 가득한 아이처럼. (36p)

 

  "이모 하늘에 달을 켜졌어요." 조카의 말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려다. 그리고 나는 달이 켜졌다는 아이의 말이 전등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을 하늘에 뜬 달에 갖다 붙인 표현임을 이해했다. 정확한 표현을 가르쳐 주어야 하나 고민이 된다. 하지만 네 살 아이의 순수한 동심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54p)

 

  혜성이 사라진다. 혜성은 그 커다란 불꽃을 몸에 휘감고 우주 너머로 빛을 내며 사라졌다. 그런데 영희의 마음에 불쑥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건 자신이 가장 처음 미술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설레는 감정.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느낌. 영희는 가슴 속에 그날의 열정이 다시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132p)

 

  궁상맞은 인생.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분명 어릴 적 나는 슈퍼맨이었는데 부러울 거 하나 없는 우리들의 영웅이었는데. 여전히 슈퍼맨인 지금 무엇이 변했기에 인생이 이토록 힘겨워졌을까. 나는 이 날도 이런저런 궁상을 떨며 슈퍼에 앉아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252p)

 

 


 

작가님에게 선물받은 사인본 <슈퍼맨 로망스>. 덕분에 읽으면서 재밌게, 휴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났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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