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다. 보도블록을 뒤덮은 낙엽들이 이리저리 뒹구는 모습만 보아도 왠지 마음이 울적해온다.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10월 - 가을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마음은 더욱 가라앉는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게 있다면 바로 이런 음악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항상 예감 같은 무언가가 있다. 책과 만나게 되는 일종의 운명을 말하고 싶은 건데, 어떤 경로로 그 책을 알게 되었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소개해주지 않았지만 홀로 좋은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전자의 몇 배는 될 성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기 전의 설렘을 닮았다고 해야 할까. 책과의 만남은 늘 그 비슷한 감정을 자아내게 한다. 이 쯤 되면 책 사랑도 중증이리라.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는 이미 사랑을 이뤄본 사람들에게는 식상할 지도 모르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설사 그럴 지라도 애처로운 그들의 사랑에 안타까움을 보내는 일에는 주저함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중편 소설에 그토록 많은 진실을 담을 수도 있는 걸까.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고 싶은 이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이 책을 나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홀로 카페에 갇혀버린 가여운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기형도의 ‘빈집’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수록된 ‘엄마 걱정’이라는 시도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누군가에게 책을 권할 때 주저없이 권할 수 있을 책 가운데 우위를 차지하는 두 권,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읽어 보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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